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만의 해후(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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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졌던 일요일 점심때가 지난 늦가을 어느 오후
넷째 동생을 업고 마당에서 서성이며 책을 보고 있었다.
허름한 한복에 고무신을 신으시고 분홍색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낫선 아주머니 한 분이 어머니를 찾아오셨다.
"아이구 아줌니 어서 오셔 그래 이게 얼마 만 이래요"
우물가에서 김칫거리를 다듬고 있던 어머니께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머리에 이고 있는 보따리를 받아 마루에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들렸네 그려 내가 그 동안 먼데 좀 돌아다니느냐고 끔했지?
애들 아브지는 건강하지? 아이구 다리야 이놈에 다리는 왜이리 무거운지 원"
하며 너줄 너줄 지난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하던 일처럼 부엌으로 들어가 밥상을 차려내어 오셨다.
작은 소반에 깻입, 배추것절이, 무장아찌, 그리고 고추장이 놓여있었고 밥그릇과 숭늉 한 사발이 전부였지만 점심때가 한참 지난 터인지 그 의문에 아주머니께서는 연실
"아이구 김치도 맛있고 깻잎도 맛있네"하며 꾸역꾸역 밥을 떠 넣으셨다.
동생을 엎고 있는 나에게
"너 몇 학년이냐? 아직 국민학교 다니지?"
"아니오 중학교 다녀요 이 학년인데요"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많이 컷다 우리 아들도 중학생인데 아 인석이 공부는 않하고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이 싹이 노래 가지고 까질러 돌아다니기 만해서 큰일이여..."
그 말에 어머니는 피식 웃으시며
"아직 어린애인데요 뭘 그래 뭐 좋은거 가지고 오셨어요? 그러치 않아도 애들 아브지 보약이라도 해 주려고 하던 참인데 잘 오셨네요"
희끗희끗한 긴 머리, 뒤로 은비녀를 꼿았고 늦가을이어서 날씨는 선선한데도 여름한복을 입고 얇은 조끼를 걸치고있었다.
거므스름한 피부, 작은 키에 몸집은 다부져 보였다.
사슴뿔이나, 웅담, 인삼등 보약재를 보따리에 가지고 전국을 유람 삼아 돌아다니며 팔러 다니는 분이셨는데 많은 업을 등에 지고 사는 무당 같은 모습이다.
우리집에 오기만 하면 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 계집아이가 사내 녀석처럼 생겼어 가르치면 한자리하겠네 그려"
"여자아이를 많이 가르치면 뭐하나요 지 오빠들이나 가르쳐야지..."
어머니말씀에 불안한 마음이 저녁상을 차릴때까지도 지속되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저녁까지 먹고서야 한재꺼리의 한약을 덜어놓고 약달이는 법을 어머니께 전수 한 다음
"잘있거라 또 언제나 보려나" 하며 주섬주섬 짐을 챙겨 훌훌 떠나갔다.
떠나는 그 아주머니 모습에서 왠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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