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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삼월이라!
겨울 내 가보고 싶었던 계룡산 망설이기만 하다 드디어 봄이 오는 소리에 산을 찾는다. 차에서 막 내렸을 때 작은 절이 눈에 들어온다.
새로울 것도 없는 평범한 절의 모습은 흐르는 냇물과 어울어진 불경 소리와 함께 하염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은선폭포를 향해 한참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갑자기 진흙탕이 된 오솔길이 나타났다. 점점이 보이는 눈과 소리 없이 녹는 하얀 눈은 그대로의 빛이 아니라 갈색으로 젖어 있었다.
찰박찰박 신발 아래 묻어나는 소리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눈빛만 흘리고. 산비탈에는 아직도 제철인 양 은백색 눈이 이방인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겨울잠에 빠진 무수한 생명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리고.
누구나 삶 의 목표을 향해 노력하고 인내하는 것 같이 산을 오를 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내 숨이 멈출 것 같은 긴 고통의 시간을 정복의 즐거움에 순간 순간을 잊으며... 또한 자기완성의 만족 기억하며 도착하리라. 그리고 목표는 자신이 다가서지 않으며 산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
드디어 은선 폭포! 한 줄기 비단실을 뽑아 내듯 곱게 세상 밖으로 내미는 누에고치 같이 살며시 계곡을 돌고 돌며 꿈틀거리고... 지금까진 흔적 없는 산행을 다짐했지만 한 폭의 동양화처럼 고운 풍경에 지나칠 수 없어 디카 한 컷! 이왕 이면 다홍치마 김치! 치즈! 위스키!
그런데 시간은 땀 닦는 것도 아까운 듯 우리를 재촉한다.
다시 관음봉을 향해 산행 회장님 그 무거운 짐을 산신제를 위한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시듯 역시! 회장님 회원의 안전을 위한 하늘과 같은 마음에 감사드리며..
또 다시 나타난 가파른 언덕길 눈은 하얗게 웃고 섯는데... 산길을 오르는 이방인은 조심조심 앞선 사람의 발자국을 쫓아 한 걸음 한 걸음 인생 또한 피안 찾아 험한 파도 헤치는 작은 배처럼 어려움과 희망을 함께 해야하는 것
경쟁사회에서 우리의 고달픔은 무한한 공간여행만 지속할 뿐 너와 내가 있다는 따스한 인간애가 갑자기 새롭다. 앞선 눈 발자국처럼 안전한 길로 인도하는 선각자의 희생도 있었음을 잊지 않으며...
땀이 비오듯이 전신을 적시는데 갑자기 휘! 하얀 눈발이 앞을 가리고 아니! 동료 한 분이 장난 삼아... "덥죠... 이제 시원하죠!" 참을 수 없지요. 두툼한 장갑도 꼇겠다. 한 웅큼 눈을 잡아 날려 본다 놀라 날아간 눈덩이는 순식간에 하늘빛에 젖어 옥빛으로 녹는다.
산은 언제나 추억의 고향 어린 시절 뒷동산 솔밭 아래 풋풋히 날리던 솔방울 내음이 부드럽다. 얼마전 대량 폭설로 커다란 나뭇가지들의 속살을 덜어내고 서 있는 광경은 하늘의 짐이 얼마나 버거웠으면...이젠 곱게 다듬어 진 몸으로 해슬피 웃는다.
기진 맥진 관음봉 정자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수채화처럼 고운 자태로 한껏 뽐낸 산을 배경으로 디카는 열심히 돌아가고 산신제 준비에 바쁘신 회장님과 회원들... 시루떡, 배,사과, 돼지머리고기... 산 사나이들의 손 놀림 회장님 장엄한 산신제를 알리고...
비록 돼지머리는 없지만 정성을 다해 계룡산 산신령께 올 한 해 건강하고 무탈한 산행길이 되도록 두 번 절 하시고... 몇 분의 회원들도... 동동주 한 사발로 워이워이! 오늘 같이 좋은 날 마음껏 드시옵소서...
오늘의 하이라이트 꿀 맛 시루떡 한 조각에 동동주 한 잔! 주위에 산행오신 분들과 함께 짠! "그럼 점심 드실 분 드십시오." 회장님 말씀에 속으로 "뭐 돼지인가?" 미련없이 삼불봉을 향해 레즈고!
바위 너머 산능선들이 다정하게 어깨동무 한 채 이어지는 아름다움에 기가 질려 소리 한 번 질러 보지도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키워 본다.
계속 철 계단과 바위고개 넘어 또 비탈진 눈길 아가 걸음으로 아장아장 달래며 걷는데 어디서 경상도 아저씨 큰 목소리가 " 산에서는 여자가 이쁜 것도 소용없고 장비를 잘 챙켜야지 얼굴이 다 무슨 소용이고." 여자 분을 막 나무라시는 말씀에 피시시 웃으며 잽싸게 로프을 잡고 가볍게 미끄럼을 탔다.
꼭 해야만 할 상황이라면 겁먹지 말과 과감하게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용기만이 실패를 이겨 나 갈 수 있는 무기라는 걸 잊지 말아야지...
좁은 외길에 눈까지 첫 시동을 걸어볼까? 새로 구입한 아이젠을 자랑스럽게 신고 다른 사람들은 졸졸 미끄러지면서 내려가는데... 준비성 하나로 처벅처벅 눈 위로 걸어가는 당당한 모습
그런데 왠일? 뒷사람이 미끄러지는 불상사는 없겠지 앞에 가던 아가씨가 영 울상이다.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황 "조심하세요." 말 한 마디 뿐 잡아 줄 수 없어 미안할 따름이었다. 어렵게 성취했을 때의 자신감은 자아에 대한 신뢰와 바위같은 든든한 믿음의 선물을 준다.
산불봉은 거대한 바위 위태롭게 서있는 나뭇가지들 생명은 어디서나 태어나고 불안전하게 보이는 모습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항상 새로운 얼굴을 하고 바위 곁에 공생의 길을 가는 듯 하다.
남매탑 주위에는 많은 연인들과 가족들이 쉬고 있었다. 아니? 이게 내 모습이라니? 바지가 그야 말로 진흙 투성이 나만 정상에 갔다왔나?
조금은 쑥쓰러웠지만 어디선가 눈 녹아 내리는 소리가 났다. 계곡물은 계속 흘러왔겠지 왜? 이제야 소리를 듣게 되나 하얀 눈길 속에서 여행을 마치고 막 도착한 맑은 소리 마치 파도 소리와 흡사했다.
찰찰찰...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리듬을 타고 따라 오는 물소리 들릴 듯 말 듯 눈의 노래는 "나는 간다네. 모든 걸 벗어 버리고, 바다로 바다로 간다네. 그 곳에서 친구여! 다시 만나자꾸나. 잠시의 이별 영원한 만남을 위해 은빛 모래밭 조가비 웃음소리 가득한 넓고 깊은 바다에서 다시 파도로 태어나 만나자구나."
계속 되던 계곡 물은 개울로 변하고 소리는 점점 작아져 어디선가 개구리울음소리 빙 둘러선 우리를 보는 건지 우리가 동물원 우리 속에 있는 건지 멋지게 헤엄쳐 보이는 녀석과 바위틈에서 개골개골 웃기만 하는 개구리소리는 개울 물소리와 함께 어울어져 날리고
다음 산행 때까지 조급증에 걸리진 않겠지.
주차장에서 본 계룡산! 역시 우아한 중년의 미소처럼 그렇게 백발을 날리며 세상을 보고 있었다.
2004. 3. 14(일) 계룡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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