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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노래한다. 머리가 쭈뼛할 만큼 내가 존경하고 또 사모하는 한 음악가는 노래 가락에 ‘가슴을 물들였던 그 멍들은 푸른 젊음이었소’ 라는 가사를 붙였다. 독일 가곡에서는 ‘사랑의 기술을 내게 가르쳐 달라’고 했고, 파리지엥이 부르던 노래에서는 ‘사랑하라 그리고 또 사랑하라’고 했다.
한 방랑 시인은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고 했고, 어떤 소설가는 ‘너를 향해 흔들렸던 그 순간’을 글로 썼고, 외국의 유명한 작가는 ‘사랑이란 메타포처럼 너의 가슴속에 내가 아로새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에 단지 남녀의 사랑만이 있지는 않다. 내가 또한 연모해마지 않는 전혜린 씨는 딸을 키우는 이야기를 틈틈이 적어두었는데, 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찌나 절실하던지 그가 왜 스스로 세상과 이별하였을까 도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이다.
피천득 선생의 ‘딸에게’라는 글에서 ‘인정이 있는, 언제나 젊고 청신한 과학자가 되기를 바란다. 잠 아니 올 때는 리부륨 대신 포도주를 먹어라’라는 작지만 사랑 넘치고, 섬세한 구절을 읽었다. 집착하지 않는 부모의 올바른 사랑이 얼마나 훌륭한 것으로 승화되는지는 차마 따질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어머니께서 부처님께 불공드릴 때 읊고 싶은 기도문을 직접 쓰셨다 하시길래 잠드신 동안 슬쩍 살펴보다가 나는 느낀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적으로 밝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것들에 감사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라는 정성스런 글귀를 읽고서 감동이라고도 표현 아니 될 무언가를 느껴 보답을 하고자 어머니에 대한 글을 써 보았지만 그것은 감동도 가지지 못한 글인 듯 싶었다.
이에 못지 않게 사제간의 사랑도 무척이나 아름답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와 그 어떠한 교감이 사라져만 가는 시대라고 하여 더욱 빛나 보이는 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는 얼마 전 그 분을 찾아갔다.-아주 작고 사소한 일 때문에-. ‘응, 그래 무슨 일이니’하며 자리에서 직접 일어나 내 등을 토닥거려주셨을 때의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존경과 믿음이 복부를 뚫고 지나간 것 같다고 여겼다. ‘젊은이는 무엇이 알고 싶은가’라고 정중하게 학생들을 안내하시는 모습 역시 그렇다. 소위 사춘기라는 것이 분열 또는 파괴의 상태로 나를 몰고가려 했을 때 나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치 않는 듯 꾸몄지만, 그것을 꿰뚫으시고 ‘과도기란...’으로 시작하는 편지 한 통을 보내주셨던 그 분도 잊지 않는다.
작년에 나는 나보다 한살 아래의 후배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올해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의 후배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이 청소년기의 한 특징인줄은 모르겠지만, 타당한 근거나 이유 없이 선배가 꾸중한 것만큼 똑같이 후배들을 꾸중하여 보상을 받고자 하는 심리의 순환이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보고는 내가 그 고리를 끊어보리라, 후배들을 만나기전에 다짐하였었다. 후배들과 함께 나는 학교의 책자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감히 고리를 끊었다 할 만큼 무던히 많은 열정을 쏟아 노력하였다. 하지만 후배들이 말이 없어 과연 나는 작은 안내자도 되지 못하였던가 고민하던 중에 새로이 후배들이 들어오자, 그 결실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나는 기쁨과 환희를 감출 수 없었다. 허심탄회하게 서로 이야기하면서도, 차근차근히 작업을 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내게 큰 보람을 넘어 내가 본보기로서 열심히 생활하여 후배들에게 더 좋은 길을 내주어야겠다는 일종의 사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5년 전에 떠나온 그 곳의 벗들을 나는 아직도 만나보는데, 그들을 6개월이나 또는 1년에 한 번씩 만나게 되는 날이면 나는 이유 없이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아직도 많이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내게 감동을 주는 그들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헤어지는 순간에 빈말도 아니요, 