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루스트의 편지
누님, 기억하시겠지요. 우리의 귀여웠던 과거를 기억하시
겠지요. 자살 연습으로 그친 내 피스톨의 상처가 회복될
수 있다면, 우리 고향의 성 미카엘 여자고등학교 근처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요새는 그르넬르 4가, 가장 윤택한 거리에 새로 편물상점
을 하나 차리셨다지요. 얼마나 섬세한 마음의 실을
엮어보겠다고 기나 긴 한을 풀으시나요.
하루에도 몇 번식 옛 사진첩을 넘기며 젖어있나요.
그때 흰 가방을 팔뚝에 걸고 샌달을 신기 좋아했던
누님은 성 미카엘 여자고등학교 삼 학년이었습니다.
내가 중학교 축구 선수의 유니폼을 빛내며 벽돌담 모퉁이를
돌아오는 저녁이면,
크림빛 옥상에서 노란 애프론을 흔들거나, 종이 비행기를
날리기도 하였습니다.
때때로 골목의 코너에 숨어있다 나비처럼 몰래 몰래
따라와서는 내 눈을 가리었고,
콤파스와 삼각자의 필통소리를 갑자기 내기도 하였지요.
그 즈음 우리는 베드로 성당의 일곱 번째 고목 나무에
집게벌레의 집을 파 놓았고, 키보다 더 자란 호밀들이
소금을 뿌린 듯 반짝이는 그 비행장 공터에
오색 유리구슬을 묻었습니다.
정말 완전히 증명된 피타고라스의 왕국 안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즐거웠고 평안할 수가 있었습니다.
색종이만큼이나 예쁜 지혜를 분도기로 재어가며
나는 정직하게 작문을 짓기도 하였지요.
그때의 제목에 '바다와 잠자리'라는 것이 있었던 가요.
누님의 순결한 스커어트 깊숙이 아네모네 같은 비밀을
키워가며, 설거지도 도와주던 고운 손으로
음악 교실에서 피아노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가끔 씩 그 소강당 옆 담쟁이 돌담에 기대어
들어보곤 했는데, 건반의 아주 환상적인 음계만을
건드리는 손이 얼마나 떨리는가 하고 안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조금 나이 들어 알아보니, 그 곡은 드빗시의 '판화'
였습니다.
누님, 기억하시겠지요. 우리의 귀여웠던 과거를 기억하
시겠지요.
자살 연습으로 그친 내 피스톨의 상처가 회복될 수
있다면, 우리 고향의 성 미카엘 여자고등학교 근처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이가림 님의 시 "프루스트의 편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