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봉 일출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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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 새해 첫날 새벽
하얀 입김이 그대로 얼어붙을 듯한 새벽공기,
얼굴을 에이듯 스치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어둠속 숨소리 조차 잠든 아파트촌을 뒤로 하였다.
어둠의 장막사이로 대암산 산마루가
언제나 처럼 둥근얼굴 한눈 가득히 시린 얼굴로
새벽손님을 맞는다.
하늘에 별도 보인다.
오늘 해맞이가 괜찮을 것 같다.
육백미터 대암산 산마루를 단숨에 치고 오르니 동이 트기 시작한다.
어둠속 잠이 덜깬 대암산보다는 저멀리서 뾰족히 손짓하는
용지봉이 더 반갑다.
완만하게 등허리를 길게 깔고 고개를 쳐든듯한 자태의 용지봉,,,
동튼 아침 하얀 얼굴로 활짝 미소 지으며 부시시
잠깬 얼굴이 마냥 정겹다.
아침이슬 머금은 갈대숲조차 내 발길에 보조를 맞추듯
차가운 공기속에서도 숨이차듯 부시럭 신음 소리를
끊임없이 내 뱉는다.
갈대숲 사이 늘어선 바위들, 수목들을
잠꾸러기 아들놈 깨우듯 쓸어 내리며 헤치면서
숨이 턱까지 차게 오른 용지봉 산정에는 부지런도 하여라,,,
벌써 백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돗자리 젯상을 차려놓고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들.
단체로 올라와서 서로 쳐다보며 화기애애한 산악회 사람들.
서로 손잡고 서로 꼭 껴안은 마냥 행복한 연인들.
동네사람들끼리 온듯한 한무리의 시끌벅적한 아낙네들.
굵게 패인 주름살에도 함빡 웃음 머금은 초로의 할아버지, 할머니.
어리둥절 따라온 듯한 꼬마들과 아빠 엄마 한가족들.
모두들 동쪽 한방향을 함께 응시하며 경건하고 근심없이
마냥 밝은 얼굴들이다.
희망을 담뿍 머금은 동심의 해맑은 얼굴들이다.
오늘만은 그 누구도 삶에 찌든 그런 슬픈 얼굴이 아니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내내 모두들 저렇게 똑같은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한방향을 한마음으로 응시하는 저런 마음들 이었으면 좋겠다.
일년에 한번 지금 이순간이나마 모두가 한마음되게 만드시도록
조물주는 만물을 그렇게 창조 하셨는가 보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이지만 오늘 만큼은 새로운 희망이
되어 만인의 마음속에 가득가득 차도록 그렇게 만들었는가 보다.
이렇게 세상사 한번한번씩의 매듭이 있기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꿈과 희망이 있으니,,, 그래서 살도록 그렇게 창조 하셨는가 보다.
동쪽하늘끝 아득히 멀리 수평선인가? 얇은 구름띠인가?
하늘과 마주친 그곳에 쇳물이 끓어 오르듯
일직선으로 길게 이글거리는 광채가 빛난다.
새생명을 뱉어내기 직전 절정에 다다른 산모의 신음소리인양
한참을 끓어 오른다. 점점 길게,,, 점점 넓게,,, 점점 강하게,,,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마지막 절규를 내뱉으며
끓어 오르던 쇳물이 일순간 한점의 찬란한 빛으로 똘똘뭉쳐
강력한 한줄기의 빛이 되어 바라보는 내눈속을 파고든다.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예리하게 파고든다. 눈이 아플정도로,,,
와,,! 하고 내지르는 함성소리와 박수소리는 백여명의 합창이 되어
용지봉 산마루를 메아리 치듯 퍼져 나간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새벽에 듣는 백여명의 함성소리는
희망맞이, 꿈맞이의 색다른 화음이 되어 대규모 합창처럼
야외공연장을 울려 퍼진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려 애써 보았다.
사랑하는 내 가족들, 지난해 서로 어려움 많았던 회사 동료들,
서로 도움주던 여러 친지, 친구들, 인터넷에서 만난 친구같은
모든 사람들,,,
많은 사람들 이름을 한번씩만이라도 생각하려 애썼다.
모두다 소중한 사람들인데,,,
한번씩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분들 모두 잘되기를 바라는 것일텐데,,,
하고 진작부터 마음먹고 올라왔다.
일출을 볼때마다 지구의 자전속도가 저렇게 빠른가? 생각할 정도로
한점의 빛이 어느새 둥근모습 되어 금방 허공에 떠오른다.
어렸을 때 닭이 알낳는 모습을 호기심 있게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닭이 알을 낳듯이 둥근 불덩이가 쑤욱 하고 금방 제모습을 찾아 둥실
허공에 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모습이 저럴 것 같다.
아니 그보다 일년에 한번 황금보다 더한 희망을 주는 생명의 알을
조물주께서 낳아 주신 것이라고 해야 옳겠다.
모두가 저 희망의 알을 먹고 살아 가지 않는가?
생명은 곧 희망이요. 희망은 곧 생명임을 가르치려 조물주는
황금빛 희망의 알을 쑥 낳아 모두들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하셨음이라.
둥실 떠오른 눈부신 햇살에도 아침공기가 매우 차다.
두시간을 강행군한 산행에 속옷까지 젖을 정도로 배인 땀에
한기를 느껴 부지런히 하산했다.
떠오른 새 태양, 새희망이 등뒤에서 밀어주어 돌아 올때는
훨씬 수월하게 내려 온 것 같다.
올해 기사년 새해 첫 태양은 과학적으로 실질적인 21세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깊다고 하겠다.
집에 돌아와 사우나 뜨거운 물에 언몸을 녹이고 나니 파랗게 개인
하늘아래 몸과 마음이 새처럼 날아갈 듯이 아주 가벼워 졌다.
이제 올해 남은 364일 모두 몸과 마음이 오늘 같이 좋은
날만 계속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분 좋은 새해 첫 출발이 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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