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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룡산 모은사에 가서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내 주변은 하루 종일 조용하다.
푸른 오월이고 새싹이 자란다는 오월이고
아카시아 향기가 봄바람에 묻히는 오월이고
아이들 손잡고 나들이 가기 좋은 오월이다.
난 하루 종일 사무실 책상머리에 앉아
핑게없어 일 한다고 앉아서 깡통만 뒤적이다 하루를 보내고
긴 봄날의 하루는 아직도 햇살을 서산에서 한 뺌이나 남겨두었다.
결국은 좀이 쑤시고 가는 하루가 안타까워
노을이 울음으로 타는 석양에 절을 찾아 나섰다.
평소에 다니는 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처님 뵈러 절에 간 적도 없건만
석가탄신일이 오늘인지라
핑게보다도 내 마음이 그 동안 스님의 삶과 절의 분위기에
동화되고 공감된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해는 밭둑 길을 지나고 언덕길을 오르는 아카시아 가로수 길을 지날 무렵 떨어지고 말았다.
길가로 쳐진 피기 시작한 아카시아 한 송이를 꺾어서 입에 물고
작은 마을 공동묘지 터를 지나 고갯길 아래로 내려서면 삼천포 가는 국도가 나오고 길 건너 논 몇 마지기를 지나면 야산의 노송 아래에 언젠가 가 보았던 모은사가 나왔다.
반룡산 모은사는 스님의 취미와 분위기를 알 수가 있었다.
경내는 오래된 소사나무 분재가 수십 분이 진열되고, 본당 안에는 달마상이 그려진 도자기가 수십 개 놓여있었다. 작은 산에 작은 절이긴 하나 아기자기하게 조경을 하였고 절 아래로 별채를 지어 황토방을 놓았다.
그 방은 상업용으로 지은 황토방이랑 근본부터가 달랐다. 벽체도 황토 벽돌로 빗어 쌓았고 바닥도 황토바닥에 돗자리와 멍석자리를 포개어 아늑하게 깔았다. 그러니 들어서면 바로 황토 냄새가 온기에 묻혀 나오고 금방 황토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논 어귀를 다 지나 부처님 오신날 연등 길을 따라 절에 올라서니 소사나무 분재가 작은 잎사귀를 달고 어둠에서도 눈에 잡힌다.
구슬프고 은은한 염불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리니 살금살금 조심조심 남의 집으로 들어가듯이 나는 이방인처럼 엿보듯 본당 앞에 섰다.
경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염불소리를 비추어 내고 벗어 놓은 신발 사이로 들여다보니 남녀 신도들이 방석을 깔고 승복을 입고 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고, 하고, 또 하고 있었다.
나는 수많은 절들을 다녔고 보아왔다. 오랫동안 산에 다니니 절은 저절로 대하고 보이기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절에 가면 샘부터 들리고 다음은 경내에 조경과 나무와 꽃들과 산을 보고 왔다. 그리고 절 지붕이며 기둥과 문짝이나 살피고 돌아오는 게 고작이었다. 내가 아는 절과 불교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날 저녁에 내가 모은사가 가면서 나는 자꾸만 부처의 모습이 보고싶었다.
석가탄신일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과거에 산행을 갔다 내려오면서 저 지리산 대원사에서 사월 초파일날 우연히 연등이 마당 가득 걸린 날 절 구경을 하고 온 적도 있고, 한번은 구례 화엄사로 노고단으로 올라가다 화엄사에 들리니 마치 그날이 초파일이라고 온산과 길에 사람과 연등으로 물들인 이 날에 절에 들린 적이 있었다.
물론 두 번다 기념으로 사진까지 찍어 두었으니 틀림없는 오늘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절만 보고, 물만 얻어먹고, 숲과 나무와 꽃만 보고 왔지 법당 내에 들어서 보거나 부처를 바로 쳐다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스님 한 분이 목탁을 치며 염불을 외고 향내는 그윽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 정면에 금빛 부처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좌우 양면으로 천개의 작은 부처가 꼭 같은 모양으로 손오공 아들처럼 줄을 지어 있었다.
난 부처의 모습에 어떤 의미도 전혀 없는 사람이다. 자랑이 아니라 내가 아는 불교의 깊이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
큰부처는 금빛에 찬란한 휘광을 내비치고 얇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날 쳐다보는 듯 하였다. 나는 절 안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살짝 들어갔다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절 안은 스님과 절을 하는 신도로 한 줄 가득 있었다.
들어서지 못하고 옆문으로 보다가 정면 문 앞으로 다가가서 똑 바로 쳐다보았다. 환한 불빛에 아주 인자하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바로 저런 모습이 대자대비의 모습인가보다.
소설가 최인호씨가 그런다. 자기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스님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산중 생활이 부럽긴 하다.
그리고 그런 무소유와 빈마음이 좋다.
무엇보다도 자연과 사는 생활이 더욱 부럽다.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보다도 나는 자연이 되고 싶다.
나무가 되고 싶기도 하고 꽃이 되고 싶기도 하다. 달이 되고 싶기도 하고 바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토끼가 되고 다람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돌이 되거나 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돌은 너무 거칠고 굳세어서 그렇고, 물은 흘러서 바다로 가니 그러하다.
그러나 달은 내일이면 또 찾아올 수가 있고, 바람도 또 불어오니 그렇다.
물도 그러하지 않느냐고 한다면 물은 비와 다르다. 물은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물이 아니다.
그날 나는 결국 법당내에 들어서지 못하고 전처럼 이방인이 되어 뜰을 돌고, 나무를 살피고, 샘가에서 약수를 마시고, 혼자서 밤길을 되돌아 왔었다.
그러나 모은사 길은 전에 내가 갔었던 그런 마음의 방문은 아니다고 확실히 말할 수가 있다.
절은 어디에 있어도, 어떻게 지어졌어도 부처는 똑 같은 부처는 그기에 있다.
왜냐면 부처는 본시 내 마음이 부처면 부처라는 성불의 뜻이 부처의 근본이라고 짧은 생각을 감히 해보았다.
반룡산 모은사라고 경남 사천시 사남면 월성리 우리 시골 아파트 앞에 있다.
아마도 모은사는 이렇게 한자로 쓸 것 같다.
母恩寺.
2000. 05. 13. 이학근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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