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호칠이

호칠이

지리천왕봉, 칠선계곡 산행기



	일정 : 1999년 10월24일(일요일). 00시--20시. 코스 : 백무동(하동바위)-제석봉-천왕봉-칠선계곡-추성리 한국 3대계곡중의 하나, 지리산 10경중의 하나,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계곡, 인적이 드물어 지리산의 가장 은밀하고 신비스런 계곡, 험준함으로 인해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죽음의 골짜기, 등 수많은 별칭을 갖고 있는 칠선계곡이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 임은 당연하다. 글로서만 보아왔고 말로만 듣던 그 칠선을 내몸으로 직접 부딪쳐 보아야 겠다는 것은 꽤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희망사항이기도 하였다. 십수년전부터 일찌감치 산을 친구로 삼고 다니시는, 웬만한 체력으로는 따라가기 힘든다는 평을 듣는 우리회사 배부장님팀의 하루회원이 되어 기꺼이 따라 갈수 있었던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리산 중에서도 특히 마음을 끌어 당기는 마력같은 것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점과 한달전 지리산 종주를 했던 경험이 내겐 보약이 되어 최소한 그분들께 폐를 끼치지는 않겠다 하는 일말의 자신감에서 였다. 그만큼 지난번의 종주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매우 컸던 것 같다. 완주후에 온몸으로 느끼게 되고, 머리속에 남게되는 표현하기 어려운 소중하고 수많은 자산에 비교하면 산행중의 땀과 고행은 차라리 즐거움 그 자체더라 하는 생각을 갖게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 음력 구월 보름날 밤12시 일행 세분을 내차에 모시고 어둠을 가르며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진주-대전간 고속도로를 내달려 생초I/C를 지나 백무동 지리산 매표소에 도착 하였다. 일행 세분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산꾼님들이라 오늘도 길잃어 버릴 걱정일랑 접어두고 마음푸근한 산행길이 되리라 생각하며 차를 주차시키고 바로 등산채비를 갖췄다. 새벽2시반에 도착한 백무동 주차장은 이시간에도 우리같은 야간산행을 위한 단체관광버스 등산객 일행으로 북적대는 분위기다. 새벽 4시까지는 야간산행금지라는 관리인의 제지 때문에 출발부터 차질이 생겼다. 관리인의 눈을 겨우 피해 3시가 넘어서 부터 산행을 시작 하였다. 둥근 보름달은 중천에 떠있으나 우거진 수풀사이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낼뿐 후래쉬를 끄면 지척이 분간 안되는 울창한 숲속 암흑길이다. 더우기 초행길의 나로서는 일행의 뒷모습만 놓칠세라 쳐다보며 열심히 따라 걸을 뿐이다. 천왕봉에 살던 여신이 남자를 끌어들여 100명의 딸을 낳아 무당으로 만들어 팔도로 퍼져나간 곳이라는 전설로 백무동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황당한 얘기를 떠올리며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해서 이어지는 숲속길을 한참을 걸었다. 백무동 계곡의 풍광도 좋기로 유명한데 어둠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울창한 수풀뿐, 사방이 어둠의 숲속이지만 그래도 이 코스에 있다는 유명한 하동바위의 모습은 볼수 있겠지 하는 기대속에 열심히 걸었지만 일행 누구도 아무 말없이 걷고 있을 뿐이다. 갈수록 숲은 깊어지고 점점 좁아지는 길이 조금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 아니나 다를까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신다. 한분은 위쪽에서 두분은 아랫쪽에서 어둠속 길을 찾아 한참을 애쓰신다. 나도 길을 찾아보려 사방을 후래쉬를 비추며 살펴 보지만 도대체가 한밤중 숲속에서 어떻게 생긴 것이 길이고 길 아닌곳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분간이 안되니,,,,. 이거 원 참,,,. 