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 형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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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이니 벌써 삼십몇년전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중학교 입학시험 전쟁이 지금의 대학입시 만큼이나
치열할 때였으며 어린 학생들 학교에 밤늦게 까지 붙들어
공부시키던 때이다. 공부하느라 힘들었던 기억과 함께 그때
우리집안에 시집오신 사촌형수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 부친께서 그때 직장을 갑자기 먼 곳으로 옮기시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라 어린 나를 배과수원 농사를 짓는 큰댁에 잠시
맡겨 놓는다는 것이 중학교2학년 중간까지 2년 가까이를 큰댁에
눌러 살며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우리집안의 장손인 사촌형님은 그때 기준으로 삼십을 바라보는
농촌 노총각이었고 시집온 형수님은 그때 나이 열아홉살,
그러니까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농촌의
힘든 맏며느리 노릇을 시작 하였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도 나이지만
신부화장을 한 사촌형수님은 훤칠히 큰키에 하얀 얼굴피부에
계란형의 얼굴모습에 요즘 미스코리아 미인을 연상시키는 상당한
수준의 미인이셨다. 그때 결혼식장에서 형수님으로서는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화장하고 흰 드레스 입은 모습은 내겐
천사의 모습 그대로 였으며 딸 귀한 우리 집안에 인물 하나만은
남다른 며느리 맞이하였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던 걸로 기억한다.
엄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옛날 시어머님이신 큰어머님 슬하에서
뼈를 깎는 듯한 농촌 막노동 시집살이를 날이면 날마다 온몸을
내던지듯 충실한 하인처럼 나이 어린 사촌형수님은 그렇게 억척스레
감당하셨다.
흰 드레스에 천사 같은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가고 억척스런
농촌아낙의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무척이나 안스럽게 비치던 기억이 뚜렷하다. 땡볕 하늘아래
과수나무 소독이라도 하는 날이면 일손이 모자라 어린 나까지
일에 매달리곤 했으며 힘에 부쳐서 수도 없이 흙더미에 엎어지면서
일어서지도 못할 만큼 힘들었던 생각에 농촌일 이란 그저
고생스럽다는 기억밖에 남아있지않다.
엎어진 내게 쫒아와 일으켜 주고 흙먼지 털어 주던 형수님
얼굴은 더 이상 천사의 모습은 어디 가고 거무티티한 농촌아줌마
색깔에 땀으로 범벅된 얼굴에 눈망울만 초롱초롱 빛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예쁜 얼굴이 그렇게 되다니,,, 어린 마음에도 예식장에서의
형수님 모습을 괜히 떠올리며 꽤나 속상해 하곤 했었다.
형수님께 그 고된일을 막무가내로 시키는 큰어머님이 밉기까지 했다.
그 시절 나는 그 지방에서 제일 좋다는 중학교에 무난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제법 공부를 잘한 모양이다.
아직 어린 나이에 큰댁에 얹혀 지내지만 부모님 떨어져 있으니
더 공부 잘 해야겠다는 효심 지극한 맘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충실한 모범생 범주에 들었나 보다.
지독히도 더웠던 한여름으로 기억한다.
공부하고는 좀 담을 쌓고 지내는 사촌형제들 분위기 탓에 집에서
공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늦은 밤 집에서 꽤 떨어진 과수원
원두막에 혼자 올라가 이불 펴고 석유등잔불을 책 옆에 바짝 대놓고 공부하다 그대로 자곤 했었다. 그때는 벌써 농촌에도 집안까지
전기가 들어 왔던 시절이지만 원두막에서야 등잔불 밖에 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나도 등잔불 밑에서 공부해본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조금은 낭만적인 생각마저 들긴하지만,,,
아무튼 소중한 추억이다.
한여름 원두막이란 것이 튼튼해 봤자 혼자 밤을 지샌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에 성격 괄괄하신 큰어머님 눈치 봐가면서도 밤늦은
원두막은 나만의 공간으로 내 좋은 공부방이 되었다.
그런 나를 큰어머님께서는 꽤나 야단치시곤 하셨다. 엄마 떨어져
지내는 조카가 행여나 사고라도 당할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그렇게 말리셨을 거다. 고집스레 말 안 듣고 원두막으로 올라가는
나에게 큰어머님 호통치시며 하는 말씀
"그렇게 말 안듣고 속 썩일테면 당장 엄마한테 가거라!"
고함 지르심을 뒤로하고 그 날도 원두막엘 올라갔다.
그때 호통 치시는 큰어머님이 왜 그리도 야속하던지,,,
"내일모레가 시험이고 숙제도 많은데 이걸 다 어떡하라고,,,
어떡하란 말야요!! 엉엉,,잉잉!!"
