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제인

제 인

사월의 바람 (3)



	말로만 듣던 한계령!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길이 뱀보다 더 꼬불꼬불하다. 차의 속도는 20~30키로... 참으로 한가한 아침이다. 여기도 진달래가 피었다. 그런데 꽃잎이 여기와 사뭇 다르다. 나무의 키도 작지만 꽃잎이 너무 작아 앙증맞다. 차를 세우고 한참을 쳐다보다 길을 또 재촉했다. 개나리도 이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중인지 꽃잎이 가지에 드문드문 붙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좁은 계곡에 하얀 물체가 눈에 들어온다. 얼음이다. 시상에... 여긴 아직도 겨울이구나. 계곡 위를 바라보니 쭈삣 쭈삣선 바위틈에 하얀 눈이 쌓여있다. 넘 아름다운 절경에 넋을 놓았다. 저기 건너다보이는 설악산 정상에도 눈이 허옇게 누워 있다. 하늘은 파아랗게 개이고. 저 눈 언제 녹을라나.... 설마 만년설은 아니겠지. 설악아! 이제 그만 자고 눈 좀 떠! 이젠 봄이야~! 제비가 왔다구~~! 그래도 설악은 졸고만 있다. 내 말이 씨알도 안 먹혀 들어가는 가 보다. 이십 삼년 전 그해에는 여름에 왔었다. 설악동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은 빵으로 때우고 사람들 틈에 끼여 비룡 폭포 까지 올라갔었던 그 옛날... 여고때 수학여행을 동해로 설악산으로 갔었는데 난 그때 피치 못할 집안사정으로 여행을 못가 그게 내 가슴속에 한이 되었다가, 어느 날 훌쩍 동해로 설악으로 내뺏던 것이다. 그래도 그땐 혼자지만 사진기도 챙겨 가서 아무나보고 한 컷 눌러 달라는 배짱도 있었다. 비룡폭포에서도 마침 혼자 온 총각을 만내 둘이서 사진기를 교환해 가면서 서로 찍어주고 얘기도 하고 내려 올적엔 그의 야영장에 들려 밥하는것도 갈켜주고 밥도 얻어먹고 왔던 나의 이십대는 앨범 속에서 지금도 웃고 있다. 그리고 그 총각에게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한 부분이 있다. 전화하고 편지하라면서 주소와 전화번호를 줬는데 그 약속을 아직까지도 지키지 못했다.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누구랑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사실 얼굴도 이름도 전혀 생각이 나질 않고. 아! 나의 젊음이여! 나의 청춘이여! 그립구나 그리워! 한계령 고개를 훌쩍 넘으니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한계령 구비가 해발 980미터란다. 천고지 구먼. 정상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손도 시리다. 쑥이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다. 이제야 봄을 맞이하고 있구나. 찻집에 들려 커피를 마시고 친구에게 전화해 약을 올리니 아직도 잠이 덜 깬 목소리로 혼자 구경 많이 하고 오라면서 전화를 끊어 버린다. 흥! 알았어! 이젠 갑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오기까지 나의 길잡이가 돼 주신 나의 길잡이 선생님... “여보세요?” “나예요~바뻐?” “응~ 지금 어디?” “응 한계령 정상인데 여기 넘 좋아 반해 가지구 집에 못가겠어” “아~ 그래요~! 근데 지금 회의 중... 나중 통화하자구”. 딸깍! 치! 아침부터 약 좀 올리려고 전화 했더니 약발 안받네! 내가 너무 일찍 전화 했나?.... 시계가 아홉시나 됐는데... 에구~그래 나만 즐기고 가자,,, 깍두기 옆에 군용 지프차가 나란히 서 있다. 아니 내가 지프차 옆에 세운 거지. 차 속에 앉은 군인이 이상한 듯 옆 눈으로 날 바라본다. 임마~ 나 간첩 아냐~ 나두 힐껏 쳐다보고 보던지 말던지 한계령 정상을 벗어났다. 다행히 잡으러 오지 않았다. 