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징검다리

징검다리

손이 게으르면 머리가 늙는다



	엊그제 5학년 미술 시간에 '방패연 만들기' 시간이 있었다. 요즈음 연 만들기는 옛날과 달라서 규격화가 되고 조립식으로 된 연의 자료를 가지고 만들게 되어 있다. 우리가 보기엔 무척이나 쉽고 금세 만들 것 같은데 아이들은 두어 시간을 넘게 씨름을 해 가면서 허덕거리지만 잘 만들지 못하였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부러진 갈큇발 대나무를 창칼로 얇게 다듬어서 연 살을 만들고, 자기 나름대로 설계하고 마름질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연을 만들기도 하였다. 물론 얼레도 우리가 만들고, 연싸움에 대비하여 연줄에다 땡감물을 먹이거나 사금파리가루를 곱게 빻아서 강풀에 섞어 입히기도 하였다. 지금의 아이들은 댓살에 무명실 하나 제대로 묶지 못하고 얼기설기 매느라 끙끙거린다. 게다가 아주 간단하고 기초적인 올가미 매듭도 거의 하지 못한다실 하나 제대로 매듭을 짓지 못하니 연을 만드는 거야 말할 건더기도 없다. 이렇듯 아이들의 손기능이 점차 둔화되고 떨어지고 있다. 과학 실험 시간이면 성냥불을 못 그어대거나 켜서도 알코올램프에 벌벌 떨며 불을 붙이는 아이들이 꽤 많다. 칼로 자기 연필을 제대로 깍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이고, 젓가락질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지천이다. 오죽하면 초등학교의 개정된 교육과정에 젓가락질을 교육하는 내용이 삽입이 되었을 정도이다. 물로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자녀를 한 명만 낳아야 하는 중국은 자기 신발 끈을 제대로 매지지 못하는 아이들이 90%가 넘는다고 한다. 이제 성냥 켜기는 라이터나 전기가, 연필깍이는 칼보다 자동연필깍이가, 젓가락의 자리에는 포크가 놓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의 주된 원인은 요즈음 흔히 말하는 왕자병과 공주병 때문이다. 이렇게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과학 문명의 발전은 손을 기능을 퇴화시키고 있다. 그 대신 컴퓨터의 자판 두들기나 오락 기계들로 갈마들고 있다. 우리 속담에 "손이 게으르면 머리가 늙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손의 기능을 중요시하는 생활과 교육을 하여 왔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손의 씀씀이에 따라 왼손은 오른쪽 뇌를, 오른손은 왼쪽 뇌를 발달시킨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런 과학적인 증명 없이도 생활 과학의 경험 속에서 일찍이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활 교육을 하여 왔다. 예를 들어서 쌀미자(米)만 보더라도 쌀 한 톨 생산하기 위해서는 88번이나 손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글자라고 한다. 미작 농업 중심의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손을 바지런히 움직여 뇌를 발달시키고, 창의적인 머리를 일구어 온 것이다. 또 우리 조상들의 육아법을 보더라도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젖먹이부터 손가락 훈련을 시켜 머리의 발달을 도모하는 슬기를 지녀왔다. 아이들에게 손가락으로 하는 곤지곤지, 잼잼 등을 시켜서 손의 기능을 훈련시키면서 머리를 발달시켰다거기다가 젓가락질을 통하여 뇌의 기능을 과학적으로 향상 시켜왔던 것이다. 이런 생활 과학적인 육아법을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시켜왔건만, 요즈음 신세대 엄마들은 서양 육아법에 허겁지겁하여 젖먹이들을 엎어 재워 숨이 막혀 죽이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우리 조상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자는 새끼 꼬기, 여자는 길쌈이나 바느질 등을 통하여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생활을 오랜 역사를 지니면서 생활화하였다. 우리나라의 어느 학자는 우리가 세계 기능 올림픽 대회에서 잇달아 우승하거나 올림픽 대회에서 주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종목은 주로 손을 사용하는 종목이라고 설파한 것을 들으면 수긍이 아니 갈 수 없다. 예를 들어 금메달 밭이라 할 수 있는 양궁, 탁구, 핸드볼배드민턴, 태권도 등이 주로 손을 사용하는 운동이다. 육상은 주로 발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실적이 부진하지 않은가 한다. 이제는 텔레비전 하나 켜고 끄는데도 리모콘이 할 정도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과연 그렇게 편리함만의 추구가 실로 우리에게 좋은 것일까? "유소득(有所得)이면 필유소실(必有所失)이요, 유소실(有所失)이면 필유소득(必有所得)이라"라고 하는 말이 있듯 얻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을 머리와 기계로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손의 기능의 둔화를 가져와 결국 머리의 퇴화를 가져오지 않을가 걱정이 든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기초적인 손기능을 익히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자기 운동화 끈을 제대로 매지 못하는 아이들, 못 하나 제자리에 박지 못하고, 성냥개비 하나 제대로 그어대지 못하는 아이들로 자란 손기능 미숙아는 결국 정신적인 머리의 미숙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이룩해 놓은 찬란한 문화 유산은 대개가 우리 조상들의 남다른 손재주의 우수함을 밑바탕으로 하여 이룩해 놓은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석굴암, 팔만대장경, 고려자기금속활자 등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손기능을 부지런히 익히도록 훈련 시켰으면 한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들이 손을 벨까봐 칼을 못 쓰게 하고, 손을 델까봐 성냥불을 켜지 못하게 과보호가 너무나 많다.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이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부모의 왕자병·공주병의 교육열은 아이들을 갈수록 기본생활에서 멀어지게 하고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도 바느질도 시키고, 실매듭도 지어보게 하고, 못도 박아보고, 성냥도 켜보게 했으면 한다. 손이 게으르면 머리 늙는다 라는 말이 허투루 한 말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들이 노인층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노인성 치매(癡　)를 막기 위해서 일부러 색종이 접기나 가래를 굴리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손을 부지런히 쓰지 않으면 뇌의 노화 현상이 빨리 온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래서 옛날 우리나라 노인들은 새끼를 고거나 가래를 굴리며 머리 건강에 힘써 왔다. 세계 올림픽 대회에서 양궁이 연속해서 우승한 것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수 천년 동안 면면히 흘러온 손기능의 소산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음미해봐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은 도도히 흐르지만, 참다운 세계화란 세계 속에서 두루뭉실한 문화를 갖는 것이 아닐 것이다. 누가 이야기했듯 가장 민족적인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한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이나 팔만대장경도 다 손으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손재주 문화인 것이다. 1999년에 선정된 세계 10대 음식 중에 우리나라 오이소박이가 당당히 뽑혔다. 맛깔스럽게 담가지는 세계 속의 김치도 손끝 맛으로 이루어지며, 그윽한 곡선의 멋을 한껏 자아내는 한복도 손바느질 솜씨이다. 고즈넉하게 추켜세우는 한옥 지붕도 우리 목수들의 손다듬질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 속의 우리 문화를 탐방했을 때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옛 건축 문화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배흘림 기둥이나 추녀를 날렵하게 치켜세우는 재주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집들을 짓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손재주가 유달리 뛰어난 민족의 후예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손을 부지런히 놀려 머리가 늙지 않는 세계 속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중추적인 민족으로 발돋움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