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뻥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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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오늘 길모퉁이에서 뻥튀기를 한 봉지 샀다. "뻥이요" 하는 옥수수나 쌀로 만드는 튀밥이 아니라 호떡 만한 쇠판에다 쌀을 한 줌 넣고서 누룽지처럼 튀기면 접시 만하게 만들어지는 뻥튀기이다.
길옆을 지나가는데 소형 트럭 뒤에다 뻥튀기 기계를 차려 놓고 한 삼사십쯤 되어 보이는 아낙네가 열심히 눌러 대고 있었다. 아마 짐작컨대 실직 가정이 되어 부인이 직접 거리로 나선 것 같다. IMF 이후 길거리에 부쩍 늘어난 것이 소형 트럭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장사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중고 소형 트럭이 값도 올라가고 동이 났다고 한다.
누룽지처럼 구수하게 튀겨져 나오는 것을 보니 옛날에 먹던 튀밥이 주마등(走馬燈)처럼 나타난다. 중학교 때 자취할 적에는 밥하기는 싫고 해서 쌀로 강냉이 튀밥을 해서 끼니를 해결하려고 했다. 아무리 먹어도 튀밥은 끼니가 안 되었다.
천 원하는 뻥튀기 한 봉지를 사니, 갓 튀긴 따끈따끈한 뻥튀기 세 장을 덤으로 준다. 그 차 옆구리에는 '완전 무공해 자연 식품'이라고 당당하게 써 붙여 놓았다. 과연 백 번 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과 설탕만으로 고객이 보는 앞에서 직접 튀기니 과연 완전한 무공해 자연 식품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즈음 먹거리들을 보면 믿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농약으로 키운 콩나물, 횟가루를 넣어 굳힌 두부, 닭대가리를 부셔서 만든 소시지, 폐유(廢油)를 섞은 참기름 등.
한 삼 년 전에 친목회원들과 겨울에 온천을 간 적이 있다. 온천을 끝내고 나오는 길목에 자그만 읍내에 장이 서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할머니 한 분이 집에서 손수 심은 우리 콩이라고 하며 흰콩 두어 말을 사라고 하였다. 우리 회원 중에 간이 좋지 않아 매일 콩국물을 해먹는 회원은 믿거라 하고서 그 콩을 샀다. 나중에 들으니 그 콩도 역시 중국산이었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어느 산 속 절에 갔을 때 일이다. 그 절에서 내려오는 길목에 아줌마들이 절 근처 산에서 캔 자연산 더덕이라 하여 한 두름 샀다. 내려오다가 보니, 그 근처 공중 변소 뒷켠에는 산지가 중국이라는 더덕 빈 상자가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그러니 이 뻥튀기만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무공해 자연 식품인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또 자주 먹고 싶어지는 것이 뻥튀기인 것 같다. 20개가 들어가 있는 뻥튀기 한 봉지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지만 뻥튀기는 사람의 욕심처럼 먹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 생활 주위에는 뻥튀기는 사람들이 많고, 뻥튀긴 것들도 부지기수이다. 내용물은 허술한데 겉포장만 요란하게 과대 포장한 것도 많고, 코딱지 만한 봉사를 하고도 대문짝만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다. 작은 노력이나 돈을 들여 뻥을 튀겨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사람도 지천이다. 갈수록 도처에서 뻥을 튀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때 일본에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라는 많이 유행한 적이 있다. 축소 지향적인 일본인들의 특이한 기질일지 몰라도 그들은 오밀조밀하게 작은 것들을 만들어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되었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큰 것, 제일, 많은 것, 더 쉬운 것, 더 많은 것, 더 빨리 가지려고 안달을 한다. 대형차, 대형 아파트, 세계 제일, 동양 최고등의 뻥튀기 신화는 날로 번창해 가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의 시초는 작은 것에서 비롯된다.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생물의 기원도 바다의 미생물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여 고귀한 한 생명이 출발하게 된다. 작은 꽃가루가 밑씨와 꽃가루받이를 하여 커다란 호박이 된다. 아주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작은 겨울눈에서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이 피기도 하며, 작은 벽돌 한 장, 한 장 쌓여 큰 건물이 된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구름이나 비가 되어 큰 강과 바다를 이루듯이 모든 생명은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큰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긴다. 작게 시작해서 크게 되는 것이 생명의 원리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옛 할머니들은 아기도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라고 했나보다. 그러나 우리들은 더 크게, 더 많이, 더 빨리, 더 쉽게, 더 편하게 못해서 안달복달을 한다.
우리 생활에 짙게 배어든 뻥튀기 문화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병이 되어 가고 있다. 성수대교의 붕괴, 삼풍백화점의 폭싹, 씨랜드의 활활도 다 뻥튀기 문화의 소산이다. 이렇게 뻥을 튀기다 보니 작은 것은 아예 눈에 차지도 않으며, 생명을 우습게 알거나 경시하는 풍조가 생기게 마련이다.
나무도 원래부터 큰 나무가 없다. 작은 나무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어느 산 속의 아주 작은 들꽃, 이웃이 갖다 주는 찐 고구마 한 접시,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작은 미소, 밤하늘을 수놓은 작은 별빛, 엽서 한 장에 소식 주는 친구의 배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의 진정한 삶의 보화를 쌓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도 아예 아담하고 작은 사람을 생의 반려자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나부터라도 뻥튀기지 않고 작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작은 일에도 항상 감사하고, 작게 사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우리 주위 도처에서 뻥튀기는 소리가 들린다. 부동산 투기, 복권 열풍, 일확천금을 꿈꾸는 정선 카지노의 불야성(不夜城)….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생명을 사랑하는 나의 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러나 내가 가진 뻥튀기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오늘도 일확천금의 미망(迷忘)을 안고 복권을 산다. 그것도 더블 복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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