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그 집 늙은 개
장철문
개가 짖는다
각목으로 우그러진 드럼통을 치는 것 같다
저 개의 머릿속은 비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불량배가 목이 꺾인 중학생을 위협하려고
빈 드럼통을 때리는 소리가 날 수는 없다
저 개는 자기가 늙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주인은 가끔 구멍가게 앞 간이의자에서
세입자를 앉혀놓고 김치 안주에 맥주를 마시면서
저 개가 도사견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 개는 한창때부터 절름발이였다
주인이 고깃근을 끊어다가 개에게 먹인 것은
세상에 한 번도 풀어놓지 못한 적선을
저 개의 목청으로 대리충족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주인도 늙어서
번번이 슬리퍼를 끄는 세입자들만 불러 앉힌다
저 개는 요즘 열애중이다
범퍼가 깨진 세단을 모은 옆집 중년여자가 집을 비우면
검버섯 핀 몸뚱이가 개구멍을 빠져나오고
저 개는 그 목덜미를 연방 핥는다
암캐는 한때 미용사에게 발톱을 깎았고,
거세의 순결을 지켰다
암캐가 저 개의 목청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연방 목덜미를 내어미는 것은
한 생의 거세를 쓰다듬어 줄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 개도 암캐를 믿는 것은 아니면서
다른 목덜미를 찾아나설 기력을 잃었다
오늘도 저 개는 담장을 따라 개구멍 주위를 서성이며
이웃집 여자가 집을 비우길 기다리다가
초인종을 누르는 대머리 공인중개사를 보고 짖는다
주인은 저 개가 짐이라는 것을 알면서
개줄을 푼 채 내버려둔다
저것 말고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줄 다른 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 |
| |
윗글 :
3117  아욱국 - 김선우
| |
| |
밑글 :
3112 올까, 오고 있을까 - 정영선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