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축이 다 해진 털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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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뒷축이 다 해진 털신발 >
오늘 바닷가를 거닐다가 우연히 털신발짝 같은 자그만 돌 하나를 주웠다. 발로 치면 오른쪽 신발이 된다. 돌 신발짝의 밑창은 회색빛 테두리를 둘렀고, 가운데는 검정색이다. 맨 위는 다시 흰색 테를 둘렀다. 그렇다고 수석(壽石)이 될 만한 가치를 지닌 오석(烏石)쯤 되는 돌도 아니라 흔하디 흔한 화강암이다. 문외한(門外漢)이 보기에도.
그러나 나에겐 언뜻 회상(回想)되는 것이 있어서 주워왔지만 보면 볼수록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닫게 하는 신발모양 형상석(形象石)이다.
긴 겨울방학 끝나 개학이 되면 나는 인천으로 공부하러 가야만 했다. 내가 인천가는 날, 이른새벽에 아버지는 쇠죽을 쑬겸 내가 자는 방에 군불을 때셨다. 군불을 때시면서 간밤에 땡땡 얼어붙은 내 검정운동화를 아궁이에다 따끈따끈 뎁혀 놓으셨다. 그 당시 시골은 얼마나 춥던지 방에 떠다 놓은 자리끼가 꽁꽁 얼고 방안의 물걸레가 동태가 되다시피 하였다. 물 묻은 손으로 쇠문고리를 잡으면 철거덕 달라붙을 정도로 추울 때였다.
아침을 일찌감치 먹은 다음 버스정류장으로 아버지와 같이 갔다. 아버지는 내가 자취할 쌀자루와 반찬을 바지게를 뗀 지게에다 싣고서 앞장 서셨다. 버스는 우리 집에서 가파른 비탈길 언덕배기에서 정차하였다.
젊디젊은 아들은 가방 하나 달랑 들고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시는 아비지 뒤를 쫄레쫄레 아무 생각 없이 뒤따라만 갔다. 눈이 와서 미끄러운 빙판 고갯길을 아버지는 지겟작대기로 어정어정 짚으시면서 올라 가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왜 그리 철이 없던지…….
게다가 나는 아버지가 훈훈하게 뎁혀주신 검정 새 운동화를 신었고 아버지는 밑창이 다 닳고 뒷축이 다 해진 털신발을 신으셨다. 밑창이 뺀질뺀질 닳은 신발이니 얼마니 미끄러워겠는가.
그 당신 털신발이라야 신발안에다 담요같은 좀 두꺼운 천을 깔았을 뿐. 지금처럼 털이 부숭부숭하게 방한이 잘되고 따뜻한 그런 신발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구치소나 교도소에 간 사람들이 그런 신발을 많이 신고 나온다.
아버지가 신고 가시던 그런 털신발 같은 돌 하나를 주웠으니 보면 볼수록 그때의 아버지의 다 해진 신발 모습니 눈에 새록새록 밟힌다.
아버지는 내가 탄 버스가 당신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살을 에는 매서운 찬바람이 부는 언덕배기에서 빈 지게를 지고 서 하염없이 서 계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철이 없고 생각이 모자라던 아들 곁을 떠나신 지도 어언 스무 세 해! 애면글면 육남매 뒷바라지만 하시다가 먼저 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셨던지 부지런히 떠나셨다.
털신발짝 같은 돌을 보니 왜 그리 그 때는 철이 없던지…….
노인네들이 털신발 신으신 것만 보면 추운 겨울 빙판길을 밟아 올라가시던 다 해진 아버지의 신발 뒷축이 어른거린다.
누구 말마따나 지금 나도 용돈을 드리고 싶고, 온천욕도 해드리고 싶고, 따뜻한 털신발을 사드리고 싶다. 철이 나도 한참 늦게 났으니 목이 메는 그리움 뿐이다.
이 추운 겨울에 산자락에 누워 계신 아버지가 춥지 않을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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