속셈이 있는 말도 아닌 언어로 나의 행운을 빌어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또 벗과 벗 사이에 탄생하는 또 다른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결과론적으로 사랑이란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어떤 사랑이라 하여도 인간 스스로가 자신에게 갖는 애정만한 것은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어찌보면 매우 기계론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곰곰이 오랜 시간 여러 번 생각해도 나는 이런 결론 밖에 내리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기적인 것이 청춘 남녀의 사랑이라고 결론지은 것은, 부모와 자식 간, 스승과 제자 간, 선배와 후배 간, 그리고 벗과의 사랑은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데 비하여 청춘 남녀의 사랑은 어찌 보면 많은 기회 빼앗고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항상 둘이 함께 있어야 하니 사색할 기회를 빼앗기고, 한 사람만을 꾸준히 만나다보니 사람을 통해 접하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것이다. 부부 간의 사랑도 남녀의 사랑이지만 이는 청춘 남녀의 그것과 비교할 것이 못 될 것이다. 젊은이들은 온 몸에 한창 초록빛 녹음이 우거져 그 청초한 열정을 불살라야만 하는 처지에 있다. 고로 사랑이란 무엇인가 탐구하고자, 또는 자신의 아름다운 젊음을 즐기고자, 타인으로부터 젊음에 대한 보상으로서 사랑받고자, 황금의 시간에 추억을 남기고자, 혼자만은 주체 못할 청춘의 피를 내보내고자 사랑한다. 그 청춘에 그저 그대로 사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남녀들이 사랑을 한 연후에 그 야성적인 심연의 울림을 남겨놓는다면 그 사랑도 꼭 필요치 않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내가 읊어보았던 그러한 구절들, 어떤 이들은 어린아이 같다고 허무하게 웃음 짓고 손을 내저을지도 모르는 구절이지만 그러한 작은 흔적들은 또 다른 타인의 마음속에 진한 기억을 남기고 비록 비현실적일지라도 뜻있는 예술의 원천-아투로 산도발의 노래 마리아넬라,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 18살 청년과 할머니의 사랑을 그린 연극과 같은-이 된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경제라는 것을 배우던 도중에 ‘외부경제’라는 말이 무엇인가 질문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경제적 활동으로서 다른 사람이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아도 그 작용은 계속 된다’ 고 어찌나 문학적으로 표현을 하시던지 나는 이를 사랑과 결부시켜 생각하게 되었다. 청춘 남녀가 사랑을 할 때, 결과적으로 가장 이기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내 곁에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통하여 행복함을 느끼고, 이를 기억하고 남겨두고, 다른 종류의 사랑이 발휘하는 시너지 효과처럼 자신의 가슴을 성숙시켜 곁에 있던 이의 자유-떠나갈 자유조차-보장해 준다면, 요즘 성행하는 가벼운 사랑은 되지 않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살아라/사랑하는 사람들이여/사랑하라/사랑보다 더한 것을 주어라/보상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파리 지붕 위를 비추는 달아/보라/ 한 인간이 사랑으로 번민할 수 있다는 것을
- Nortre-dame de paris의 노랫말
그 언젠가 해묵은 상처 다 아물어도 검게 그을린 내 맘에 그대의 눈물로 새싹이 푸르게 돋아나
그대의 숨결로 나무를 이루면 그때라도 내 사랑 받아주오, 날 안아주오 단 하루라도 살아가게 해주오
나의 사랑 멍이 되어 그대 맘이 병들어 갈 때 더 이상 그대의 상처를 만져줄 수 없다면
가슴이 쓰라릴 지라도 단 한치의 망설임도 허락지 말고 그대로 내뱉어 주오
그때까지라도 날 담아주오 - 김동률
나는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한 개의 육체와 영혼이 분열하여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염, 기타의 각 원소로 환원하려고 할 때 그것을 막는 것이 사랑이다’ 어느 자살자의 수기 중의 일구야.
나도 생명이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나를 살게 해줘. - 전혜린
간다 간다 하기에 가라하고는/가나 아니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아라
-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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