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징검다리

징검다리

화롯가에 오순도순 둘러 앉아



	올 겨울부터 속옷을 껴입었다. 그간 속옷을 입지 않고 그렁저렁 견디었는데세월의 무상함인지 무릎에 시린 바람이 이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틀림없다. 속옷에 대한 추억은 갈피갈피 서려 있지만 속옷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기억이 설설기는 이들을 집안 식구들이 화롯가에 옹기종기 들러 앉아 잡던 추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살가운 옛추억이다. 지금 아이들이야 이나 벼룩이나 빈대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그들은 우리 생활 속의 일부였다. 지금은 위생 생활도 날로 좋아지고, 구충약도 속속들이 나와서 우리 주위에서는 이나 벼룩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였다. 한때 초등학교 어린이들 머리카락에 머릿니가 나타나 소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 바람에 머릿니를 훑어 내리는 참빗이 반짝하는 성수기를 탄 적이 있었다. 지금은 이틀이 멀다 하고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기 때문에 이들이나 벼룩들이 거처할 겨를을 없게 만든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이들이 무진장 많았다. 특히 겨울철이면 더욱 극성을 부렸다. 저녁을 먹고 나면 집안 식구들의 주된 일과 중의 하나가 이를 토벌하는 작전이었다. 이라는 놈은 집시를 닮았는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유랑하기 때문에 한 사람만 잡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새로 지은 아파트에 한 집만 바퀴벌레를 끌고 이사를 오면 온 동이 퍼지는 것처럼 말이다. 온 식구 이 잡기 작전에 꼭 있어야 할 그 당시 문명 이기(利器)는 화로(火爐)이다. 화로는 우리 조상들이 발명한 우리 나라 주거 상태에 적합한 이동식 난로이다. 화로에는 잉걸불이나 영근 불들의 씨를 담아 그 위에 재로 잘 사위지 않게 꼭꼭 묻어 놓는다. 화로에는 인두의 부젓가락이 항상 있어 불씨가 사위지 않도록 수시로 다독거렸다. 성냥이 없던 옛날에는 불씨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다. 시집온 며느리는 불씨를 꺼뜨리지 않도록 여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른 집에서는 불씨를 댕겨 주는 것을 꺼려했을 정도로 신주(神主) 위하듯이 하여야만 했다. 그 화로의 불씨는 뒤적거리면 죽게 마련이다. 항상 재를 덮어서 다독거려야 간직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속담에 "불씨하고 여자는 쑤셔댈수록 도망간다."라는 말이 있다. 화로의 쓰임새는 아주 다양하였다. 불씨 보관을 비롯하여, 방안을 대류 시키는 난방 기구 역할을 비롯하여, 여인네들의 옷을 다릴 적에 인두로 다리기, 고구마나 밤 등을 구워 먹거나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데우는 취서 도구 등 참으로 귀중한 역할을 하였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전자렌지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이 장죽에다 담뱃불을 붙이거나 재떨이 소임도 충실히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들의 심사(心思)가 언짢으면 담뱃대 꼬다리로 화로를 탁탁 침으로써 간접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아이들이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갔다가 방에 들어와서 우선적으로 껴안는 것이 화로였다. 화로 위로는 꽁꽁 언 손을 쬐고, 화로 옆에다는 발바닥을 데우는 난방 기구였다. 그 중에서도 화로의 빼놓을 수 없는 용도가 이들을 소탕하는 기구로 아주 쓸모 있게 사용하였다. 대개가 저녁을 먹고 나면 온 집안 식구가 따뜻한 화롯가에 둘러앉아 이를 잡기 시작한다. 어른이고 아이고 가릴 것 없이 속옷을 훌떡 벗고서 이 토벌 작전이 시작된다. 이를 잡아죽이는 방법은 대체적으로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압사(壓死)를 시키는 방법이다. 