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호칠이

호칠이

눈맞이 세석여행



	오전11시가 지나 거림마을 세석상회에 도착했다. 진주를 지나 오면서 운전하는 틈틈이 바라다 뵈는 낮익은 지리산 산등성이들에 눈이라곤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오늘 오후 늦게 부터인가 전국에 눈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보고 왔기 때문에 그래도 내일까지의 산행에 눈구경은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하며 지나왔다. 1월 지리산에 눈이 없다면 이 또한 크게 잘못된 징조이니 그럴 일이야 없을 것 이라는 믿음이었다. 일년전쯤 한번 묵었던 이곳 주인아주머니 예전 그모습 그대로 예쁘게 화장하신 얼굴로 맞아 주신다. 나야 그냥 한번 지나갔던 손님이니 기억하실 수야 없겠지만 일년 전 뵙던 그모습 그대로 옷차림새 마저 같아 보이는 기억에 반가운 마음 숨길 수 없었다. 어제밤 먼저 와서 여기서 묵었을 청주에서 오셨다는 짱구모자분이 보이질 않아 물으니 저위에 절구경 하러 나가셨단다. 아무도 없는 집에 배낭을 내리고 정리 좀 하다보니우리집 막내녀석만한 안경낀 꼬마 하나가 마당에 들어선다. 손에는 긴 대나무장대를 하나 들고 영락없는 개구쟁이 우리 막내폼 빼 닮았다.. "너 어디서 왔니?" "청주에서요" "네이름이 뭐니?" "짱구요" 이 녀석도 내가 일행인줄 직감으로 눈치챈 모양이다. 이름을 안대고 별명을 댄다. 안경넘어 반짝이는 눈빛에 영리함이 속속 배어있다. "너 두칠이 아저씨 잘 알지?" "네! 알아요! " 대답도 우렁차다. 혹시 내가 두칠인가 하고 빤히 쳐다보는 눈빛이 재미있다. "두칠이 말고 또 모르니?" "아뇨! 땡칠이도 있고 호칠이도 있고 많아요 많아." "아저씬 두칠이예요? 호칠이예요?" "나? 호칠이 아저씨야. 너도 이제부터 짱칠이 해라." 내 생애 인터넷통신으로 알게된 첫 번째 사람과의 직접 만남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짱구는 산에 올라가면서 내내 내 몫으로 보호자 겸 친구 겸 동반자가 되었다.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고 나에겐 모두 처음 뵙는 분들이지만 글로서만 안면이 있기에 서로 처음인 듯 아닌 듯 반갑게 인사 나누었다. 밝은 얼굴과 상냥함이 넘쳐흐를 듯한 부산에서 오신 호호님, 그냥 나리양 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착하디 착한 순박한 모습의 빛나리님, 여자분으로는 호방한 성격이신 말씀도 잘하시고 유머까지 겸비하신 대구 실크님, 안경너머 예리한 눈빛이 인상깊으신 실크님 친구분, 그리고 짱구 모자분, 대구 실크님 왈 정말 친삼남매인 줄 알았다기에 폭소를 터뜨리게 만든 창원 세사람, 합해서 아홉명이 일렬로 거림골을 출발했다. 두칠님 앞에 먼저 가시고 그래도 어른들이야 괜찮을테고 어린아이만 책임지면 되겠다는 생각에 맨뒤에 짱구와 함께 걸었다. 평소보단 두배는 됨직히 멘 배낭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속도를 내지 않으니 괜찮았고 지난주말 다친 양쪽 발뒷꿈치가 오히려 더 신경쓰였지만 생각보단 양호했다. 비탈진 산길에도 끊임없이 떠들고 신기한 듯 계속 장난질 치며 앞에가는 짱구란 녀석 힘들어서 숨을 헐떡 거리면서도 뭐 그리 궁금한게 많은지 끊임없이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짱구가 얼마 안가서 힘이 빠졌는지 돌멩이에 발이 채여 넘어지길 자주한다. 얼굴엔 땀이 흙과 법벅이 되어가고,,, 그러면서도 기특하게도 떼쓰는 일 한번 없이 떠들기는 쉬지 않고 계속한다. 호기심이 그렇게도 많을 수 없다. 잠바를 벗겨 내 배낭에 걸고 짱구가 메고있는 작은 배낭을 받아드니 살았다! 