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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강진 茶山草堂과 永郞生家에서(1)
하오 4시 반에 강진 다산초당 앞 유물 박물관에 도착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여 계셨던 이곳은 남도 일 번지의 白眉이며 그토록 와 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우리 문화유산답사기에 그려진 그 아름다운 정경이며 다산의 숨결을 세세히 적어두었기에 나는 그 책을 가보지 못한 죄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다산(1762-1836) 22세에 급제, 28세 대과 급제, 학문이 출중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18년 유배생활중 10년을 이곳 다산초당에서 거하셨다.
다산 사상의 요체는 개혁이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심서등 500여권의 저술로 우리 나라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다산초당은 외가인 해남 윤씨의 山亭(산정)으로 전해지며 이곳에 주위의 권유로 들어와서 후학을 가르치셨다.
초당으로 가는 길은 유물전시관의 우측 밭길을 타고 오르니 산길이 나왔다. 길은 산이 절개된 오래된 산길의 분위기로 온통 황토가 뒤덮인 소나무밭길이었다.
황톳길을 내려서면 길의 좌측이 왕창 내려앉은 듯한 밭에는 대나무가 엉성엉성 자라고 대밭을 돌아 산허리를 감아 오르면 좌우는 온통 송림이 우거진 솔밭이었다.
곧은 赤松이 하늘을 덮은 오솔길을 따라 가는 길에는 팔뚝의 힘줄처럼 돋아난 소나무 뿌리가 길에 솟아올라 그 세월의 무상함 느끼며, 뿌리는 반들반들 닳고닳아서 그 모습에 처연함을 느낀다.
솔 향기가 향긋하게 묻어나는 오월에 다산초당 가는 길을 걸었다.
길의 좌를 또 한 구비 도니 숲 속은 대낮이라도 마치 어두운 터널 속 같이 사방이 어둑어둑한 키가 큰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곳이었다.
나무 뿌리가 계단을 이룬 곳을 지나니 바위 돌이 계단을 이루고 있었다.
물소리가 졸졸졸 흘러나왔다. 이 가뭄에 물이 흐른다. 이런 야산에서 물은 작은 개울을 이루어 흘러내리고 초당이 가까워지자 삼나무 숲이 길에 키를 올리고 서 있었다.
이 길을 한번에 오르기는 너무 아쉬운 거리이고 그 여운이 짧아 중간에 한번쯤은 쉬고 가도 좋을 듯 싶은 길었다.
삼나무, 소나무, 대나무, 동백나무까지 한 무리로 뒤엉켜서 사는 곳이다. 더욱 짙어진 숲에서는 솔바람이 지나가며 대나무를 울리니 소리 한 자락이 우수수 떨어진다.
초당 앞 돌 축대 아래로 젊은 동백이 소나무를 밀어내고 푸른 잎사귀 총총 달고 자라고 있었다.
숲이 짙어 초당에서는 사방이 가려서 숨어사는 은둔자의 집이라고 해야할 것도 같고, 깊은 산중이 아니라서 산골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삼칸 와작 팔작집은 기풍과 고풍과 그리고 선비의 집 분위기는 어려있었다.
입구부터 西庵이 있었다. 서암에는 茶星閣(차성각)이라는 현판이 걸린 삼칸 맞배집이다. 아궁이와 집 뒤로 돌 굴뚝이 보였다. 이곳은 다산의 제자들이 기거했던 집이다.
서암의 앞을 지나 한 단의 층계를 오르면 작은 마당이 초당 앞에 사각으로 있고 그 중앙에 茶조(다조)라는 평바위가 아주 맨들맨들하게 앉아있었다. 다조란 차를 다리는 부엌이란 뜻으로 차를 여기서 끓였던 모양이다.
초당에 서니 중앙 마루 뒤로 작은 방이 보였고 선생님의 영정이 서 계셨다.
나는 모자를 들고 머리를 숙여 삼가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마음으로는 신발을 벗고 올라 큰절이라도 드리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깊은 애정과 그 분의 뜻을 기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진작 오지 못했던 사죄와 이제라도 와서 배알하는 기쁨을 마음으로 느끼며 이제는 다가가서 그 모습을 가까이 마주 하였다.
내가 그 분의 뜻을 새기고 기리는 연유는 이러하다.
그분의 높은 학문과 선비정신도 아니요, 실학자로써의 선각자로서도 아니요, 유배를 당하신 고통을 기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분이 사시는 동안 이런 산수와 자연에 벗하여 茶를 대하고 주변의 자연과 친화하여 사셨던 문학적 가치에 공감하기에 그토록 오고 싶었고 와서 그 경치와 분위기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중년의 남자가 내가 들고 온 자료를 좀 보여달라고 하기에 드리고 나는 집 뒤로 돌아나갔다. 군불은 집 좌우에 난 아궁이로 데우며, 뒤 벼랑 위로 수십년 된 동백나무가 줄을 지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집과 비슷한 뒤꼍을 돌아 좌측 벼랑에 샘이 있었다. 藥泉이라고 부른다.
다산 선생이 판 석간수 샘이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수량이 너무 적어 고여서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이 물을 길러다 차를 다렸다고 하니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는지 알 것도 같았다. 우리 차 문화의 맥을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 바로 정다산과 초의 선사 두 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초당은 마당에서 한 자 정도 올려 지었으며 기둥의 주춧돌은 사방에 각 두 개로 이는 이 집의 크기를 알려주는 의미도 있다. 물론 이 집은 200년 전의 다산 사시던 집은 아니다.