세분들께 맡기고 기다릴수 밖에. "나혼자 또는 누구를 내가 데리고 왔으면 꼼짝없이 지리산 귀신이 되고 말든가 했겠구나". "지리산에 특히 야간산행은 경험없이 해서는 정말 큰일 나겠다" 하는 교훈을 내가 나에게 몇번이고 다짐하며 가르친다. 세분 경험을 바탕으로, 뒤따라 올라온 단체등산객 가이드의 몇마디 도움으로 겨우 길같지 않은 희미한 길을 따라 숨가쁘게 한참을 올라갔다. 저 단체등산객 가이드도 우리 후래쉬 불빛에 착각으로 여기까지 따라온 것 같다. "허허,,, 그럼 우리는 서툰 가이드의 가이드 역할을 했네" 하는 마음에 속으로 쓴웃음을 짓게 한다. 두시간여를 걸어서 겨우 정규코스와 만나는 지점에 이르러 보니 역시 우리가 올라온길은 등산로폐쇄라는 팻말이 붙어 있고 참샘은 저아래 수백미터 지점에 있단다. 1시간 가까이 시간손실을 본 것 같다. 이제라도 길을 제대로 찾은 것만도 다행이지 하는 마음에 식수보충을 포기하고 갈길을 재촉했다. 한달전 종주를 해봤다는 자부심으로 조금은 쉽게 봤던 산행길은 장터목을 들르지 않고 길없는 길을 만들면서 산허리를 가로질러 제석봉을 오르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한다. 체력이 아직은 충분치 않음을 지리산은 내게 말없이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지리산 앞에서 다시한번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한다. 아침 7시10분, 자빠져 있고 늘어서있는 고사목집단을 가로질러 제석봉에 올라보니 해는 벌써 천왕봉 산등성이 옆으로 떠올라 있고 일출 보겠다는 사람이 겨우 이제 왔느냐고 놀리듯이 내눈을 정면에서 찌르며 고개를 돌리게 한다. 반대편 장터목쪽으로는 거대한 구름덩어리가 높게 솟은 봉우리를 한입에 삼킨듯한 괴물같은 모습을 하고 내눈과 똑같은 높이에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 장관을 연출한다. 발밑에 내려다보는 운해도 좋지만 건너편에서 눈높이로 흘러가는 거대한 구름덩어리를 감상하는 맛도 새로운 감회를 불러 일으킨다. 아침 7시40분, 꼭 한달전에 서 있었던 천왕봉에 다시 섰다. 단풍철이라서 그런지 천왕봉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천왕봉 올라 가면서 장터목쪽으로 내려가는 수백명의 등산객을 보았는데 정상에는 아직도 그만한 인원이 더 남아 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북적대서 일까, 희미한 연무같은 안개가 사방에 끼여서 전망이 뒤떨어져서 일까, 한달전 올라 왔을 때보다는 감탄사로 이어지는 감흥이 조금은 덜 한 것 같다. 아침날씨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그렇게 혹독히 추운 날씨는 아니나 올라오면서 땀으로 흠뻑 젖은 속옷 때문에 쉐터와 등산잠바를 끼어 입어도 오슬오슬 제법 추위를 느끼게 한다. 정상에서 라면4개를 끓여서 싸온 도시락과 함께 아침을 해결 하였다. 남한 내륙최고봉에 앉아서 추위속에 맛보는 뜨거운 라면국물맛은 아는 사람만 알겠지. "라면회사 광고를 여기서 찍으면 어떨까? 최고의 찬사를 동원해서,,,." 내려가야할 칠선계곡을 바라다보니 발아래는 빽빽한 수목이 깍아지른 듯한 급경사를 이루고 있고 그 이후로는 완만히 흘러내려가며 몇굽이를 휘돌고 휘돌아 까마득히 정말 길게도 뻗어있다. 뻗어 있는 끝지점에 아스라히 목적지 추성리가 조망되는데 갈길이 저렇게 멀어도,,,. 하산길인데,,,,. 힘들어봤자 얼마나,,,.하는 마음으로 정상을 내려섰다. 아침 9시다. 하산길 초기는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답게 전나무, 잣나무종류들과 이름모를 수목들이 엉키고 설킨 숲속에 경사 60-70도의 가파르고 거칠기 그지없는 내리막이다. 장구한 세월 수명을 다해 쓰러져 있는 고목, 쓰러진 고목 밑둥지부터 다시 자생하여 자라는 놈, 하늘높이 치솟아 위용을 뽐내지만 아래등걸은 죽어있고 높은 윗부분만 살아 있는 듯한 놈, 바위와 나무등걸에 엉켜 붙어 있는 두터운 이끼들, 서로 엉켜 자라고 있는 온갖 이름모를 희귀식물들이 어우러져 음침하다시피한 원시의 모습 그대로다. 거칠고 급한 경사길을 1시간이상을 내려가니 몸은 피곤해지고 쉬고픈 생각이 간절해질 무렵 급경사가 끝나고 요란한 계곡물 소리와 함께 내리쏟는 폭포가 피곤을 순식간에 잊게 한다. 이름하여 마폭포 란다. 거칠기 그지없고 가파르고 울창한 원시림 끝에 생명수같이 흐르는 맑디 맑은 계곡물, 폭포수, 그리고 아래로 길이가 전혀 짐작이 안되게 한없이 굽이쳐 내리뻗은 계곡, 사람의 발길이 드문 지리산의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곳이라는 표현이 실감난다. 