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호칠이

호칠이

지리산 한신계곡



	산행일자 : 2001. 5. 19. (토) 산행코스 : 백무-한신계곡-세석-장터목 -천왕봉-하동바위-백무. 아침7시 백무동 출발. 한신계곡을 들어가는 초입부터 햇빛을 가리우는 울창한 숲속 턴넬이다. 요 며칠 초여름을 재촉하는 더운 날씨지만 선선한 아침기온에 상쾌한 숲속공기가 멀리서 3시간을 달려온 나그네를 어서 오라는 듯 반겨 맞아준다. 지리산에 산재한 계곡뿐 아니라 전국 어느 유명계곡들에 뒤지지 않는 명성을 지닌 한신계곡의 위용이 초입부터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계곡 건너편 웅장하게 펼쳐진 지리산 몸뚱아리를 휘감아 도배 해놓은 맑은 초록빛 수풀이 오염되지 않은 짙은 파란색 하늘과 선명한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그 조화로움이 금방 신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선물해 준다. 매표소에 입산등록을 해보니 우리 앞서 올라간 3명이 등록 되어있다. 엊그제 입산금지가 해제되고 처음 맞는 주말 첫 손님을 맞는 지리산이다. 그동안 꼭꼭 감춰두고 목욕재계한 지리산 깊은 계곡의 모습에 한층 더 깨끗함이 배어 있는 것 같다. 녹음 속 상쾌한 공기와 산새들 지저귐 소리를 들으며 20분쯤 숲 속 턴넬을 산보하듯 걸어 오르니 첫나들이폭포다. 한신계곡이 간직하고 있는 몸뚱아리 중 수줍은 듯 처음으로 내보여주는 나신(裸身)이라 첫나들이폭포라고 이름을 붙였는가 보다 하고 상상으로만 남기고 지나쳤다. 다시 30분쯤 걸어 오르니 가내소폭포가 발길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한신지계곡으로 올라 장터목으로 바로가는 왼쪽길과 세석으로 올라가는 오른쪽 한신주계곡의 갈림길이 여기 있다. 한신주계곡 쪽으로 조금더 걸어오르니 규모는 작지만 5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져 유명하다는 오층폭포다. 오층폭포를 세아려 보려 계곡아래로 내려가 유심히 보지만 세아리기에 따라 3개에서 여섯 개까지 아무튼 아기자기 흘러내리는 천연의 청류(淸流),물,물,물들의 한판 잔치를 저희들끼리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곡이 조금 멀어진다 싶으면 산새들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점점 커져 산새들 울음소리가 멀어진다 싶으면 그림 같은 폭포와 소(沼)의 모습이 틀림없이 나타남을 반복한다. 각양각색의 폭포와 소(沼)가 많은 모습이 칠선계곡을 연상시키지만 굽이쳐 흐르는 청류(淸流) 사이에 우뚝우뚝 선 그린 듯한 검은 빛 바위들의 색깔이 칠선계곡과는 뭔가 또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연이어 나타나는 폭포와 소(沼)의 모습, 작은 폭포 작은 소(沼)라도 뭔가 사연이 있는 듯 조금씩은 다른 모습이기에 그냥 지나치기가 항상 아쉽다. 항상 다시 쳐다보게 한다. 요즘 저아래 사람 사는 곳에서는 봄가뭄에 목마름이 심각한 수준이지만 깊은 지리산 계곡은 폭포물 소리, 새파랗게 고여 있는 소(沼)의 모습이 가뭄을 모른다는 듯 완전히 딴 세상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계곡산행은 위기감이 적당히 배합되고 모험적 쾌감이 순간순간 새로워 지는데 묘미가 있다. 한신계곡도 그러한 욕구를 채워주는 데 전혀 손색없는 계곡이다. 어느 유명한 계곡에 못지 않은 자태를 지니고 있다. 거리상으로 꽤 높은 곳까지 올라온 곳에서 한신폭포를 만났지만 모습은 직접 눈으로 감상할 수는 없었다. 산길에서 골짜기 아래로 70미터 지점에 있다는데 폭포소리만 요란할 뿐 그 아래까지 내려가 볼만큼 그리 간단한 지형이 아니었다. 깊은 계곡에 비해 계곡의 넓이는 불과 4-5미터로 양쪽 울창한 수풀과 잡목들, 칼로 벤 듯한 바위 사이에서 비좁은 협곡을 이루고 있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계곡의 깊이가 유독 더 깊고 좁아 바위 사이 소(沼)들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 많아 깊게 고인 물의 색깔이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띠는 곳이 많다. 