내리막길도 오르막길 못지않게 구불거려 천천히 내려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산새가 아름답고 꽃들이 눈에 보인다. 참으로 웃기는 동네다. 왼쪽 계곡에는 얼음이 보이고 오른쪽 길섶엔 산괴불 주머니꽃을 비롯해서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이름모를 야생화... 꽃들이 봄을 열심히 쫒아가고 있다. 산허리를 돌아 중간쯤 오니 앞서가던 관광버스가 주춤주춤 서더니 빽~~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뭔가 싶어 고개를 차창 밖으로 쭉 내밀어 보니 오머~ 앙증 맞은 것! 꿩 새끼가 뒤뚱뒤뚱 길을 가로질러 걷고 있다. 꿩도 놀랬나 보다. 머리를 한참 동안이나 조아리고 있다. 에잉 아저씨도 클랙슨을 좀 줄여서 뭐라 하지! 아기 꿩이 놀라잖아요~! 그래도 아저씨 참 착하다! 한참을 내려오니 오색 마을이란 팻말이 보인다. 이름도 아름답다. 아이들 학교 가는 모습도 보인다. 바람이 많이 부는데 바람을 안고 걷고 있다. “얘야 학교가 머니?” 단발머리 여자애가 길을 가다말고 차를 세우고 묻는 나를 바라본다. “아뇨 가까워요”. “그래 그럼 걸어갈래? 태워 줄까?” 여자애는 쑥스러운지 대답대신 씩 웃는다. 여자애가 차를 타자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애도 쫒아 온다. 여자애는 3학년 남자애는 4학년 이란다. 것도 모르고 남자애더러 동생이니 하고 물었더니 기분이 상하는지 “아니예요~ 애는 3학년이고 저는 4학년 이예요” 하며 볼멘 목소리로 대답한다. 여자애는 덩치도 있고 키도 크고 했지만 사내아인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아서 그렇게 물은 것이다. “아줌마는 어디서 오셨어요?" 용감한 남자 아이가 날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아마 말씨 땜에 물었으리라. “응 아줌마는 저~ 창원에서 왔단다.” “그러세요~ 우리친척들도 창원에 살고 있어요. 동생도 있구요.” 이번엔 여자아이가 얼굴을 활짝 펴며 반가워한다. “아줌마 창원에는 뭐가 유명하죠?” 갑자기 쪼그만 애가 창원에 대해서 묻는다. “응 창원은 계획도시고 또 공업단지로 구성돼 공장이 많은 도시란다.”등등 설명을 해주다보니 학교 앞에 도착했다. “공부 열심히 해~ 안녕!” 학교 교문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나 어릴적 학교 다니던 생각이 난다. 산골 조그만 동네에 것도 외딴집에 밤이면 여우가 집안까지 내려오던 동네.. 그래서 우린 어둠만 내리면 집안에서 꼼짝도 안했다. 밤이면 으레 들려오는 부엉이 우는소리. 엄마 부엉이가 부~~엉하면 아기 부엉이는 부엉! 짧게 엄마목소리를 흉내 내던 겨울밤. 학교 갈려면 산 아래로 꼬불꼬불 지나야 하는데 거기가 너무 싫었다. 무서워서. 울집 건너 동네에 나와 같은 학년 남자아이가 딱 한명 있어 둘이서 늘 손잡고 다녔는데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신랑 신부라 놀려 그것도 참 참기 힘들었다. 걔도 나만큼 늙었겠지. 야~ 박 규식! 어디살고 있니? 아이들을 오색 초등학교 앞에 내려주고 한참을 내려오니 이번엔 군인이 차를 세웠다. 교육을 받으러 가는데 차가 없어 좀 태워 달란다. 나이는 26세, 계급은 소위, 애인도 있는데 같은 군인 이란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전라도 군산이란다. 군인과 얘기하며 오다보니 아들 생각이 났다. 우리애도 올 하반기쯤엔 군대를 가야 하는데.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적성에 맞아 직업 군인을 선택 했노라며 웃는다. 군인를 5xx 무슨 부대 앞에 내려주고 오다보니 더덕 파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 생각이 났다. 더덕을 이만 원치 사서 차에 싣고 홍천으로 향했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