속으로 혼자 울면서 그날따라 멀리 계신 엄마와 동생들 생각에
눈물 글썽이며 올라갔다.
밤이 늦어도 그때마다 어김없이 형수님이 잠깐잠깐씩 들러서는
아무말 없이 찐고구마며 옥수수며 먹을 것 넣어주며 공부하는 나를
옆에서 유심히 지켜 보기도하고 내 책을 한참이나 들춰 보다가
몇마디 말을 걸곤 하셨다. 검게 그을린 얼굴은 등잔불 아래
감춰지고 갸르스름한 얼굴에 매끈히 빛나는 얼굴피부에 동그랗게
빛나는 눈망울,,, 등잔불에 비추이는 형수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수 없었다.
원두막은 비바람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도록 천정뿐 아니라
사방으로 작대기를 받쳐 여닫을 수 있게 가마니로 만들어진
간이문도 달려있다.
꽤 늦은 시간까지 공부며 숙제하다가 잠들은 것 같다.
온몸이 축축해지며 한기를 느껴 깨보니 어스름한 새벽에
원두막속이 완전 난장판 되어 있었다. 밤새 몰아친 비바람에
이불하며 속옷까지 질퍽히 완전히 젖어있고 등잔불은 원두막
아래로 팽겨쳐져 박살나 있고 머리맡에 책들도 반쯤은 물에
담겨져 엉망이 되어있다. 어린 나에겐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이다.
문짝하나가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지금 생각하니 간밤에 내리
퍼부은 소낙비에 원두막 자체가 무너져 내리지 않았음이
천만다행이었다는 생각이다. 말 안듣고 올라와 기어이 큰일을
저질렀으니 큰어머님께 무지하게 혼날 일을 생각하니 하늘이
노랄 수 밖에,,,,
내일 학교 가지고 가야할 책은 저 꼴이 되었으니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이일을 수습해야 하나? 망연자실 겁에 질려 어찌 해볼
엄두를 못내고 있는데 형수님이 헐레벌떡 쫒아 오셨다.
겁에 질린 내 맘속을 훤히 잘 아신다는 듯 뒷일은 큰어머님
몰래 형수님이 완벽히 처리 해 주셨다.
물에 젖은 이불하며, 속속들이 버린 내 옷가지 하며,
깨진 등잔불 하며, 날아 가버린 문짝하며,, 아무튼 형수님의
완벽한 뒤처리 덕분에 호랑이 같은 큰어머님께 꾸중 한번 안듣고
무사히 넘어갔다.
그날따라 안 계신 사촌형님 덕분에 난 형수님 방에서 형수님이
챙겨주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직도 불안해 하는 나를
무릎베고 눕게하여 신혼 하얀 이불 덮어주고 이런 저런
얘길 해주셨다. 물에 젖은 책들을 화롯불에 쪼여 말리고 다리미로
정성들여 다려 주시면서,,,,,
열아홉 새색시의 무릎을 베고 누워 얘기 듣던 기억,,,
그처럼 포근하고 편안할 수 없었던 기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있다.
"도련님, 엄마 떨어져 있어도 공부 열심히 해야 혀유."
우리고향에서는 형수를 아줌마라고 호칭한다. 여기 경상도에서는
아줌마라는 호칭을 좀 천박스럽게 보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아줌마를 봐유. 아줌마는 3학년도 못다녔어."
"왜요? 아줌마는 엄마가 어디 계세요?"
"아줌마는 엄마, 아버지 다 어렸을 때 돌아가셨지유."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 형수님 말이 없으시다.
"아줌만 그럼 어디서 살다 오셨어요?"
"그냥 여기저기 친척집에,,,,"
"학교는 왜 안 다녔어요?
",,,,,,,,," 형수님 또 말이 없으시다.
"아줌마는 도련님이 세상에서 제일로 좋네유"
"왜요?"
"아니,,그냥,,, 아줌마도 남동생 있는디, 도련님이 걔 같애서,,"
"그 동생은 지금 어디서 뭐해요?"
대답없이 생긋이만 웃으신다.
"도련님이 제일로 부럽기도 해유."
"왜 부러워요?"
"그냥,,,,, 도련님은 엄마 아빠도 계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니까,,"
"아줌마도 공부가 하고 싶어 죽겠거든유. 그래서 제일 부럽지유."
"아줌마도? 그럼 지금 공부하면 되잖아. 내책 빌려 줄께. 공부해"
쓸쓸한 얼굴에 조용히 웃기만 하는 형수님 모습이 기억에 뚜렸하다.
어린마음에도 평소 궁금한 얘기를 꼬치꼬치 많이도 물어 보았다.
