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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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이나 지하철을 타면 나는 차안을 한번 휘둘러보는 때가 많다. 차안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나를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앉아 있는 사람, 서 있는 사람!
앉은 사람 대부분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지 않으면 졸거나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 기차에 몸을 싣고 있다. 서 있는 사람은 대개가 뒷걸음질치는 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고 있다.
차안 사람 중의 서너 명은 신문을 본다. 그 중에서도 반 이상이 스포츠 신문을 뒤적거린다. 책을 갖고 다니거니 읽고 있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책을 갖고 다니는 사람만 보아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따뜻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넣었다 하는 젊은이들도 많고, 언제, 어디서나 시끌시끌하게 모여서 고스톱을 하는 어른들이 많다는 것은 세계적인 자랑거리가 될 정도이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이 버르장머리 없다고, 책을 안 읽는다고 세대말적인 한탄이나 남의 탓만 늘어 놀 수는 없는 입장이다. 마치 우리나라 속담처럼 똥 묻은 개가 게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한참 정보를 얻고 마음의 양식을 쌓아야 할 젊은이들이 어른들에게 배울 바가 별로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지식이 최초를 배증하는 데는 약 1750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이 기간이 점점 짧아져 150년, 50년, 10년으로 단축되더니, 이제는 5년마다 배증되고, 21세기에는 3- 4개월마다 배증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보화 사회 속에서 그 수많은 정보 지식들을 얻거나 자기 삶의 유용한 양식으로 취사선택(取捨選擇)할 수 있는 체는 부지런한 독서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하여 얻을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문자 언어나 음성언어를 통한 간접 독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의 전철 안에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아예 없거나 기껏해야 한 두 명 정도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의무처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지식의 대부분을 언어를 통해서 얻게 된다. 음성언어이든 문자 언어이든 거기서 얻는 주체적인 지식은 우리 삶의 양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 양식을 얻는 데는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정작 육체를 지배하는 영혼의 양식을 구하는데는 그렇게 인색할 수가 없다. 보신을 하기 위해서 외국에 나가서까지 우리 민족의 조상 할머니인 곰의 발바닥을 구워 먹고 오지만, 마음의 양식인 책을 구하기 위해서 그렇게 애썼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일찍이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의 소유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있다." 라고 했으며, 안중근 의사는 날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또 중국의 성현들은 세상의 맑은 소리 중에서 '책 읽는 소리' 가 가장 으뜸이라고 했을 정도이다. 또한 앞으로의 사회는 3T(Tri-T)가 날로 발전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어느 학자는 예견하고 있다. 3T란 정보통신(Telecommunication), 교통(Transports), 관광(Tourisms)의미한다.
이러한 다양한 시대 속으로 무난히 진입하기 위해선 책을 좀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우선 책을 읽는 모습을 젊은이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한 달에 한 권만이라도…….
나는 혼자서는 되도록 차를 운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시간에 기차나 버스를 타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정도이면 웬만한 부피의 가벼운 책은 너끈히 읽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우리는 너무나 물질적인 성장과 소유에만 매달려 왔다너무나 정신 없이, 그것도 압축 경제 성장을 하면서 달려왔기 때문에 자기 영혼을 돌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사실 물질적인 성장과 발전은 압축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성장을 압축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너무나 정신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자기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정신 없이 달리다가도 가끔 말에 내려서서 자기가 달려온 뒤를 돌아다본다고 한다. 혹시 뒤따라오지 못하는 자기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도 가끔 책을 읽으면서 뒤따라오지 못하는 자기 영혼들을 기다려 보자.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닐 것이 아니라 자그만 주머니 문고라고 한 권 들고 다니자. 휴대폰이 울리듯 자기 영혼의 양식이 부족하다는 연락이 올 때 책을 펴 보자.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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