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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농일기 33
요즈음 출퇴근을 산막에서 하니 이제 사천의 두칠이를 산청의 두칠이로 고쳐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퇴근시간이 되면 혼자 마음이 바쁘다. 빨리 가면 한두 시간의 여유시간이 생겨 내가 하고자 하는 밭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천 톨게이트를 빠져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20분이면 지리산/단성인터체인지에 도착한다.
출퇴근에 부담이 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교통비이다. 차량 연료비에 도로비까지 환산하면 봉급쟁이 월급으로 승용차 출퇴근은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하여가네 나는 별일 없으면 출퇴근을 하고 산다.
오늘은 단성톨게이트에 볼일이 있다. 지난주에 톨게이트에서 본 그 보라색 붓꽃을 가져갈 생각이다. 요즈음 톨게이트에 단장들을 어디가나 잘 해 놓았지만 여기 단성톨게이트는 야생화로 단장을 해 놓았다. 그래서 지난주에 붓꽃 한 포기를 얻을까하여 책임자를 만났는데 야생화 화단조경을 직접 한다며 오늘 뽑아주기로 한 날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은 한 명도 안보이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계시다 얼른 일어나서 반긴다. 차 한잔을 얻어 마실 사이도 없이 둘은 일어서서 화단으로 나갔다.
나는 트렁크에 준비해 둔 빈 박스에 보라색 붓꽃 두 포기를 싣고는 산막으로 왔다.
저녁을 먹기 전에 어디에다 심을까 하고 궁리를 하다. 난초 종류의 붓꽃은 습하고 그늘이 약간 지는 곳이 제 자리이지 싶어, 집 뒤 포고버섯 재배 장을 차린 옆 물가에다 심기로 하였다. 지난해 심은 노란 붓꽃 곁이다.
여기서 한두 해만 키워 개울가로 옮겨 심을까 보다. 노란 꽃과 보라 꽃이 어울리면 더욱 화려하지 싶었다.
저녁을 먹고는 어머니를 채근하여 오디를 따려 갔다. 어두워지기 전에 가야 하기에 차로 산중턱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비닐봉지를 들고는 뽕밭에 가니 한 사나흘 전에 따먹었던 그 오디 나무에 그 동안 익은 오디가 딱지딱지 개미처럼 오지게 매달려 있었다.
"엄니 참 달지요? 마을 할머니께서 그러시던데 오디가 단 나무가 있고, 못한 나무가 있데요. 이 나무는 열매는 잘아도 저 나무보다 맛이 좋지요."
나는 얼른 하나를 따서 엄니 입에 넣어 드렸다. 엄니는 자시지를 않으시고 봉지에 담기 바쁘다. 나는 담지는 않고 내 입에 넣기 바쁘다.
"엄니 가져가서 줄 사람도 없는데 여기서 실큰 자시고 말아요."
그래도 엄니께서는 자시질 않고 봉지에 손가락이 안보일 정도로 담으신다. 나무 하나에 열린 익은 오디를 다 따고는 나무가 더 자란 나무에 가서 보니 뽕잎도 크다랗고 오디도 굵다. 그래도 단맛은 작은 나무만 못하였다.
반소매 반바지 차림의 내가 벌레가 물려 가렵다고 하자 걱정이 되시는지 그만 가자고 하신다.
"여기가 산중은 산중이다. 보리가 익으면 우리 어릴 적에도 오디 한두 번은 따먹었다만 이렇게 흔하지 않았어. 겨우 맛이나 볼 정도이지. 여긴 오디 따러 오는 사람도 없는 모양이다."
"지난번에 마을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하루 이틀 지나면 익은 오디는 저절로 다 떨어지는 것이니 익는 데로 보는 사람이 따먹고 마는 것이 오디 수확이라고 하시면서 따먹어라 하셨어요."
"따면서 먹으면 맛이 좋은데 왜 따 모으셔요? 누구 가져다 줄 사람이 있나요?"
"아니다. 날이 어두워지려고 하고, 모기도 문다고 하니, 어서 따 모아서 집에 가서 먹자구나."
그날 저녁에 나는 산에서도 내 몫을 먹고 집에 와서 밥공기에 담은 엄니의 오디도 먹었다.
엄니 입술도 손바닥도 시퍼렇게 물이 들었다. 우리 마주 보고는 한참을 웃다 나는 엄니가 가져다주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엄니는 부엌에서 손을 씻었다.
내일은 엄니께서 마산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셨다.
오늘 낮에는 산막 산자락에서 으아리꽃을 꺾어다 꽃꽂이를 해 놓으셨다.
내일은 마당에 핀 패랭이 한 포기를 화분에 담아 달라고 하신다. 집으로 가져가실 모양이다. 지난해 가을에 산막에 오셔서 분홍색의 약쑥 꽃으로 꽃꽂이를 해 두시더니 이번에는 이름 모르는 풀꽃으로 하나 차탁에 놓으시고, 넝쿨나무 으아리는 책꽂이 상단에 놓아 두셨다.
내 어머니께서 얼마나 꽃을 좋아하시는지 나는 아직 어린아이다. 꽃 사랑하시는 마음은.
뿐만 아니라 화분에 심는 꽃들도 정말 잘 가꾸신다. 내가 작년 봄에 한두 포기 구절초 어린 모종을 구해 드렸더니, 바란다 입구가 좁도록 꽃을 피어내셨다.
매일 물을 주고 햇볕에 내 놓으시고 정을 주시는 분이다.
"엄니 산막에 사시사철 꽃이 피도록 만들어 놓을께요. 엄니께서 좋아하시는 야생초며 들꽃들요."
"그래 철철이 돌아가며 꽃이 피면 아름답지. 저기 저 꽃은 무슨 꽃일까?"
"엄니 저 꽃은 초롱꽃입니다. 이제 한 송이가 먼저 피었네요."
별이 총총한 날에 개구리 소리가 어둠을 풍성하게 하는 날에 엄니 사진을 찍었다.
"훗날 이 사진 보며 날 기억해 주려무나. 내가 성모님께 꽃도 올리고 이렇게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시절을 기억해 보려무나."
나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 어머님은 지금 일흔 하고도 넷이나 되는 연세이시다.
"내가 니 외할머니만큼만 살면야.. 아직은 한참 남았지만."
내 외할머니께서는 아흔도 넘기고 몇 년을 더 사셨으니.
"암요, 엄니 이리도 정정하신 데요."
내일은 근처 암자라도 모시고 가야겠다. 당신께서는 성당에 다니시기 전까지는 사월 초파일이면 우리 형제들 이름으로 연등을 다셨다.
아들 절에 간다고 나무라시는 분이 아니다.
나는 절에 가면 부처님께 절하고, 성당가면 성모님께 절한다. 그리고 산막 느티나무 할아버지께도 수시로 들랑이며 합장으로 인사를 올린다.
내일은 부처님 오신날 내가 절에 절밥 먹으러 가는 날이다.
2004. 05. 27.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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