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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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낫단말이다"
토방에 앉아서 쥔마님과 눈을 맞추고 있는 늙은 누렁이 복실이를 보며
하시는 우리 큰어머님 말씀이시다.
모두가 도시로 떠나고 이 큰 가대를 달랑 혼자서 지키시는 당신은
늘상 사람이 그리워 원망이시지만 그렇다고 요즘 세상에 어떤 젊은이가
시골을 지키겠냐고 체념하신터다.
"팔자가 그러는걸 어쩌것냐"
"조카새끼들이라도 여럿있어서 번갈아 왔다갔다 허니께 그나마 좋다"
말씀은 그리하시면도 허전함은 당신의 눈자위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기껏 명절에 한두번 큰 제사나 있어야 외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그도 떠나버리면 더 깊은 정적만 당신 가슴에 남는다.
유일하게 당신곁을 지키는 것이라고는 토방에서 눈을 떳다 감았다하는
그저 잠밖에 모르는 복실이 뿐이다.
십년이나 같이 살아서 눈짓하나 행동거지 하나로 큰어머니와 복실이는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이다.
"참 저것이 영물이어야. 내가 작은집에 갈런지 아짐네 집에
갈런지 어찌 알고 지가 척 먼저 나서서 앞장선단 말이다."
당신은 그게 영물스럽게 보이시겠지만 어찌보면 그시간대에 당신의
나들이가 규칙적이신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나절에는 작은집에 잠간 나들이 가고 오후에는 아짐네 집에가고
하는 그런 소일땜의 나들이를 복실이가 알고 있었을거란 생각이든다.
그걸 굳이 설명을 해서 영물스런 복실이를 비하시킬일도 없을것같아
"글쎄요. 그것참 영물이네요.'하고 맞장구 치고 만다.
복실이도 늙어서 몸이 귀찮은지 그저 잠이 많다.
습관도 희안해서 보통 개라는것이 토방밑에서 대문간을 향해 잠을 자던지
앉아있던지 하는 법인데 이놈은 꼭 궁둥이를 대문쪽으로 하고 쥔마님
얼굴을 쳐다보면서 잠을 자거나 앉아있다.
그러고도 신통하게 귀는 밝아 대문에 인기척이 나면 바라보지만 어지간해선
짓는 법도없다.
그도 그럴것이 동네가 모두 일가이니 집안이나 다름없고
집에 오는 사람들이라야 노인혼자 계시는집 혹시 뭔일이라도 있나 싶어
들렸다가 마루에 앉아 다리쉼하고 가는 이들 뿐이니 복실이가 컹컹 짖어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복실이가 짖는 날이면 그건 틀림없이 낮선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복실이가 당신말마따나 사람보다 낳은것이
당신곁을 늘 떠나지 않으며 푸접이 되어주는것 말고도
해마다 새끼를 쑥쑥 잘 낳아 당신의 용돈을 챙겨주는 일도 그 하나이다.
밭에가면 밭에까지 따라와서 뙤약볕에 쭈구리고 앉아있다가
같이 돌아오고 심지어 당신이 화장실에 가는데도 문앞까지 따라온단다.
"내가 신발만 신으면 잠만 퍼자다가도 눈을 번쩍떠야. 어쩐때는 성가셔
죽것다. 오죽하면 '너도 문상왔냐' 하는 소릴 들었겄냐."
"그게 뭔 말씀이래요?"
"다름이 아니라...."하시면서
한번은 동네 문상을 가셨더란다. 여자들만 모이는 안방에 앉아 있는데
복실이가 또 따라와서 꼭 저모양으로 앉아 있었더란다.
저 모양이란 주인과 눈 마주하고 앉아있는 것을 말한다.
상가집이라는게 원래 분주한것이라서 토방에 걸치적거리는
것이 있으면 않되는데 쫗아내면 도로와서 앉아있고 도로와서 앉아 있곤
했더란다.
발에 꼬리를 밟히기도 하고 했지만 으그대고 앉아 있다가
술상나르는 분이 정통으로 다리를 밟았고 개가 놀래 튀는 바람에
술상을 엎지르고 같이 나동구러지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화가난 그 아저씨가 "야 이놈의 갱아지새끼야. 너도 문상왔냐?" 해서
모두 웃었단다.
종가집 종부네 개만 아니었으면 몽둥이 찜질을 당했을 것이라며 웃으신다.
"저놈이 그렇게도 내 옆을 안떠난단 말이다. 사람보다 나서야"
또 그 말씀이다.
당신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과 사람보다 낳다고 하시는 말씀이
자꾸만 중복되는것은 떠나간 모든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당신의 가슴에
서리서리 베어 있다는 증거이겠다.
그 원망을 그 외롬을 함께 어쩌지 못하는 나의 못남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삼년전 어느 여름에 큰 어머님과의 대화였다.
그후 얼마지나서
그 복실이가 새끼를 놓아두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렷다
큰어머님의 상심이 말이 아닌것은 당연지사다.
사람의 손을 탓을것이라고도 하고 아니면 요즘 산에 덧을 많이 놓은
까닭에 덫에라도 치어서 죽었을 것이라는 단정을 내렸다.
작년 여름에 내려갔을때
지금은 복실이의 새끼가 또 그만큼 커서 큰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다.
대를 이어서 충성하는 이 개가 고맙기 그지없다.
"저것좀 봐라.하는짓이 꼭 지 애미 닮았단 말이다." 하시면서
하하 웃으십니다.
복실이 모녀 보다는 낳은 효를 하는것이 도리언만
산다는게 무언지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사는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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