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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꾸었던 낭만은 어디로 갔을까
온전히 실존주의적이지 못한 나는 전혜린씨와 같은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이라든가 그렇게 살아갈 용기는 없지만, 내가 그의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을 때 나는 전혜린씨의 모든 생각에 흠뻑 빠져들었다. 정서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공감할 만한 사람의 글을 읽게 되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학창시절에 ‘지상의 양심’에 나오는, ‘나타나엘이여, 우리는 비를 받아들이자’라는 구절을 읽고서 빗속을 거닐어보았다고 썼다. 참으로 낭만적인 이야기다.
지금 십대들에겐 낭만이란 것이 별로 없는 듯 보인다. 낭만은 자칫 유치할 수 있는 것이라지만, 사람을 살게하는 커다란 원동력 중의 하나가 바로 낭만 아닐까. 사랑도 결국에 가서는 낭만이라고 부를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단순히 낭만을 가져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낭만이라는 것을 품을 수 있는 성숙된‘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큰 문제일 것이다. 유치하지 않은 낭만을 지닐 수 있을 만큼의 정신. 그것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나의 절친한 친구는 병상에서도 공부를 한다. 또한, 다음 주에 있을 ‘전국모의고사’를 위해 휠체어를 타고 와 양호실에서 시험을 치르겠다고 하니, 그가 가진 욕심이 많은 탓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병상에서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할 만큼 획일적인 것을 바삐 쫓다보니 낭만을 떠올릴 마음을 가지기가 힘든 것이 아닌가 한다.
교직에서 물러나신 후 화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며 지내시는 내 고모부님은 우리들에게 낭만이 없다는 것을 슬퍼하신다. 오래전 학생들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똑같이 공부를 하는데도 그 때 살아있던 낭만이 지금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는 사실을 슬퍼하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청계천의 헌 책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독했던 그 책, 영문학의 대가가 썼다는 그 책을 떠올리시는 것이었다.
낭만은 단순히 사랑, 이별과 같은 감정적인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혜린씨가 가졌던 낭만이란 하루하루 언제나 생동감 넘치게 사는 것이었던 듯 보인다.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삶의 신비에 경탄하고 매 순간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 그러한 낭만. 꿈이라든가 자아의 완성이라든가 하는 것 말이다. 낭만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이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낭만에 대해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전혜린씨가 그토록 젊은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은, 그가 가졌던 너무나도 풍부하고 강렬한 낭만에 대해 세상이 무관심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는 자신에게 있어 평범함을 절대적으로 거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는 낭만의 상징이 되었고, 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고, 그 젊은이들 중의 하나는 나다. 그 덕분에 나는 ‘우리의 낭만은 어디로 가버린걸까’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낭만, 인간이 뿜어내는 상상력과 창조력의 원천이 되는 낭만을 가지지 못하는 세태에 대해 우울해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한편으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낭만적인 봄날에 더 많은 낭만을 품으려고 손을 턱에 괴곤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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