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호칠이

호칠이

운문산(雲門山)을 부친과 함께 오르다



	운문산(雲門山)을 부친과 함께 오르다. 지난주에 혼자 다녀왔던 운문산과 석골계곡을 오늘 또 갑자기 다녀왔다. 세번째 가게 된 산이지만 이번 산행은 나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산행이랄 수 있다. 부모님 두분과 처자식, 가족을 모두 데리고 그야말로 산 좋고 수풀 좋고 물 좋고 바위 좋은 운문산 남쪽 석골사 계곡에 자리를 펴게해 청정스런 계곡속에서 하루를 보내게 하였고 칠순을 넘기신 부친을 모시고 정상까지 산행을 동행 했다는 의미에서 평소 바라왔던 작은 희망을 하나 실현했다는 만족감이 가장 머리에 남는 하루가 되었다. 평소 운문산이란 이 곳이 유별나게도 인상에 깊이 남아있었다. 경남과 경북의 경계에 앉아 있는 이 산은 남과 북으로 뻗은 계곡들의 자태와 턴넬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수풀, 치마바위라 불리우는 거대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형상의 암벽들, 굽이굽이 길게도 뻗어 내리는 바위와 청류들이 그야말로 심산유곡이라 할 수 있어 영남알프스라 불리우는 일곱개의 봉우리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 왔다. 항상 다시 찾아 가고픈 산중의 하나로 운문산은 나에게 그렇게 각인되어져 왔었다. 이 산을 말하는 방법으로 땅위에 솟았다는 표현보다는 푸근히 앉아있다는 표현이 걸맞을 성 싶도록 무언가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후덕스러운 산이라 함이 적절할 것 같다. 지난주 여름휴가 끝나기 이틀전인가 나혼자 올랐던 이 산을 갑자기 온식구들 한차에 꽉 채우고 부랴부랴 떠날수 있었음은 이 산 만큼은 내 피붙이에게 냄새나마 꼭 맡게 해 줘야겠다는 평소 품었던 작은희망의 소산이라 하겠다. 석골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내리고 바로 들어서는 석골사 초입에 굉음과 함께 물보라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는 오십미터 높이 석골폭포의 위용에 칠순 부모님 안면에 함박웃음 지으시고 처와 아이들 모두 환호성을 내지르니 이것만으로도 이번 우리 가족 갑작스런 이벤트는 성공했다는 자위를 하게 된다. 계곡을 따라 나란히 잘 정돈된 등산로를 따라 한 오백미터 올라가 특급수영장 부럽지 않게 작은 폭포와 소(沼)가 어울어진 목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름휴가철이 끝나가는 때인지라 길고 깊은 계곡에는 우리말고 다른 손님들 한 그룹도 눈에 뜨이지 않는다. 시멘트벽 감옥에서 탈출해서 자연속에 그대로 흡입된 神仙가족 모습 그대로이니 정말 잘왔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해준다. 수영복 차림이 되기에 급급한 아이들 둘은 벌써 특급수영장에 풍덩 들어가 정신모르고 자맥질부터 시작한다. 공수특전부대 장교출신이신 우리 부친, 이젠 그 혈기 왕성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는 먼 옛날 동화 같은 얘기로만 손주들에게 들려주시는 할아버지 되어 계시지만 처음 와보시는 이 운문산의 경관에 취하시어 먼저 등산화 챙겨 신고 정상까지 다녀 오겠다는 나를 따라 나서신다. 이미 석골사 초입부터 부친께서는 정상을 오르겠다는 생각을 굳히신듯 걱정스레 한마디 하시는 어머님 말씀은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후 네시간 너머의 산행은 내가 장성한 이후로는 처음으로 아무도 없는 깊은 산중에서 부친과 나사이에 진한 피맛을 느끼며 함께 땀을 섞으며 함께 성취감을 느낀 아주 진하디 진한 잊을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일년여전에 지리산을 자주 다니던 나에게 한번 데려가 달라시던 부친께서 며칠새 곧 생각을 바꾸시고 이젠 근력이 도무지 안되겠노라고 자신없어 하시며 쓸쓸한 표정으로 포기하시던 기억이 있다. 가끔 뒷산을 오르내리시던 생각만 하시고 가고픈 마음이야 마음뿐이신 것을 세월의 흐름에 이제는 과욕에 지나지 않음을 밤새 생각하시고 쓸쓸해 하심에 잘 생각하셨노라고 말씀 드리며 넘어 갔었다. 별다른 위로의 말씀 한마디 드리지 못하고. 그러나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 중의 하나, 꼭 보여드리고 싶었던 운문산 계곡과 정상을 부친과 함께 오른 일은 분명히 하나의 사건으로 뭔가 말할수 없을 정도의 굉장한 기쁨이 되어 마음속 저밑에 살아서 꽉꽉 다져져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부친께서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시며 오랫만에 기분좋은 피곤함에 취하시어 오늘밤은 깊은 잠 아주 달게 주무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름에 가리워졌던 운문산 정상은 올라보니 순간순간 걷혔다가 다시 들어서는 구름 사이로 영남알프스 봉우리 하나하나 확인하며 되새겨 보기에 충분했다. 정상아래 상운암, 오막살이 같이 작은 암자에 고즈녁히 모셔져 있는 아기부처처럼 쬐끄만 불상은 그 자리에 여전한 모습으로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운문산은 정상에서의 전망보다도 정상까지 올라가는 수풀턴넬 산길의 정취와 순간순간 발걸음을 붙들어 매는 듯 볼거리를 제공하는 계곡의 빼어난 경치가 돋보이는 산이다. 숨겨놓은 보석이 많은 산임을 짐작케 하는 산이다. 하산하여 땀으로 세탁한 옷을 벗어내고 계곡물에 몸 담궈 신선처럼 목욕하고 나니 싸온 도시락에 라면국물에 김치 하나만으로도 최고의 진수성찬이다. 애들도 종일을 물속에서 텀벙거리고 나니 시장함에 게눈 감추듯 도시락을 해치웠다니 사소한 음식하나라도 귀중함을 알게 됐으리라. 돌아오는 차속에 모두들 만족해 하는 표정이 좋아 보인다. 좀 무리한 산행에 피곤하시겠지만 기분좋은 표정되어 눈 붙이시고 계시는 아버님, 걱정 하셨지만 두 부자가 무사히 정상을 올랐다왔고 하루를 자연에 묻혀 시원하게 보내셨으니 그래서 기쁜 어머님 표정, 살갗 탈 염려 없이 수풀그늘에서 시원한 계곡물에서 발 담그고 놀았으니 만족한 집사람 표정, 아이들은 여름 피서지로 해수욕장보다, 수영장보다, 온천보다도 운문산계곡이 최고로 좋았단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아빠 휴가때는 무조건 계곡으로 가자고 흥분한다. 두루두루 경제적이고 아주 의미있고 소득있는 가족여행이 되었다. 순간의 판단이 작지만 모두에게 기쁨을 만들어 줄수 있다. 순간의 실행이 작은 것 부터 집안의 행복을 좌우할수 있다, 고 할 만큼 갑작스레 생각하고 갑작스레 떠난 삼대가족의 하루 여행길이 아주 괜찮았다. 가장의 역할이 중요함에 책임감을 다시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2001. 8.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