초가로 남았던 것을 1936년에는 초가조차 허물어져 버렸던 것을 1958년 다산 유적 보존회가 중건한 것이니 그 시대의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없다.
초가가 와당으로 바뀌고 집의 모습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면 3칸 측면 2칸의 크기는 집 아래 주춧돌이 남아서 그 운형대로 복원하였으니 이에 대한 설왕설래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이곳은 지금의 서당이나 학교라고 보면 된다. 제자를 가르친 곳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초당 앞으로 나오자 중년의 남자는 자료를 건내 주면서 선생님이시거나 무슨 학술연구소에서 조사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자료의 특별히 틀린 부분은 없다고 하시며 다만 靑石이라고 적힌 마당의 돌은 보시다시피 茶조(부엌 조)라고 고치면 된다고 하셨다.
이곳의 관리를 맡고 계시는 윤국현씨였다. 그는 해남 윤씨의 후손이고 이곳은 해남윤씨의 개인 소유 정자라고 하였다. 그러니 아직 이곳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곳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유물 전시관이나 다산초당에도 입장료를 받지 않았었다.
보이는 동암과 서암은 강진군에서 군비로 중건했지만 초당은 윤씨 가문에서 중건하여 관리하고 있다고 했었다.
내가 닫힌 문고리를 열어보고자 하니 올라오라고 했다. 그는 마루를 통하여 방안을 열고 보여 주었다. 방문은 아래서 위로 올려서 천장에 붙여 여는 방식이 세연정에서 본 모습과 비슷하였다.
정면에 걸린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추사의 글씨체로 풀草字는 草頭변과 옮겨서 적었다.
다산이 어느 날 달을 보며 혼자 계실 때 마치 백련사의 당대의 거승 혜장스님이 정다산을 찾아오시어 그들은 백련사와 초당 사이의 2km거리를 두고 유교와 불교의 학문적 교류를 교분을 이루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그리하여 불교관계 저술인 大芚寺誌 萬德寺詩를 저술하게 되었다고 한다.
초당의 왼편에는 蓮池가 있다.
연지에 떠있는 붉은 동백꽃잎을 보며 세월은 흘러 이 백년이 지났건만 이 붉은 동백이 저 연지에 떠 있는 광경은 지금이나 그때나 한가지일거라고 생각하며 무심한 동백꽃에 유심한 마음을 실어보았다.
작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연못을 만든 그 아름다움이 나를 자꾸만 산 속에 물가에서 살게 만들고 있었다.
연지를 돌아 산비탈에는 東庵이 있었다.
이곳은 선생의 숙소가 되는 곳이다.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하나는 寶丁山房이라고 쓴 글씨가 보였다. 이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고 그 옆에 쓴 茶山東庵이라는 글은 다산의 글씨이다.
天一閣은 동암 뒤로 돌아 30m가면 능선이 나왔다. 그러니 앞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누각으로 지어진 사방이 트인 마루에는 그야말로 막혔던 초당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올라서니 저 아래로 구강포의 바다와 넓은 들이 눈에 펼쳐졌다.
이곳에서 헤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흑산도로 유배간 둘째형 약진을 그리며 남해바다를 바라보던 곳이었다.
정말 이곳에 오르니 심중에 짐잠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서 나도 한동안 해 떨어지는 구강포를 바라보며 묵혔던 가슴, 녹 쓴 마음, 한동안 잊혔던 그리움이 밀려와 가슴 사무치는 눈물을 흘려보았다.
푸른 바다를 보며 한 자락 솔바람이 불어오니 막혔던 가슴이 확 트이고 가슴에 응어리진 한이 눈물로 흘러나옴은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다만 그런 시간에 그런 분위기에 가보지 못한 따름이지 누가 특별히 감성이 풍부하여 그러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아홉 골짜기 물이 모여 내려온다고 구강포라 하지 않던가? 간척을 하지 않았던 그 옛날에는 저 산 아래의 도로까지 바닷물이 넘실거렸다는 곳이니 그 푸른 바다의 크기는 짐작이 된다만 지금은 반이 바다가 뭍이 되어 버렸으니 바다는 반만 보이는 반쪽 구강포였다.
떠나기 싫은 심사는 어쩔 수가 없으니 같이 가겠다는 윤국현씨를 대동하여 白蓮寺를 가야하니 길을 돌아 나왔다. 길은 그 언덕을 넘어 가면 바로 백련사로 가련만 우린 차 때문에 산길을 버리고 초당으로 나왔다.
초당 오른쪽 위로 丁石바위가 보였다. 다산이 解配를 앞두고 발자취를 남기겠다고 새겨둔 바위에 쓴 글씨이다.
여기에 물리적으로 다산의 자취로는 이 돌에 세긴 글씨뿐이었다. 굳이 연못이며 주춧돌도 혼과 얼이 있다고 하면 별로 할말이 없으나 현판도 건물도 다 옛 것은 아니니 그러하다.
강진까지 같이 가겠다는 관리인을 모시고 우린 차를 둔 유물전시관으로 돌아왔다. 길은 오던 길이 아니고 화장실 뒤편을 돌아가니 지름길이 나왔다. 길섶에는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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