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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을 만드는 이유에 대한 고찰
뚜렷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는 기억을 당신은 무엇이라 이름 붙이겠는가.
그것은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 스스로가 가슴 속에서 홀로 빚은,
지극히도 황홀한 상상의 결과물로서 우리는 보통 이를 판타지라고 한다.
나는 왜 그런 판타지를 쓸데없이 만들어내고 있는가.
아무 소용없는 듯한 그것은 내 욕망을 반영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어떠한 욕망인가하면, 낭만을 신격화하고, 그것을 열렬히 받들어
이를 그대로 실현해보기를 바라는 그러한 욕망이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마치 경험한 듯이,
절망하고 슬퍼하고 때로는 환희와 야성을 부르짖는 것,
그것들로부터 오는 심연의 감동을 즐기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러한 일련의 상상을 통하여 나는 나 자신을 경험자로 둔갑시킨 후
타인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거나, 작은 경험을 부풀려
창조의 원천으로 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이러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피부로 느끼기 힘들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 자신을 느끼기 위한 여러 수단과 방편 중의 하나는 판타지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내가 나를 느끼지 않는다면 타인은 나를 결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타인의 시선 없이 살아가야 할 것이고,
나 홀로 고립되는 것은 내 욕망과 절대적으로 반하는 일이므로
머리를 쥐뜯으며 살게 될 것이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처럼 낭만이라는 이름을 빌어
나에 대해 사랑어린 궁금증을 갖고서 나를 관찰하고, 해부하여
세상이라는 표본실에 내보이지 않는 한.
그렇다해도 나는 만족할 수 없다. 그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이것이, 내가 타인의 사랑만으로 연명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타인의 사랑만으로 연명해야 한다면 나는 그 누구의 사랑을 받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 어떤 사랑도
내가 나의 존재에 대해 갖는 성스럽고도 한편으로 집착스런 애정만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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