한신계곡이 장마철과 겨울철 위험한 계곡으로도 악명이 높은 이유를 잘 알 것 같다. 떨어지는 물소리로 만으로 한신폭포를 감상하며 한참을 걸어 오르니 세석까지의 마지막 급경사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두시간여를 산보하듯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하며 올라왔는데 세석까지 마지막 한시간여 가파른 비탈길에 남은 힘을 다 쏟아 부을 듯 올라갔다. 빤히 올려다 보이던 산마루와 파란하늘의 경계선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첫발을 올려 놓으니 드디어 발 아래에 낯익은 세석평전과 산장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항상 보아도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한 모습,,, 오늘도 세석은 그런 모습으로 똑같이 거기에 있었다. 세석부터 촛대봉, 연하봉을 지나 장터목까지의 걸음걸음은 내리쬐는 초여름 햇살아래 허기 속에 땀과 끈기와 인내,,, 극기를 실험하는 산행길이 되었다. 연하봉 넓은 바위 위에 다리 쭉 펴고 앉아 펼쳐진 지리산세를 내려다보니 파란 하늘아래 진초록으로 단장한 광활한 지리산은 벌써 확실히 여름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햇빛은 따가웠지만 아득히 산 아래부터 불어오는 산바람이 가는봄을 아쉬워 하는 듯 선선한 청량감이 이마에 땀방울을 금방 날려 버린다. 정오가 다되어 장터목에 도착, 싸온 도시락과 라면 두 개 끓여 오랜만에 그 무엇과도 비교 못할 진수성찬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동행한 정사장님 체력에 좀 무리가 따르는 듯 몇 번 가본 천왕봉은 가지 않고 산장에서 낮잠이나 한잠 즐기시겠단다. 배낭을 정사장님께 맡기고 가뿐히 빈몸으로 혼자서 천왕봉을 한시간 반만에 옆집 다녀오듯 휙 다녀왔다. 맑은 햇살아래 천왕봉 또한 듬직하게 여전한 모습이었다. 초여름의 천왕봉에서 바라다보는 전망은 천하 모두가 싱그런 녹색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가을과 겨울에만 주로 천왕봉에 서 왔던 것 같다. 천왕봉에서 보는 전망이 녹색임은 뇌리에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천왕봉에서 보는 가을색깔, 겨울색깔 거기에 오늘 천왕봉의 봄, 여름 색깔을 하나 더 머릿속에 갈음질하여 새겨둘 수 있을 것 같다. 장터목으로 되돌아와 이십여분 잠깐 등을 땅에 대고 눈을 감았다. 따뜻한 햇살아래 선선한 공기 속에서 이십분이 두시간은 쉰 것 같다. 한결 가뿐해진 몸을 느끼며 오후 3시 하산을 시작했다. 소지봉을 한참 지나 참샘, 하동바위까지의 내리막 두시간이 상당히 많은 인내를 요구했다. 10시간여의 산행길 막바지이니 지칠만도 한 시간이다. 그러나 백무동에서 들이킨 맥주 한캔의 시원함은 피곤을 잠시나마 저멀리 물리쳐 버리기 충분했다. 오랜만에 또 한번 해냈다는 자부심과 계획대로 정확히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에 기분 좋은 상쾌함이 저변에 꿈틀대고 있다. 창원까지 돌아오는 2시간 반의 자가운전 길을 졸음 한번 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맑디 맑은 지리산 정기의 덕분인가 보다. 피곤함 속에서도 몸이 꽤 많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오늘 밤 또 한번의 행복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꿀맛 같은 단잠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또한 기다려진다. 깊은 단잠 꿈속에서 한신계곡, 천왕봉의 모습을 한번 더 볼 수 있을 테니까. 끝. 2001. 5. 20. 2001. 5. 19.(토) 04:30 창원출발, 자가운전, 정사장님 동행. 07:00 백무동 매표소 08:10 한신폭포 (첫나들이폭포,가내소폭포,오층폭포 경유) 10:00 세석산장, 휴식후 10:30 세석출발 11:50 장터목, 점심식사후 13:00 장터목 출발 13;40 천왕봉 14:30 장터목, 휴식 15:00 하산시작 17:00 백무동 도착. 20:00 창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