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구수하고 끊임없는 입담으로 잊혀져 가는 옛기억을 되살려주는 대포갈비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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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골에미 불러와라" 할머니의 약손도 효험이 없고, 여전히 끙끙 아파하는 우리들의 치료를 위해 처방되는 다음 수순입니다. 심부름이라면 당연히 내 몫 이지요. 우리마을과 건너마을 중간쯤 외진곳에 솔방울 엎어놓은 것 처럼 나즈막한집에 당골어멈은 내 또래의 어린딸과 함게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내가 다니는 심부름중에서 제일 흥이나는 심부름이 당골네집 심부름입니다. 당골어멈이 굿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사립밖에 서서 아지랑이 피는들판을 바라보기도 하고, 햇빛 잘드는 장독대 옆에서 혼자서 공기놀이 하는 계집아이를 훔쳐 보기도 합니다. 나를 쳐다 보는 척도 안 합니다.나도 물론 쳐다 본척 안하지요. "도련님 가시지요" 당골 어멈의 얼굴에서 화장품 냄세가 났습니다. 참 예쁜 당골 어멈입니다. 계집아이도 어멈을 따라 나섭니다. 몇발자욱 뒤 떨어져서 어멈의 치마폭에 감싸이듯 걸어가는 계집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마치 내 가슴에 복사꽃이 막 피어나는것 같습니다. 자운영꽃이 지치듯 피고 아지랑이가 불처럼 피어오르는 길을 두모녀가 손잡고 걸어갑니다. 그런모습은 조금 더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 더 예쁩니다. 저는 발길을 늦춥니다. "어여 오세요! 도련님!" 뒷쳐지는 나를 향해 채근합니다. 당골어멈은 나에게도 말을 높입니다. 그럴땐 멋적단 생각을 합니다. 2. 당골어멈은 머리도 만져보고 배도 만져보고 손도 만져 봅니다. 증세가 가볍다 싶으면 웃목에 찬물 한그릇 떠놓고 쌀한됫박에 실타래하나 얹어 놓고 빕니다. 낭낭한 목소리로 삼신할미에게 비는 손결이 곱습니다. 저렇게 목소리가 예뻐서 삼신할매가 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훠이~ 훠이~" 물속에 잠근 손에 물방울을 문살에 뿌리거나, 쌀을 한줌집어 동서남북에 뿌리기도 합니다. 빌기가 끝나면 쌀 됫박은 자루에 담어 가져 갑니다. 일종의 치료비인셈이지요. 근심스런 눈으로 할머니는 묻습니다. "어쩐가?" "괜찮것어요!" 그 뿐입니다. 그 날로 나은것도 같고 담날 나은것도 같고 안 나은것도 같고..... 정확한 기억은 없습니다. 형제가 많다보니 당골어멈 신세를 많이 집니다. 증세가 심하다 싶으면 떡시루도 해놓고 북어도 준비하고 쌀한줌을 하얀보자기에 싸매서는 이마에 문지르면서 뭔가를 열심히 주문을 욉니다. "많이 먹었는가?" "야! 많이 먹었네요" 보자기에 꼭 싸맨 쌀주머니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것을 보여줍니다. 그 쌀주머니가 한쪽으로 많이 쏠려야 당골의 빈 효혐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마냥 쓸데없는 짓거리지만 그땐 그것이 처방이었으니 어찌합니까. 읍네 병원을 간다는것은 죽을병 아니면 엄두를 내볼수 없는 시절이니까요. 3. 당골어멈은 참 신통한 사람입니다. 건너마을 창식이네 누님이 가출을 했을때 북쪽으로 갔다고 쪽집게 처럼 짚어 냈습니다. 서울 어느 다방에서 일하는 걸 머리채 잡아 찾아 왔는데 동네사람들은 그 영험함에 혀를 내 둘렀섰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래요. 어렵던 시절 남쪽 지방 사람들이 갈데라고는 북쪽 밖에 없을 때이고 북쪽이라면 서울밖에 달리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 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따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찟게 맞쳤스까?" 뿐만이 아닙니다. 아랫마을 명석이네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어 야단이 났을때 "물귀신한테 잡혀갔구만!" 했는데 실제로 술좋아하는 명석이 아버지가 장에서 술을 마시고 오다가 저수지에 빠진 시신을 찾아내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가끔씩 감나무집 아저씨 취직날짜를 재작년봄에도 작년봄에도 그리고 금년봄에도 못맞추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당골어멈을 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골어멈은 시골사람들의 위안이었고 맺친 가슴을 풀어주는 영험한 사람 이었습니다. 우환이 있으면 울긋 불긋 치렁한 옷을 걸치고 고사도 지내고. 잔치날에는 장구치고 소리도 합니다. 그때 마다 당골어멈의 예쁜 딸은 잔 심부름하면서 엄마가 하는 일을 쳐다 보고 있습니다. 댕기머리 길게 내리고검정치마에 흰적삼 받쳐입은 기집아이는 인형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부끄럼이 석류꽃 피듯 했습니다. 4. 중학 1년을 마치고 도시로 떠나면서 다시 볼길은 없었습니다만 당골어멈보다 더 이뻣던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고향에 내려와서 들은 소문은 당골어멈의 정분소식과 함께 어디론가 떠났다는 것입니다. 학교도 다니지 않았던 그 아이가 어멈처럼 어미의 길을 갔는지 새로운 세상을 개척했는지 알길없지만 깰수없는 운명을 받아들였을것 같은 분홍빛 볼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