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징검다리

징검다리

조센징 놈들은 할 수 없구만!



	섬 마을로 들어가는 아침 배를 타려고 부랴사랴 배표를 끊었다. 만약의 해난 사고에 대비하여 배표에다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적게 되어 있다. 성명,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이 세 가지이다. 원탁에는 몇 개의 기록용 볼펜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부지런히 적고 있는 내 앞에는 한 오륙십대로 보이는 내 나이 또래의 장년 남자 두 사람이 배표에다 기입하려고 볼펜을 잡고 있다. 아마 잡은 볼펜의 볼펜심이 없었나 보다. 그러자 해찰궂게 생긴 한 남자는 "원 더러워서, 볼펜심까지 가져가는 놈들이 있다니. 조센징 놈들은 별 수 없구만!"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남자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너무나 유창하게 한국말을 잘 하기에 해외동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자 또다시 "역시, 조센징 놈들은 할 수 없구만!" 그 남자는 툴툴거리고 있다.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한번 쏘아보니 그 자신도 조센징이 틀림없어 한마디하려고 하는데 "조센징 놈들은 할 수 없구만!" 연거푸 세 번이나 '조센징 놈들'을 뇌까리고 있다. "아저씨, 나도 조센징이지만, 아저씨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내가 묻자, 옆의 그 사람 친구가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그야 나도 조센징이죠." "아저씨, 누워서 침 뱉어 보세요. 그 침이 어디로 가나?" 그리고 나서 나는 검표를 하고 가고자 하는 연안 여객선에 올랐다. 섬 선착장에 닿을 때까지 도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날따라 가을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바다의 쪽빛 물너울의 물마루 위에는 괭이갈매기가 넘실댔지만, '조센징 놈만'이 바다에는 둥둥 떠다녔다. 일제 시대를 거쳐온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비하(自己卑下)하기를 머뭇거리지 않는다. "조선 사람은 아직도 멀었어. 일본 사람을 좀 봐."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일본을 못 쫓아가." 사실 그럴런지도 모른다. 일본에 뒤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비하(卑下)시키는 우리 마음이 문제가 된다. 또 이런 말도 흔히 쓴다. "엽전제는 별 수 없어, 국산품이 그렇지 뭐, 한국놈들 다 그렇다니깐.'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의 교사들은 아이들을 존중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교육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하거나 존중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순 동포나 연변족에게는 홀대하면서 외국인들에게는 친절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그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은 같은 민족이면서도 무시치거나 차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같은 민족에게 '조센징 놈들'이라고 업신여기는 것과 똑같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인간의 무의식 단계를 자기애, 동성애, 이성애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한다. 모든 사랑의 기초는 충실한 자기 사랑이 있어야 타인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한국인이면서 조센징이라는 말이 입에 붙듯이 뇌까리는 이런 사람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오종종하고 비비꼬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우리들은 자기는 다 옳고 다른 사람 생각은 그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교통 경찰에 걸리면 재수가 옴붙어서 걸렸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비리(非理)에는 게거품을 물면서, 정작 자신도 비리를 서슴지 않는다불법 과외 반대에 열변을 토하지만 자기 자식은 고액 과외를 시킨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갈 텐데. 사실 배표 기록용 볼펜에 볼펜심이 없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다 써서 없어졌다거나 어디로 빠져 도망갈 수 있거나. 우리는 단세포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그 조센징은 누가 볼펜심을 빼갔다는 것만 생각한다. 즉 어떤 사안(事案)에 예외(例外)가 많음을 생각하기에 인색하다. 이런 사람은 내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가 절어 있다. 일제시대 일본은 철저한 한민족 비하정책과 일본인 우월정책은 의도적으로 치밀하게 실시했다. 우리들은 그 영향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비하하는 자충수(自充手)를 둔다. 결국 누워서 침 뱉기이다. 역사적으로 보나 문화적으로 보나 일본은 우리 문화의 전수자(傳受者)였고 우리는 전달자(傳達者)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항상 돌고 돌게 마련이다. 흥망성쇠도 항상 있게 마련이고, 영원한 제국이었던 로마도 망했다. 그 사람이 '조센징'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침 뱉었으나 그가 속한 우리 민족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임에 틀림없다. 말은 그 사람의 정신이고 인격이다. 그 민족의 혼이며 얼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이 있듯, 자기의 침이 자기 얼굴로 떨어지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고와도 내 민족이요, 미워도 내 겨레이다. 이 나라 이 민족이 그리도 싫으면 중이 절을 떠나야 한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