사촌형수님의 살아온 내력은 이러했다.
강원도 홍천군 첩첩 산골 화전민 몇 남매의 둘째딸로 태어나
어렵게 살던 중 화전밭을 일구시는 부모님께서 화전 때문에
사고로 갑자기 모두 돌아가시고 어린 형제 자매들 뿔뿔히 헤어져
친척집으로, 아는 사람집으로 전전하며 살다가 어린나이에
땅마지기라도 좀 있다는 우리 큰댁으로 시집와 맏며느리가
된 것이다.
배우지 못했고 가진 것 없고 부모 안계시지만 착하디 착한 성품에
인물하나 남달라 그나마 시집을 일찍 오게 된 내막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두번인가 남루한 옷차림의 나보다 나이 조금 많아
보이는 남자애가 찾아 왔는데 그때 형수님이 뒤뜰로 데려가
한참을 얘기하다 돌려 보내던 생각이 난다.
그때 내가 들은 이 이야기를 훗날 우리 부모님께 했더니
부모님조차도 몰랐던 부분이 있었을 만큼 어린 내게 소상히
얘기해 주신 형수님 이셨다.
아무튼 그일 이후로 나는 나를 좋아해 주는 형수님을 참 무던히도
따라 다녔다.
내 마음을 그리도 잘 알아 주시는 형수님,
큰아버님 나에게 먼길 심부름 시키면 나 대신 휭하니 갔다
오시던 형수님.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그리도 좋아해 주던 형수님.
가끔은 내게 공부를 물어보기도 하고, 내가 아는 것이라서
신나게 대답하면 고개 끄덕이며 그냥 조용히 생긋이 웃으시던
형수님.
맛있는 거 있으면 남겨 두었다가 원두막에 몰래 넣어 주던 형수님.
소풍가던 날 언제 준비했는지 김밥 싸서 꼭꼭 넣어주던 형수님.
(그땐 촌에서 김밥이란 참말로 귀한 음식이었다.)
과수원 일을 나가도 형수님과 함께,, 배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여자의 몸으로 잘도 운전하시는데 운전하실 때는 꼭 내가
뒤에서 밀어 드린다. 그 일이 왜 그리도 제일 좋았던지,,,
형수님 운전하는 리어카를 밀어주는 일이 가장 쉬운
농사일이었기에 요령도 피울 겸,,,
개울에 빨래하러 가면 따라가는 일은 다반사 였고,,,
읍내에 볼일 보러 가는 형수님 따라가겠다고 큰어머님께 조르던 일.
내가 그 해 시내에서 제일 좋다는 중학교시험에 붙던 날 멀리
계시는 부모님 대신 부모님만큼이나 형수님이 제일 기뻐해 주시고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해 주셨다. 한글은 깨우치고 계셨던
형수님이 내 중학교 새책 표지를 달력종이로 싸 주면서
중학1학년 영어책을 그리도 관심 있게 보던 기억이 난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잠시동안 이나마 내 영어책 보면서 나하고
같이 I'm a boy. You are a girl. 하면서 깔깔 웃으며 같이 공부한 기억도 있다.
그래도 사촌 시동생한테 계면쩍은지 그 일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니 힘든 농촌 시집살이에 형수님 공부 하고픈 마음이야 마음
뿐 이었으리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큰아버님 내외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고
우리 큰 집안 맏며느리로서 고향을 지키며 집안의 기둥뿌리
역할에 한치의 모자름 없는 든든한 사촌형수님이시다.
이젠 오십을 넘긴 나이가 되셨다.
서로 천리밖에 떨어져 살고 있어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가끔 뵈면
항상 내 어렸을 때 그 일들을 화제거리로 얘기하곤 한다.
얼마 전 그 형수님 큰아들이 장가를 갔다. 내가 중학2학년 때
부모님 곁으로 돌아오며 형수님과 헤어지던 해에 낳았던 조카다.
내가 형수님을 따르고 좋아했던 만큼이나 그 조카 어릴 적
볼 때마다 참 많이도 귀여워 해줬다.
젠장,, 그런데 복잡한 회사일 때문에 꼭 가봐야 하는 그 조카
결혼식 참석을 못했다. 전화 몇 통하고 그 대신 부조금이나
듬뿍 챙겨 보내고 말았다.
웬 부조금을 그렇게나 많이,,, 하는 집사람과 말다툼 많이 했다.
설명해도 내 마음 알 턱없는 집사람이니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형수님께 내 마음 조금이라도 표시할 방법이 그 수 밖에는
없었기에..
태어나서 내 어머님 말고 내가 처음으로 가장 좋아했던 여인,,,
나의 첫사랑 형수님이었기에,,,,
200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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