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집-초롬이

초롬이

27년만의 해후(6편)



	나의 중학교시절은 그렇게 힘들고 암울했고 선기가 군대에 가기전 한번 만나고 오늘 27년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물론 선기도 결혼을 했겠지만 아이들은 몇인지 어디서 살고 있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33년만에 하는 동창회 참으로 감회가 깊다 이 자리에 선기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술잔이 오고가고 반가움과 그리움에 서로를 확인하며 끌어안기도 하고 볼을 비벼 보기도하고 간혹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고향에 살고있는 덕분에 친구들이 수시로 연락을 해와서 주소가 파악된 친구들이 여자만 150명중 49명 모두에게 서신을 띄웠다. 서신을 받고 참석한 친구들이 여자 25명, 남자 19명 총 44명이 참석해준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친구들과 담소하면서 선기의 끝없는 시선이 따갑게 날아오고 있음을 느꼈으나 눈인사만 했을 뿐 다른 대화는 할 수가 없었다. 선기가 제대후 날 찾아 왔지만 만나지 않았고 난 그때 이미 결혼을 하고 난 뒤였다. 그와 난 서릿발이 희끗희끗한 머리칼만 닮아있었다. 이제는 그도 나도 불혹의 세월을 살고 있지 않은가 어느덧 중년으로 자신의 나이를 책임질 위치에 있고 자녀들을 출가시킬 연령이 된 것이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세 번의 여자 동창들의 모임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지현이가 "참! 내가 중대한 발표가 있어 다름이 아니라 내 아들이 장가를 간단다 모두들 와서 축하해 주라" 모두가 박장 대소를 했다 남자친구들은 "아니 네가 벌써 아들을 장가 보내니?" 하며 놀라고 여자 친구들은 "저 여우같은 기집애가 동창회는 한번도 오지 않더니 아들 장가보낸다고 청첩장 돌리러 왔냐?" 며 놀려댔다 하지만 난 그 여우같은 지현이가 귀여운 생각이 들어 웃었다. 춤선생이 된 영철이, 상업을 하는 친구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직업은 고루 분포되어 있었으나 특이 할만큼 출세를 한 친구는 없었다. 출세를 했다고 해야 고작 시청에 과장정도가 전부였다. 특이할 만한 일은 회장이었던 주호와 부회장이었던 기순이가 학교에 다닐때도 꽤나 소문이 무성했고 친구들의 선망에 대상이었는데 주호의 일편단심으로 결혼해서 잉꼬부부로 잘살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당연한 일이라고 축하해주고 위로해주었다. 주호는 약간 대머리가 되었고 신장은 중학교때 그대로 인듯 남자로서는 작은 키로보였고 대전지검의 과장으로 근무중이었고 기순이는 전업주부로서 현모양처가 되어있었다.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병세네 포도밭으로 옮겨 포도를 먹으며 어린시절 포도 서리하러 다니던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시내로 들어와 너른 노래방을 찾아 흥겨운 시간도 가졌다. 내가 노래 부를 때 선기가 슬며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려 하였지만 피해 버렸다. 나와 선기의 관계를 아는 친구들도 있으므로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시끄러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선기가 알고 뒤따라 나와 조용한 빈방으로 들어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눈은 우수에 차 있었다 힘든 생활에 찌들은 표정도 보이고 손도 무척 억세게 보였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이 없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선기가 내손을 잡았다. 머리위로 다가오는 그의 손길 그리고 내 입술을 덮어 오는 그의 두툼한 입술... 지금 이 나이에 이게 무엇이람... 어른 그를 밀치고 조금 떨어져 앉았다. "그러지 말자 우리... " "넌 예나 지금이나... 이리와 봐 좀 그러지말고" "아저씨 정신차려 그러면 나 나간다" "그래 알았어 알았어 그냥 있자" 선기는 그 동안 자신이 짊어져야 했던 업보에 대하여 내게 이야기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