는 표정에 그냥 내빼 버린다. 짱구보다 한 살 아래 우리집 막내 녀석이면 벌써 길바닥에 주저 앚아 떼쓰고 애먹였을텐데 짱구란 녀석 그런 표정 하나 없이 걱정 했던 것 보단 꽤 잘간다. 반쯤 올라간 지점에 빛나리님 표정이 힘들어 감당 못하는 모습 역력한데 옆에서 두칠님 계속 끊임없이 이것저것 말을 걸고, 묻곤 하시는데,,, 옆에서 보기 안타깝다. 힘들어 정신없는 사람한테 자꾸 말 걸면 그거 새겨 들으랴, 맞장구 치랴 훨씬 더 힘들어 지는데,,, 가만히 두고 체력껏 쉬엄쉬업 자주 쉬어갈 수 밖에 없을텐데,,, 예상했던 4시간도 채 안되어 5시쯤 세석산장에 도착했다. 생각보단 빨리 올라왔다. 세석에도 눈이 별로 없다. 눈맞이 산행이 조금은 퇴색해 버릴 것같아 아쉬움속에 제인님 집 부엌의 음식을 몽땅 싸오신 듯 많이도 준비해오신 음식에 왁자지껄하게 저녁식사를 마쳤다. 등에 지고 올라오느라 애먹었지만 많으니 좋긴 좋다. 밤9시 산장소등시간에 맞추어 모포 세장에 몸을 감싸고 잠을 청하였다. 지리산까지 왔는데 제인님 소원 들어줄 겸 천왕봉까지 가기로 작심하고 내일 아침 일찍 따로 출발할 생각에 시간계산 다시한번 해 보면서,,, 새벽4시에 잠깨어 밖을 내다보니 어젯밤과는 완전히 딴나라에 와 있는 듯 눈보라가 산장현관 안쪽까지 휘몰아쳐 한발짝도 산장밖을 내디딜수 없는 지경이다. 삼십미터 떨어진 화장실 한번 갔다 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나로서는 처음 맞는 산중 기상변동이다. 눈보라가 매서운 강풍을 동반해 흩날리니 눈을뜨지 못할 정도의 날씨가 오전내내 계속된다. 꼼짝없이 산장내에 갇혀 있으며 산장관리인이 주소,성명 일일이 확인해 가니 졸지에 폭설에 조난당한 모습이다. 10시가 넘어 아침겸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어젯밤 먹다남은 찬밥으로 일행분들 식사를 해결하고 눈보라가 멎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수 밖에,,, 강풍 눈보라속에 촛대봉까지 용감하게 갔다온 등산객 두명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길에 시간과 체력이 두배는 소요 된다면서,,, 12시쯤 거림에서 한무리의 등산객이 올라왔다. 물어보니 꽤 고생하며 올라왔지만 내려갈수 있다는 말에 하산 가능성을 확인하고 오후1시쯤 하산을 시작했다. 세석 넓은 평원을 내려서니 바람도 멈추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도 이제는 훨씬 수월해졌다. 주변은 온통 순백색 설원의 풍경이 이번산행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일행분들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눈밭에 뒹굴면서 비탈길 썰매 타며, 얼싸 안고 사진찍느라 좋아하시는 모습이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느냐는 듯 그렇게 즐겁고 정다운 표정이 아닐 수가 없다. 내려 가면서 주변 수목들 한참을 설명하시는 두칠님은 선생님 되시고 모든분들 유치원 아동마냥 귀담아 들으시며 깔깔대며 환호하는 모습들은 잠시나마 설국의 정취 지리산속의 작은 천국이라고나 할까,,, 이 순간만큼은 각자가 세상속 번뇌 말끔히 잊고 몰두할 수 있으니,,, 이 잠깐의 맛이 좋아 산을 찾고, 더우기 순백의 눈덮힌 산을 동경하게 되는가 보다. 한바탕 우박에 가까운 싸라기눈이 퍼붓는다. 눈밭에 구르듯 쌓인 작은 우박을 한줌 손에 쥐니 우르르 구슬되어 흘러내린다. 눈구경, 우박구경,, 창원에서 보기드문 두가지를 한꺼번에 만났다. 아니 모든분들 엄청난 행운을 만난 듯 환호성지르며 한줌 손에 쥔 우박을 볼에 비비기도 하고 입에 넣어 먹어보기도 하며 즐겁기 그지없는 표정들 이시다. 맨뒤에 짱구 모자분을 뒤따라 내려 왔는데 제일 신난건 역시 장난꾸러기 짱구다. 