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이기주

이기주

구수하고 끊임없는 입담으로 잊혀져 가는 옛기억을 되살려주는 대포갈비 사장님

22번 글 수정하기


이름
비밀번호	게시물 작성시 입력한 비밀번호
제목
내용	한번 물을 들인 머리는 머리가 자랄때 마다 물을 들여야 하는 번거룸이 있다. 이발소에 갈때마다 물들이는게 귀찮아서 그냥 넘어 갈 순 없나하고 거울앞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머리전체가 흰것이 아니고 앞머리하고 귀밑머리 부분에서만 흰머리가 자라고 있음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새치라고 고집하고 싶었던 흰머리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숫자를 앞에 두고는 더는 새치라고 우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이들어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허탈감. 에미앞에서 머리 허해 다닌다는 어머님성화에 물을 들이긴했지만 몇번 들이다 보니 이젠 나이보다 더 검은 머리가 외려 어색하기까지 하다. 조금 갈색이 도는것으로 염색을 해달랬더니 갈색은 금방 색갈이 변한다며 굳이 짙은 검정으로 칠해놓은 이발소 아저씨가 나는 아직도 맘에 않든다. "너무 검다. 옅은색으로 하지그랬냐?" 하시던 어머니는 그래도 않한것보단 낫다고 하셨지만 맘에 썩드는 모양은 아니셨던 모양이다. "언제 내가 한번 들여주마!" 하셨는데 어젯밤 집에 들어가니 어머님이 염색약을 준비하고 계셨다. 당신이 염색하시려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이리 와봐라! 염색해줄께" "어머니가?" "어제 너 잠잘때 자세히 보니까 앞머리하고 옆머리만 희더라" 아마도 내가 거실에서 테레비를 보다가 잠든 사이 당신이 내 머리를 헤집어 보신게다. 그래도 마음한켠 미심쩍은 생각에 "어머니가 할 수 있을까요?" "에미는 여지껏 혼자 하지 않던? 네 머리는 부분염색만 해도 되겠더라" 하시면서 당신앞에 늙은 아들을 앉혀놓고 안경을 고쳐쓰시면서 자식의 머리를 다시 꼼꼼히 헤집어 보신다. 이름은 모르겠으나 부럿쉬같은곳에 하얀 약을 뭍히고 거기에 검은색 물감을 섞어 낡은 칫솔로 문질러 섞은다음 머리에 바르기 시작하신다. 돗수높은 안경을 고쳐 쓰시며 앞머리며 가르마쪽 그리고 귀밑머리쪽을 꼼꼼히 바르시고는 또 요리 조리 살펴보시면서 정성들여 염색을 해주신다. 사람이 늙으면 자연스레 늙는 모습을 하는게 좋은데........... 꼭 이렇게 머리에 물을 들여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엄밀히 말하면 요새 오십이쪽저쪽 나이는 늙도 젊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다. "돼얐다! 30분후에 감아라!" 그 "돼얐다!"하시는 말씀의 뒷꼬리가 밝지 못하시다. 자식이 늙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베어나오는 그런 어감이시다. 세월이 흐르면 세월따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에는 나이가 들어간다. 자란다는것 커간다는것 젊어 진다는것 늙어 진다는것, 이 모두가 나이 들어간다는것의 현상이다. 사물에는 나이들어 쇠하는 것도 있지만, 세월의 연륜이 쌓일 수록 청청히 푸르고 의연한 것도 있다. 인간의 모습에는 이 두가지를 다 갖추고 있는것같다. 육체적인것은 나이들어 쇠하고 추해지지만, 정신적인 것은 더 원숙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것이란 것이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는것은 아니다. 30분이 지나 머리를 감고 거울앞에서 머리를 빗으면서 주름진 내 모습과 제법 웨이브져 멋있어진 머리결의 언바란스를 바라보면서 착찹한 심정이 되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부는데로 쓰러지는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사람은 어찌하여 그것을 거스르려 하고 있는가? 깊은밤 주무시는 어머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머님의 얼굴에 만들어 드린 주름의 모두가 자식들로 생긴것 아닌가하여 가슴이 찡해졌다. 모든 사랑의 근원은 부모와 자식에서 출발되어진다는 생각이다.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부부간의 사랑으로 또는 친구로 사회로 국가로 이어진다고 생각이든다. 이 기본단위가 무너지면 모든 가치는 혼돈으로 뒤틀린다. 허지만 내 이생각이 낡은 생각이란 여러 징조가 여러 모습으로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세상이다. 가치는 늘 새롭게 정의되는것인가 보다. 부모에겐 효도 하는 것이 도리란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의무를 포함하는 도리였다는 생각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효라는것의 근본이 사랑이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의무를 포함해서야 어디 효가 되었겠는가. 사랑이란 말이 맞을것 같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백번천번 어머님께 효도 했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의 사랑 한끝자락만 하지 못했을 것임을 다시 생각해본다. 부모를 멀리하고 나와 내 자식만 생각하는 새로운 흐름이 안타깝지만 세월은 그만큼 또 앞서가고 있으니 어짜랴. 내 세대는 내 세대데로 적응하며 그 가치를 지켜나갈 수 밖에. 아마도 내 자식은 내 사랑을 바라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내 사랑은 내 사랑데로 주어질것 같다. 효를 바래서가 아니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어 할것같다.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어머님께서 편지한통을 꺼내놓으신다. 휴가끝나고 귀대한 아들에게서 온 편지였다. 편지 말미에 "할머니! 아버지 염색좀 해주세요!" 였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면서 "빌어먹을놈! 지 에비 머리 허연것만 보이고 할미 늙는것은 안보이나보다!" 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