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지하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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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에서 >
지하철을 탔다. 내 옆자리에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 아이가 앉을 만한 자리가 남았다. 내 옆의 아가씨는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접어들었다. 안중근 의사의 말 "일일불독서(一日不讀書)이면 구중생형극(口中生荊棘)이라."이라는 말이 언뜻 떠올랐다. 나도 덩달아 책을 펴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는 어른들이 들이밀기에는 너무나 비좁았다. 기차는 자그만 틈을 남긴 채 다음 역으로 질주하였다.
다음 역에서 승차한 오십대 중반의 거구인 남자가 그 빈자리에다 엉덩이를 사정없이 디밀었다. 내가 보기에도 내 엉덩이의 한 배 반은 될 정도의 소유자였다. 나와 그 아가씨는 최대한으로 자리를 좁혀 그 남자가 앉도록 배려(配慮)를 했다. 기차는 더불어 함께 타고 가는 문명의 이기이니깐.
나는 엉덩이가 맷방석 만한 그 남자가 약간 걸쳐서 갈 줄 알았다. 육중한 엉덩이를 자리에 상륙을 시킨 그 남자는 등받이 쪽으로 궁둥이를 한 번 용트림을 하였다. 나와 그 아가씨는 그 용트림에 밀려 조일 대로 조여야만 했다. 한번 꿈틀에 남자 궁둥이는 반쯤 쑤시고 들어왔다. 그 방뎅이는 또 다시 용트림을 시작했다. 옆 사람이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뒤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결국 조이다 못한 나와 그 아가씨는 도리어 앞으로 밀려 엉덩이를 걸치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엉덩이를 무가내로 들이민 그 남자는 이번에는 다리를 벌릴 대로 벌렸다. 나와 그 아가씨는 어른 앞에 다소곳이 벌을 서는 아이처럼 두 다리를 가지런히 앉아있어야만 했다. 우리 앞에 서서 스포츠 일간지를 열심히 보고 있던 한 젊은이는 이상야릇한 상황에 뜻 모를 미소를 흘린다. 그 미소에 담긴 뜻은 예의염치(禮儀廉恥)를 내팽개치고 궁뎅이를 들이미는 그 남자에 대한 무뢰함일까, 제자리도 못 지키고 되레 걸치고 앉아있는 나와 그 아가씨에 대한 연민일까.
결국 점령군 횡포에 견디다 못한 그 아가씨는 일어서고 만다. 그 남자는 가뭄에 물 만난 지렁이처럼 평수 넓은 궁뎅이를 넓직히 늘리고 다리도 더 쩍 벌린다. 아마 온통 다 차지한 포만감(飽滿感)에 젖어 있을 것이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속이 바글바글 끓었지만, 그래도 점잖은 체면에 찍 소리 못했다. 다행이 두어 정거장 가서 하차하였다.
이게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작금의 우리들 사회 생활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것과는 사뭇 동떨어진 것처럼. 오직 '나' 우선주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본 한국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방적인 행동의 첫 번째가 '뒤 따라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가장 큰 덕목은 예의염치를 아는 일이고, 일본인의 가장 으뜸 규범은 남에게 폐를 안 끼치는 것이며, 프랑스 유치원 교육의 더불어 함께 살기라고 한다.
며칠 안 있으면 내가 잘 아는 사십 줄의 중년 초입 부부가 가족을 다 데리고 이민을 간다. 그 친구는 아닌 말로 씨받이할 정도로 정직한 생활을 전범적(典範的)으로 하던 부부이다. 이민을 가는 주된 이유가 정직하고 상식적인 일이 통하는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떠난단다..
정직하지 못한 것이 정직한 것처럼, 상식이 아닌 것이 상식처럼 통하는 우리 사회에서, 부정직하고 몰상식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우리 사회에 진저리를 치며 그들은 모국을 등진다.
엉덩이를 용트림하여 무경우로 자리를 확보를 하고, 다리를 벌릴 수 있는 대로 벌리는 장년의 그 사람과 정도(正道)의 길을 가고자 이민을 택한 그 부부와 묘한 대비가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독일문호 괴테는 "상식常識은 인류의 수호신守護神이다."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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