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구수하고 끊임없는 입담으로 잊혀져 가는 옛기억을 되살려주는 대포갈비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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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서 가을까지 빨간 배롱나무 꽃을 바라보며 나는 한철을 보낸다. 세사의 진토에 묻혀 살면서 그나마 내게 주어진 작은 복중에 하나라는 생각에 감사한다. 꽃이 많은 계절이라 특별히 아름다울것은 없지만 다른 꽃들보다 한단 높은 위치에 피어있는 꽃이라서인지 무수한 꽃망울들에 시선이 멎고만다. 송올송올 빨간 꽃송이들이 작은 바람에도 하늘 거려 때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붉은 피를 수혈하는것 처럼 용기를 북돋아 주기도 한다. 고향집 대나무밭 옆에 오래된 배롱나무가 떠오른다. 배롱나무꽃이 모두 질때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그 꽃이 지기를 기다리곤 했던 기억, 나무의 재질이 단단해서 도장파기에 좋아 가지를 잘라 도장파는 놀이를 했던 기억이라든지 이 꽃을 바라보면 눈병이 난다고해서 한동안은 고개를 외로 돌리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왜 그런 속설을 믿었는지 이나이 되도록 나는 아직 모르고 있다. 배롱나무는 들녁가득 모가 심겨지고 초벌메기가 끝날무렵 대지가 차츰 초여름의 지열로 달아오를때 부터 피기 시작해서 햅쌀이 나오는 추석무렵까지 무려 100여일을 붉게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문득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어찌 저리 오래도록 피어 있을까?"하는 궁금한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곁에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던 꽃을 이나이 되어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 본셈이었다. 단단한 목피의 껍질이 벗겨진 자리에 푸른빛 핏줄같은 녹빛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너무나 단단해서 정이 없을것 같은 나무에 이런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는게 신기했다. 제몸뚱이의 인정없음을 꽃으로 감추려 함일까? 역시 한송이 꽃이 그토록 오래 피어있을리는 없었다. 꽃봉오리 속에는 무수한 꽃방울들이 맻쳐있고 그것들이 서로 피고 지는 것이었는데도 내 눈에는 늘 한덩어리의 꽃무리가 피어 있는것 같이 보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모든것들에게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작은 죽음들이 있다는것을생각해봤다. 시든꽃잎은 봉우리 안에서 오므라져 떨어지고 그 자태가 흐트러질세라 새 꽃망울들이 부지런히 피어 그자리를 매꾸고 있었다. 초여름의 산들 바람부터 한여름의 폭풍우를 견뎌내고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을 모두 받아내며 흔들리면서도 그 긴긴날을 아름답게 피워내는 배롱나무 꽃을 보며 새삼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것처럼 돌아서면서 도종환의 시 한편을 떠올려본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