水菊국이 피던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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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이쁘지?"
아무도 예쁘다고 말하지 않는 꽃을 보며
한살터울의 기집아이 동생이 올려다 봅니다.
막내 고모가 대신 "응"하고 대답해 줍니다.
옥양목 한필이 빨래줄에서 백짓장처럼 하얗게 마르고 있었읍니다.
고모는 수국을 좋아하는 어린조카와 오빠티내는 의젓한 조카가
말벗이 되어주는게 싫지 않은가 봅니다.
올해도 혼사가 쉽게 이루어질것 같지 않은 고모입니다.
벌써 네해째.
祠堂입구 水菊이 피던 자리에 그리움같은 수선화가 피고 있습니다.
수국은 꽃잎들이 송알송알 엉클어져 봉오리를 만들어
연보랓빛으로 피다가 하얀색으로 변하는
아름답다기 보다는 차라리 슬픈생각이 드는 꽃입니다. 내게는.
탐스럽지만 누가 아름답다고 말 하지 않습니다.
작약꽃 진을치고 자산홍 붉게피는 뜨락에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피어서
칭찬한마디 듣지 못하고 마당한켠을 오랫동안 지키다가
혼자 지쳐 져버리는 꽃입니다.
몇해전 사당입구를 수리하면서
동생이 이쁘다다고 말하던, 막내고모의 하얀얼굴을 닮았던 수국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죽고 말아서 수국이 피던 자리에 대신 수선화를 심어 놓았습니다.
홀어머니 모시고 어려서부터 가장이 된 나에게
"오빠는 우리들 땜에 대학도 못가고......" 늘 말끝을 흐리며
제 생활의 고단함도 감추며 나를 위로하던 동생.
오빠의 어깨위에 내리는 고난의 짐을 같이 나누기를 마다하지 않고
남자형제들의 그늘에 가려 고명딸의 귀염도 많이 받지 못했던
시험만 많았던 한살터울의 속깊은 여동생이 내곁을 아주 떠나던 해.
병상에 몰려오는 고통도 제풀어지쳐 쉬는가 싶었습니다. 잠시 눈을 뜨더니
"오빠! 수국이 지금도 그대로 피어있을까?"
힘든 모습에서도 잠시 눈이 빛났었읍니다.
지금, 수국이 피던 자리의 수선화를 바라보면서
평탄치만은 않았던 막내고모의 무명치마같던 삶과
백짓장같이 얇았던 동생의 삶이 교차되어
수국을 좋아하던 두 여인의 운명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햇빛이 늘어진 뜨락에 수선화가 만발했지만
제몸에 지닌 슬픈전설에다 누이에 대한 슬픔하나를 더얹어서
피고 있는 수선화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수선화는 노란꽃잎을 열어 내 가슴을 헤집어 들어오려하지만
누이가 떠나간 수국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수선화 곱게피었지만........
수국이 남겨놓은 동생의 자리가 없는 봄을
나는 그렇게 많이 사랑할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이별이 슬프지 않으리오만
그해 여름 누이를 산에 묻고 오면서 고모는
"망헌년! 망헌년!" 소리만 연발하면서 눈물을 찍었습니다.
수국이 피던 자리에
켜켜히 세월이 쌓여져가도
노란 수선화가 아무리 많이 피어도
내가슴에 수국은 해마다 늘 새로이 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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