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징검다리

징검다리

상어 에미와 30마리 새끼들



	강화도 어느 횟집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커다란 암컷 상어 한 마리가 그물에 걸렸습니다. 그 상어는 횟집 수족관으로 팔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 상어가 이틀 밤을 새우고 나서 수족관에다 몸을 풀었습니다. 30 여 마리나 되는 상어 새끼를 낳은 것입니다. 그 횟집으로 볼 때는 횡재이고 꿩 먹고 알 먹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 횟집 부부는 도저히 상어 에미와 새끼들을 횟감이나 매운탕 감으로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후 그 부부는 상어 가족들을 그들의 고향인 바다의 품으로 고스란히 돌려보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새끼를 밴 암사슴이 포수를 만나면 돌아서서 뒷배를 보여준다 라고 합니다. 암사슴이 자기가 새끼를 배어 만삭(滿朔)이라는 것을 포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랍니다. 그러면 대개의 사냥꾼들은 총을 쏘지 않고 살려서 보내준다고 합니다. 북한강 유역에 사는 우리나라 토종 물고기인 동사리 이야기입니다. 암놈 동사리가 돌 틈에다 알들을 낳고 유유히 사라지면, 수컷 동사리가 알들 위에다 자기 정액을 뿌려 수정시킨 다음 그때부터 그 알들을 지키기 시작합니다. 가끔 가다가 가슴, 배지느러미로 쉴 새 없이 부채질하여 알들에게 용존산소(溶存酸素)를 불어 넣어주려고 애를 씁니다. 이 수컷 동사리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알들을 다른 동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계속해서 그런 일을 합니다. 물론 알을 낳고 사라진 암컷을 절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천지불인(天地不忍)이라더니…. 드디어 새끼들이 깨어 나오기 시작하면 수컷 동사리는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그러면 그 새끼들이 자기 아버지의 죽은 몸뚱이를 뜯어먹고서 자랍니다. 지난번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어미 잃은 고아 새끼 고양이를 개가 자기 젖을 먹여가며 자기 새끼처럼 키우는 것을 말입니다. 고양이와 개는 앙숙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습니다. 엊그제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한 택시 기사가 미성년자 두 명과 원조 교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미성년자가 한 자매였다고 합니다. 그 기사에게도 고만고만한 딸이 있었을 겝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소리 중에 "짐승만도 못한 놈,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확실히 짐승만도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짐승이나 개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으니깐요. 나는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절대로 개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지 마라!"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개만도 못하다는 것은 사람은 고사하고 개도 되지 못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외보(社外報)에서 읽었습니다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무로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에서 봉사하던 수녀님이 한 말입니다. 몇 년간이나 무료로 병원에 입원했던 어느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하는 말이 '자기 아들은 대학교 교수'라고 하드랍니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라는 영화를 보면 그 영화 끝자락에 죽은 주인공 영혼의 이런 독백이 나옵니다. "집착(執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희열(喜悅)이 몸 안에서 빗물처럼 흘러 오직 감사한 마음만 생긴다. 소박(素朴)하게 살아 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대해서." 나는 친구가 들려준 상어 에미와 새끼를 살려준 강화도 어느 횟집 주인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 속에는 잔잔한 감동이 빗물처럼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기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은 애지중지 알뜰살뜰 보살피면서, 정작 그렇게 해야 할 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개만도 못한 대접을 하는 사람도 종종 눈에 띕니다. 하기사 개만도 못한 사람이 어디 하나 둘이겠습니까? 그전에는 부부가 이혼을 하면자식들을 서로 자기들이 키우겠다고 야단인데, 지금은 서로 키우지 않겠다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답니다. 지금은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 중에 부모 없는 진짜 고아는 별로 없습니다. 부모가 버젓이 살아있거나 한쪽 부모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개가 고양이 새끼를 젖을 먹여 키우는 판에 사람은 개만도 못하다라는 말을 들어도 싼 존재로 전락(轉落)해 버렸나 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수채 구멍에다 뜨거운 개숫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습니다. 수채 구멍 땅속에 사는 지렁이나 땅강아지 같은 생물이 죽거나 눈이 멀까보아서 말입니다. 내 생명,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생명 남의 자식도 귀중한데, 동인천 화재 사건에선 술값을 받으려고 비상구를 막아서 더 많이 참상을 당했습니다. 심부재(心不在)이면 시이불견(視而不見)이요, 청이불문(聽而不聞)이라 하듯마음에 없으면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가 봅니다. 이렇게 인간은 나 홀로나만의 게임을 즐깁니다. 오직 머리로만 계산하고 가슴을 거치지 않습니다. 상어 에미와 새끼를 구해준 횟집 부부처럼 살지를 못하는가 봅니다. 무서운 집착들이 똥글똥글 뭉쳐져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런 실화도 있습니다. 환갑을 훨씬 넘기 어떤 어머니가 맏아들을 상대로 1 억 원 반환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홀로 삼 형제를 키운 어머니는 공부 잘하는 장남의 의대 뒷바라지에 온 식구가 희생하여 어엿한 의사로 만들었습니다. 물론 동생 형제는 제대로 공부도 못 시켰을 것입니다.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또 어머니와 동생들의 집을 담보로 하여 어엿하게 개업하도록 밀어 주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동생 형제가 제공한 집이 경매로 넘어가 길거리에 내앉게 되었습니다. 장가간 의사 장남이 돈을 억수로 벌어도 안 갚아주어서입니다. 오죽했으면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반환 소송을 걸었을까 합니다. 사람에게는 인격(人格)이 있고, 개에게는 개격(犬格)이 있을 것입니다. 격(格)은 본(本)입니다. 즉, 사람은 사람의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하고, 개는 개의 본때를 보여주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인격이 개격보다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개가 부모를 죽였다는 소리도 못 들었고, 자식을 생명 보험에 들어 놓고 죽였다는 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의 가치(價値)는 그 사람의 소유물(所有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人格)에 있다."라고 설파했지만, 지금 사람들이 들으면 아닌 밤중에 무슨 천연기념물 같은 소라냐고 할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 생명 위주가 아닌 물건 위주이고, 인격 위주가 아닌 소유 위주로 급변하는 것 같습니다. 지성의 최후 마지노선이라는 일부 대학교수들 조차 인격보다는 소유물에 더 가치를 내던지고 있습니다. '뭐든지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라는 교육 행태(行態)는 기본을 내팽개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격이나 상식, 질서는 화석 연료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집착과 소유물 의식이 작아지지 않으면 더욱더 개만도 못한, 짐승만도 못한 일들이 횡행(橫行)할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소박한 삶이 이 시대의 화두(話頭)인 것 같습니다. 나는 상어 에미와 새끼를 바다로 되돌려 보낸 그 부부가 하는 횟집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가슴으로 흐르는 회를 맛보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