속된 표현으로 지리산이라는 팔등신 미녀의 은밀한 그곳이 연상된다면 너무 비약인가? 아래에서 올려다 보니 두갈래의 계곡물줄기 폭포다. 천왕봉과 중봉사이에서 내리쏟는 물과 통천문아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서로 만나면서 폭포를 이룬곳이라 한다. 두갈래의 물줄기가 각기 2단으로 폭포를 형성하여 합이 4단의 폭포수가 시원한 비경을 연출한다. 마폭포 바위위에서 바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 정상에 유독 키가큰 이름모를 나무 한그루가 운치 좋게 서있다. 주위 다른 수목들은 노랑, 빨강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입었는데 저 혼자서 파란 하늘아래 녹색투구를 쓰고 고고하게 서있다. 주위의 형형색색의 수목들을 군사로 거느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지키는 장수인양,,,. 칠선의 파수꾼인양. 잠시 양말을 벗어 바위위에 말리며 마폭포의 비경을 설탕과 크림삼아 커피 한잔에 섞어 끓여 마시고 이제 시작에 불과한 칠선의 하산길을 재촉했다.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의 하산길은 말 그대로 고행의 연속이다.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계속되는 계곡의 양옆으로 겨우겨우 난 길이 끊어질 듯 이어지고 끊어졌다 하면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편에 다시 새길이 이어지기를 수십차례 반복한다. 피곤을 느낄때마다 쳐다보는 계곡의 풍광은 순간순간 피곤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한 볼거리를 계속 제공해준다. 말그대로 굽이굽이 휘돌아 흐르는 청정스런 물과 폭포와 소, 가지각색 크고작은 바위들의 잔치다. 잔치라는 표현이 딱 맞게 하나하나 특징 있게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서로 질세라 경쟁하는 그들의 대규모 경연장이다. 세상의 모든 폭포와 소의 모습은 모두다 품에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매끄럽게 바위를 녹이며 흐르듯 떨어지는 폭포, 마치 다이빙하는 폼으로 바로 물줄기를 내리꽂는 폭포, 수직으로 떨어지다 장애물을 만나 그대로 포말이 되어 안개처럼 떨어지는 폭포. 심사원이 되어 각기 점수를 매겨 보려니 잘 안된다. 모두다 예뻐 보이고 개성 있어 보이는 미스코리아 경연대회 심사위원이 이런 마음일거라는 생각이든다. 수많은 무명폭포와 무명소들을 곁눈질로 감상하며 하염없이 걷다가 또계곡을 가로질러 건너기를 여러차례, 이제 반은 내려 왔겠지 하는 생각에 그중 풍광이 뛰어난 폭포수 옆에 자리를 잡고 남은 음식에 소주를 한잔씩 돌리며 조금은 여유롭게 칠선의 산세를 음미한다. 칠선의 단풍은 노란색이 주로 많구나 생각하며 지나 왔는데 여기서는 빨강, 노랑, 그리고 이름모를 분홍빚의 파스텔질감의 단풍이 파란 하늘아래 꽤 많이 어울어져 있다. 원색 그대로 호화찬란 하다는 표현보다는 칠선의 단풍은 원시적으로 기괴하다싶은 산세에 보조를 맞추듯 표현하기 어려운 기묘한 색깔들의 배합으로 태고의 풍광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1시간 가까이 한참을 더 힘겹게 내려오다 보니 거의 90도로 내리꽂으며 포말을 내뿜는 지도에 나와있는 대륙폭포가 보인다. 이제까지 보던 폭포 보다는 확실히 더 점수를 줄수 있을 정도로 장관이지만 보는둥 마는둥 부지런히 갈길을 재촉 했다. 잠시후 칠선계곡을 상징한다는 칠선폭포 팻말이 보인다. 12시 40분이다. 그래! 역시 칠선의 대표 답게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조화된 멋진 폭포인데 그것보다는 팻말에 쓰여 있는 거리 안내가 마음을 거슬리게 한다. 잘못된 것 아냐?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천왕봉 4.6Km, 추성리 5.4Km란다. 아니! 아직 반도 못 왔네! 그리고 4시간 가까이나 고생했는데 겨우 4.6Km 왔단 말인가?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표시된 거리는 지도상의 직선거리이고 실제 걸어온 거리는 오르락 내리락, 지그재그로 수없이 계곡을 건너가며 내려온 거리를 감안하면 저기 표시된 거리의 두배는 될것이라는 말씀이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아뭏든 아직 반도 못내려 왔다. 