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궁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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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랜 간만에 아내와 단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면서 안내의 얼굴을 훔쳐본다. 어느 새 우리의 인생 열차는 지명(知名)의 역을 지나 이순(耳順)의 역에 가까워지고 있다.
아내의 얼굴에는 삶의 자리 나이테인 주름살이 잔잔히 물결쳐 가고 있고, 머리에는 희끗희끗 눈발이 내리고 있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빈궁마마가 될 때의 가파른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날은 동지섣달의 매서운 칼바람이 쌓인 눈들을 휘날리게 하고 있었다. 자궁절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간 여자 두 사람은 벌써 나왔건만, 아내는 세 시간이 훨씬 넘어서도 나올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수술이 잘못된다면….'
온갖 잡상(雜想)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수술실에서 호출하여 후딱 가보니무슨무슨 물건을 빨리 사 오란다. 다섯 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아내는 링거씨병을 서너 개를 무슨 생명의 훈장인양 주렁주렁 달고서 신음하면서 나왔다.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가 나를 따로 불러 아내의 몸에서 떼어 낸 것들을 무슨 보물 인양 보여 주면서 나에게 끔찍한 말을 한다. 배를 열어 보니 장들이 너무 유착(癒着)되어 그냥 닫아버릴가 하다가 자기닌깐 한 힘든 수술이었다고 겁나게 말을 한다. 얼마나 힘든 수술이었기에 주치의의 녹색 수술복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만약에 그때 수술이 잘못되었으면 내 앞에 아내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빈궁마마도 좋고 쓸개빠진 여자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빈궁마마로 성공적으로 책봉되던 날, 나는 아내에게 조막 만한 멕시코사철이라는 화분을 선물하였다. 그때는 세 가닥 줄기였는데 지금은 대여섯 가닥으로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아들, 딸 때문에 제왕절개(帝王切開) 수술 2번, 자궁을 떠어 내어 빈궁마마가 되는 수술 1번. 도합 3번이나 대수술을 아내는 인내로 잘 견디어 냈다.
아이들은 이제는 가정의 우듬지를 떠날 나이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은혼역을 지나 금혼역으로 달려가고 있다. 나는 아내를 이승의 길벗(道伴)이라고 생각한다. 이승의 종착역(終着驛)에서 다정히 함께 내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행복이리라.
지금은 세 번이나 배를 가르는 큰 수술 때문에 지퍼처럼 우툴두툴하게 꿰맨 아내의 배를 볼 때마다
'잘해 주어야지….'
하고 생각을 하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입에 바른 말만 되풀이되고 있다.
하여간에 우리 집 빈궁마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나의 길벗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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