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초롬이

초롬이

27년만의 해후(7편)



	선기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살고있는 큰형네서 다닐 수 있었으므로 보따리 장사로 집을 비워야 했던 선기 어머니께서 내린 결정으로 그리한 것이다. 선기가 군대에 갔다와서 대학을 복학했을 무렵 큰형수가 집을 나가버리고 큰형이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알코올중독으로 자살을 했단다. 그 덕에 작은형이 몰라라 하는 바람에 어린 두조카는 선기의 차지가되고 어머니는 그 뒤에도 역마살을 벗지 못하고 전국을 떠돌며 보따리 보약장사를 계속하였고, 어찌 할 수 없어 졸업하기도 전에 캠퍼스에서 만난 고향 후배와 동거에 들어갔고, 첫아이를 낳고서야 처가의 승낙을 받아 결혼식을 올렸고 어린 조카들은 잘 성장해서 모두 출가를 했고, 자신을 아버지처럼 여기며 살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 안부를 묻는 내 물음에 한참동안 대답을 않던 선기는 몇 년째 소식이 없다며 긴 한숨을 휴-우 하고 내뱉었다. 한 사,오년 전에 경남 해인사 부근에 있는 어느 암자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가 보았었는데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선기 어머니께서는 아마도 신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 신내림을 받지 않아 귀신의 저주를 받았다고도 하고 정신이 들락날락 한다고도 하고 고등학교 다닐 무렵 방학중에 집에 다니러 내려왔을 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하시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다. 토목기사인 그는 건설회사에 취업을 해 지금은 몇 군데 공사현장 감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팔순이 다 되셨을 선기어머니 지금도 머리에 쪽을 지고 계실지 "너 중학교 2학년때 니네 어머니께서 학교에 오셨던 거 기억나니?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던 네 어머니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 그 전에는 그 보따리 장사하시는 아주머니가 네 어머니란 걸 몰랐었지만 근데 그때 왜 우셨던 거니?" "으-응.. 그때 말하기 싫은데... 사실은 그때 큰형 작은형 모두 취직해서 서울로 가버리고 가족이 함께 살던 집마저 큰형이 사업한다고 팔아가고 어머니와 단둘이 월세방 얻어서 살았었는데 난 언제나 혼자였지.... 어머니는 허구헌날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고 어린 나이에 나 혼자 방에 틀어박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을 자고, 날 이새면 가방 들고 학교에 가고, 그런 날이 반복되는 게 싫었어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 어머니 형들과 함께 살고싶었어 그때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그런 면에서 넌 행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낸 거야 난 그게 제일로 부러웠단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었던 너.... 그러다가 한 사흘을 서울 형네 집으로 아님 친구네 집으로 전전하다가 마침 집에 오셨던 어머니께서 가정방문 나오셨던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친구가 알려주는 바람에 들통이 나서 학교에 잡혀 갔던 거야 근데 하필이면 그때 교무실엘 들어왔니? 그날 네가 교무실에 들어 왔을 때 나 창피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선기 휴대폰이 따르릉 거렸다 "여보세요 아 당신이야 응 응 뭐! 뭐라고! 응 알았어 바로 갈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 그냥 갈게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말 좀 해줘 그냥 간다" "왜 그러는데 도대체" 나가려다가 잠시 멈춘 그의 눈은 토끼 눈처럼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어머니를 찾았대 경남 어디 시립병원에 계시다고 연락이 왔다고 집사람이 전화를 했어 나 가볼게 미안해" "그래 알았어 얼른 가봐 서두르지 말고 " 두어 시간은 족히 지났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나 친구들은 그때까지도 마이크를 입에서 뗄 줄을 모르고 노래를 흥겹게 부르고있었다. 춤 선생을 한다는 영철이는 화영이를 꿰어차고 결국 노래방 바로 윗층에 있는 무도장으로 가버렸다 알고 보니 화영이 역시 수원에서 치마 바람을 날리며 다니는 모양이었다. 종순이가 노래 좀 해보라고 잡아끌어서 평소에 잘 부르던 김수희에 멍에를 멋들어지게 한곡 뽑았더니 역시 은영이가 노래를 해야 듣기가 좋다며 또 한곡 또 한곡 해서 세곡을 내리 불렀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춤추고 하는 사이 우리는 열 여섯 살의 철부지 풋풋한 중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