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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이 싫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타성에 젖었기 때문입니다. 명랑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 타성에 젖지 맙시다. 세상 진리인 줄로만 알았던 지난 추억들과, 세상 전부인 줄로만 알았던 동지들과 모든 연을 끊고 다른 곳으로 떠나갑시다. 시대의 비극이 없는 때에 살면서도 우리는 마음껏 사랑, 못 하고 있습니다. 내가 동경해 마지 않았던 당신의 그 예민한 정신이라면 충분히 사랑을 열렬히 하고도 남을 터인데, 우리는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타성에 젖어 패기를 잃은 하루하루는 살지 아니 하는 것만 못합니다. 화려한 청춘입네, 불타는 젊음입네 하는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왜 불쌍한 영혼이 되어야 합니까. 스탕달의 글귀를 사랑했던 한 나이든 남자가 내게 말했었습니다. 곧 내게 황금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그런데 왜 이 순간에 우리는 조로한 영혼이 되어야 합니까. 나는 이 곳이 싫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타성에 젖었기 때문입니다. 타성에 젖지 않은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의 정체된 영혼을 기리며 내가 눈물 흘릴 때, 갑자기 이 곳이 미칠 듯 지겹고 갑갑해 눈물 흘릴 때, 갑자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쥐고 소리 지를 때, 나의 정신을 의심하지 말고 부디 제발 우리 함께 생전 처음 보는 낯선 땅으로 나아갑시다. 나는 이 곳이 싫습니다. 아, 타성에 젖는 것은, 투쟁의 망령에 사로잡혀 상상의 힘을 잃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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