칠선! 소문 그대로 깊고도 길다. 그래 너의 명성 그대로 내려가서 누구에게든 전하리라. 졌다. 졌어!. 내려가면 갈수록 수량은 많아지고 폭포와 소와 단풍잔치의 맛과 깊이는 점점 더해 감을 느낀다. 버스 차창밖 처음가는 길가의 모습을 감상하듯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칠선의 풍광을 곁눈질하며 피곤을 달래며 힘겹게 묵묵히 내려감을 계속한다. 걷다가 잠시 떠오르는 감상을 수첩에 메모하면서 서있다가 앞을 쳐다보니 일행이 보이질 않는다. 방금 계곡을 건넜는데 일행뿐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길은 끊어져 있고 뒤로는 계곡물이고 간혹 보이던 등산객 꼬리표도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길을 찾아 보지만 없다. 순간 당황. 야호를 힘껏 소리쳐 불러 봤지만 대답도 없다. 아까보다 훨씬더 당황. 다시한번 힘껏 야호를 외쳐보니 비스듬히 계곡을 휘돌아있는 언덕너머에서 일행의 야호 대답이 온다. 길아닌 길을 만들며 바위사이를 헤집고 가파른 언덕을 뛰다시피 올라보니 저만치 숲속에 일행의 뒷모습이 겨우 보인다. 휴,,, 됐다. 칠선의 원시계곡을 우습게 보고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졸지에 길 잃어 버릴 뻔 했다. 일행에게는 길잃어 버릴뻔 했다는 사실은 아닌척 시치미 뚝 떼고 이제부터는 행여나 뒤처질세라 열심히 따라 붙었다. 일행분들은 그냥 장난스런 기분으로 야호 소리 한번 쳐본걸로 알고 계시겠지?,,,,,. 그러고 보니 지난번 종주코스는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므로 길잃어 버릴 걱정이 덜 하겠다. 이렇게 인적드문 깊은 산길은 길 잃어버리기도 쉽겠고 조금만 비가와도 계곡을 건널수가 없을테니 양쪽은 절벽이요, 가도오도 못하고 첩첩산중 미아신세 되기 딱 맞겠다. 역시 듣던바 대로 위험요소가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쉬어가는 틈에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그니 뼈속까지 얼얼하게 스며드는 얼음장물이다. 가장 고생한 발바닥 너도 좀 쉬어야지,,,,. 아래로 내려 갈수록 폭포보다는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는 짙푸른 특급수영장 소의 자태가 점점 빼어나다. 이름만큼 멋진 자태의 비선담, 1백평도 훨씬넘게 보이는데 짙푸른 물색에 깊이도 짐작이 안되는 칠선에서도 가장 크다는 옥녀탕, 일곱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고 곰과 노루와의 동화같은 전설이 남아 있다는 선녀탕, 하나같이 인공으로는 흉내내기 불가능한 대자연의 예술품 들이다. 옥녀,선녀탕을 지나 내려가니 길은 훨씬 수월해 졌지만 굽이굽이 내려 흐르는 계곡은 물잔치, 단풍잔치를 계속하고 벌써 5시간이나 걸어 왔는데도 아직 첩첩산중, 어지간히 지친 몸에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걸음걸음의 연속이다. 한참을 묵묵히 걷다보니 건너편 산중턱에 걸치듯 매달리듯 지어놓은 집이 한채 보인다. 딱 한채인데 용도가 무엇인고? 하는 생각 보다 반가움이 우선 앞선다. 이제는 길고긴 하산길 막바지라는 생각이 든다. 땡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가 보이며 한참을 가니 사람사는 농장도 보이고 민가도 몇채 눈에 띈다. 감나무, 호도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라 인상 깊은데 두지동이라 부르는 마을이란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차를 주차시켜 놓은 백무동까지 산을 하나 넘어 한시간 거리란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리로 넘어가서 바로 차를 타고 돌아가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마을에서도 한참을 더걸어 작은 언덕을 오르니 드디어 추성리 마을이 바로 저아래 보인다. 주차장에 관광버스도 보인다. 