우리 가난했던 시절의 그 귀한 피를 빨아먹던 이들을 두 엄지손가락 손톱에다 포위시켜 놓고서 맞대어 눌러 죽이는 작전이다. 이 방법은 큰 이나 왕퉁이가 적당하다. 이들의 피가 튀고 살이 윽개어진다. 한 참 죽이다 보면 엄지손톱에는 피범벅인 된 이들의 주검들이 눌러 붙는다. 다 죽이면 침을 퉤퉤 뱉아서 쓱쓱 닦아 버린다. 두 번째 방법은 소사(燒死) 시키는 방법이다. 한 마디로 태워 죽이는 방법이다. 속옷의 솔기나 이음매를 바느질 한 고랑에는 잔그랑이나 서캐들이 하얗게 슬어 있을 때, 사용하는 토벌 방법이다. 일일이 작은 것들은 손톱으로 죽일 수 없기 때문에 등잔불에다 대고서 태워 죽이는 방법이다. 이때 라이터나 성냥을 화염 방사기 역할을 한다. 그러면 이가 타서 퍽 터지는 소리와 서캐가 튀는 소리가 따닥따닥 소리가 나기도 한다. 또 뜨거운 화롯불 위에다 옷을 쫙 펼치면 이들이 뜨거움을 참지 못하여 설설 기어 나온다. 이때 생포하여 화로에다 미련 없이 던져서 화형을 시키고 만다. 그것도 시원찮으면 잔그랑이나 서캐가 숨어 잇는 솔기를 어금니로 자근자근 씹으면 서캐들이 터져 죽는 소리가 아작아작 들리기도 한다. 세 번째 방법은 동사(凍死) 작전이다. 이것은 옛날 군인들이 많이 하던 방법으로 속옷을 벗어 엄동설한(嚴冬雪寒)의 밖에다 내 놓아서 이들을 얼어죽게 하는 방법이다. 얼어죽은 이들을 훌훌 털어 버리는 일종의 자연을 이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마지막 방법이 미군들이 가져온 디디티(DDT)라는 살충제를 마구 뿌리는 방법이다. DDT는 식물이나 동물의 구충제로 쓰이는 독성이 강한 살충제이다. 정작 미군들은 자기들 몸에는 뿌리지 않았지만, 우리들 머리나 모에 마구 뿌려 댔다. 그때부터 이들이나 벼룩이 줄어들기 시작했지만, 그 DDT는 독성이 너무 강하여 우리 주위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요즈음은 환경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독성 강하고 잔류(殘溜)가 많은 살충제이다. 어찌 보면 이들이 득시글득시글했던 그 시대 사람들이 마음이 더 따뜻했던 것 같다. 누가 그랬듯이 인정(人情)은 국민소득에 반비례한다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완전히 소탕할 수가 없었다. 한 두 마리쯤은 자기 몸에다 기르면서 미물(微物)에게 자기 피를 보시(報施)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불가(佛家)에서는 특히 하찮은 벌레 하나 죽이는 일을 삼가기도 하였다. 그래서 덕이 높은 스님은 디딜 자리, 누울 자리를 조심한다고 한다. 요즈음 우리 영화 중에 '인정 사정 볼 것 없다'라는 영화가 국내외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우리 사람들은 인정이 많은 민족이었다. 지금은 인정 사정 보지 않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지만, 시골에서는 참이 나오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도 일부러 불러다 먹일 정도로 인정이 있었다. 어느 집 잔치가 있으면 동네 잔치가 되었고, 어느 집 슬픈 일에는 내 일처럼 거들어 주는 풋풋한 인정 속에서 따뜻하게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 제목처럼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변해 가고 있다. 급속도로 밀어닥친 서구의 합리주의는 우리 고유의 동양적인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서양 풍속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인정이 많은 것은 우리 민족의 고유의 특성이다. 인정이란 어찌 보면 남의 처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씀씀이이다. 화롯가에 집안 식구들이 오순도순 둘러앉아 이들을 잡던 따뜻한 옛 시간의 색들이 그립다. 요즈음 것만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옛것은 무조건 다 버리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려는 사회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유소득(有所得)이면 필유소실(必有所失)이요, 유소실(有所失)이면 필유소득(必有所得)이라 했듯,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요즈음은 항상 얻는 쪽만을 생각한다. 얻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