비탈만 만나면 엉덩이로 미끄럼타기 온몸으로 엎드려 썰매타기에 열중하며 신났다. 짱구덕분에 뒤에 오는사람 길 잘 만들어져 좋겠다. 내려 갈수록 날씨가 거짓말처럼 온화하게 풀려 있다. 몰아치던 강풍 폭설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영상의 날씨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들이 녹아 은방울되어 떨어진다.오전만 같았어도 일행 하산할 일이 거의 불가능 했다. 심술 부리던 날씨가 이제는 우리 일행 하산하는데 최고의 일등공신으로 변해 있었다. 푹신히 쌓인 눈밭은 발걸음 하나하나에 오히려 좋은 쿠션으로 작용하여 몸에 충격을 주지 않아 피곤을 반의 반감 시킨다. 하산길 정말 걱정 했었는데 모든분들 활짝웃는 얼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내려왔다. 지리산 눈경치란 높은 정상에서 은백색으로 뒤덮힌 천지를 발아래 내려다 보는 장쾌한 맛이 제격인데 하는 아쉬움은 남아 있지만 모든분들 이 폭설에 무사히 내려왔음에 더 바랄나위 없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차도 눈에 파묻혀 눈치우고 차 빼내는데 한시간을 잡아 먹었다. 안전지대까지 차를 옮기는데 골목 비탈길에서 차도 그대로 미끄럼 타버려 아주 애먹었다. 눈 왔다고 사람뿐 아니라 차도 신이나서 썰매를 탄다. 젠장,,, 세석상회에서 차려준 토종닭 백숙으로 식사를 하고 주인아주머니가 권해주는 오가피주 한잔에 슬슬 한두사람 흥이 오르더니 젓가락 장단에 뽕짝이 메들리로 이어져 버린다. 주인아주머니 노래솜씨가 일년전보다도 훨씬 더 세련돼 보인다. 두칠님 특유의 흥에 오늘따라 젓가락 장단만큼이나 신나 하시는 제인님이 여장부다운 기질을 발휘 하시며 분위기 메이커 아주 잘 하신다. 대구 실크님께서 저녁식사를 사셨다. 고마운 마음이다. 어제 처음 뵙자마자 서글서글 하시면서 먼저 손 내미시며 악수 청하시는 모습이 제인님 못지 않은 여장부 기질이 다분 하시다. 상냥한 부산 호호님 언제 준비했는지 섭섭하다고 조그만 선물봉지 하나씩 돌린다. 날은 어두워졌고 이제 모두 돌아갈 일만 남았다. 작별인사들 하는데 오래 걸릴만큼 헤어짐을 모두 아쉬워 하는 표정이다. 돌아오는길 산아래에도 많은 눈이 내려 있지만 온화한 기온에 눈이 얼지 않고 그대로 녹아내려 운전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예외없이 막혀 터지는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창원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가 넘었다. 청주에서, 광주에서 더멀리서 온 분들 모두 무사히 귀가 하시리라 바라면서,, 광주 나리님은 밤새도록 갈텐데,,, 고생이 심하겠다. 좀 약해 보이던데,,, 아무튼 무사 귀가를 바랄뿐,,, 인터넷에 창원팀은 잘 도착 했노라 한마디 올리고 어제 오늘의 여정을 되새기며 잠자리에 들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이다. 산행초보 여러분을 모시고, 거기에 예기치 않은 기상변동,,, 나에게도 이번 산행이 소중한 경험이 되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정도 눈맞이 지리산의 기대를 충족시켜준 산행이 되었지만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아 이 겨울이 가기전에 한번 더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설날 연휴가 길게 잡혀 있는데,,, 고향 안가게 되면 연휴 첫날쯤 눈덮힌 천왕봉에 한번 더 서볼 작정이다. 2001.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