문명과 격리된 태고의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여 다시 문명과 접하는 지점에 서있다는 감회가 머리를 스친다. 오후 3시정각 추성리에 도착했다. 꼭6시간 동안의 길고긴 하산길이었다. 마을 초입 상점에서 들이킨 맥주 한캔의 맛은 12시간 산행의 피곤을 일소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안부겸 자랑겸 집에 전화하고 나니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자부심에 만감이 교차한다. 때묻지 않은 계곡의 긴터널을 지나오면서 마치 이몸도 거기에 동화되어 속속들이 정화되어 빠져나온 느낌이다. 오랫만에 묵은 때를 벗겨낸 개운함이 피곤속 저변에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곱선녀, 칠선! 너희들은 천왕봉처럼 인파로 인해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고 보니 칠선은 자기몸을 지킬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나 쉽게 접근을 불허하는 나름대로의 저력을 곳곳에 갖고 있다. 진정 산에서 위안을 받고 산을 사랑하고 아낄줄 아는 사람이 진실된 마음을 준비하고 청혼을 해야 자기를 허락하는 사려 깊은 계곡이란 생각이 든다. 칠선에게 마음이 있는 사람은 특히 기후의 고려, 철저한 사전준비물, 시간대의 충분한 고려, 그리고 반드시 경험많은 중매쟁이(산행안내자)를 앞세우고 찾아가야 바람을 맞지 않는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태고의 그자태를 오염시키지 않는 마음자세를 준비하여 청혼 한다면 칠선은 반드시 자기몸을 허락 하리라 생각한다. 백무동에 주차시켜 놓은 차를 가지러 가신 배부장님께서 불과 30여분만에 차를 몰고 돌아 오셨다. 지나가는 차를 두번 불러 세워 다녀 오셨단다. 수완도 좋으시지,,,. 산행 계획단계부터 끝까지 산꾼 대선배로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에 충분하셨다는 생각이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상에서 1시간을 못넘기고 운전대를 배부장님께 맡길수 밖에 없었다. 쏟아지는 잠을 감당 못하고. 나이는 내가 한참 젊은데,,,. 잠깐 꿀맛같은 잠에 빠진사이 어느새 조이사님께서 운전대를 이어 잡으시고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를 내달리고 있다. 단풍철 행락인파로 고속도로는 의령에서부터 많이 밀려 있단다. 창원에 도착하여 일행끼리 생맥주 한잔씩 돌리고 집에 도착하니 밤8시가 넘었다. 집을 출발한지 꼭 20시간만이다. 오늘밤은 오랫만에 깊고깊은 잠속에서 여행을 할것이고 주마등처럼 지나간 기나긴 칠선의 모습을 꿈속에서 한번 더 볼수 있으리라,,,. 동행해 주시고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주신 세분 산꾼 선배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1999년 10월 27일 김 두 호 씀. 일정 및 경비 요약 : 1999년 10월24일(일) 음력 구월보름날. 날씨: 구름조금, 맑음. 00:10 창원출발 본인운전, 조정관 이사님, 배중빈 부장님, 양계옥 공장님 02:30 백무동 주차장 도착, 야간산행 4시까지 금지로 계획차질. 03:10 백무동 출발, 관리인 눈을 피해 산행시작. 올라가다 길을 잘못들어 길찾아 헤매다 1시간 가까이 지체. 05:30 정규코스와 만나는 지점 도착. 참샘은 수백미터 아래. 식수보충 포기. 07:10 제석봉 도착. 07:40 천왕봉 도착. 정상에 많은 인파. 정상에서 라면과 도시락으로 아침 해결. 09:00 천왕봉 출발. 가파른 내리막길. 10:10 마폭포 도착. 따끈한 커피 한잔. 11:45 무명폭포. 남은 음식과 함께 소주 한잔. 12:30 대륙폭포. 12:40 칠선폭포. 13:40 비선담. 13:50 옥녀탕, 선녀탕. 15:00 추성리 도착. 캔맥주 한잔. 배부장님 차가지러 백무동행. 15:50 추성리 출발, 창원행. 문산에서 잠 때문에 배부장님께 운전대 인계. 19:20 창원도착. 일행 생맥주 한잔씩. 20:20 집도착. - 차량연료비 : 30,000원 - 통행료 : 7,600원 - 입장료/주차비 : 7,000원 - 맥주/안주(하산후) : 21,000원 계 : 65,600원 (1인당회비 15,000원) 찬조 : 조이사님 추성리에서 캔맥 4개 배부장님 예산적자분 5,600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