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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오래간만에 인근 산을 올랐다.
그사이 여러 가지로 몸과 마음이 분주해 가을이 오고있는 하늘
한번 편안하게 바라볼수 없었다.
태풍 매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부러진 나무가 큰길을 가로막긴
했지만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이미 여럿 다녀갔는지 희미하게나마
산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물과 바람의 강함을 내 가까이에서 그렇게 처참하게 보여준 그
대자연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맑은 하늘에 이따금 한웅큼의
가을바람을 보내주어 산길을 걷기에 안성마춤인 날씨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산도 곳곳이 망가져 있는데도 대자연은
시침을 뗀 태평스러운 모습으로 상처입지 않은 키작은 들풀들을
바람에 날리면서 또 한켠에선 가을꽃을 열심히 피우고 있었다.
어쩜 산과 나무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각오로 다시
제 모습찾기를 하고있는 것일까?
모처럼만에 산 정상에 올라 주변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데 작업복 차림의 중년아저씨 한분이 올라 오셨다.
태풍으로 임도의 길이 무너진 곳이 많아 포크레인 기사와 함께
작업을 하다 갑자기 이 태풍에 산은 어떻게 되었을까 싶어 올라
오셨다면서 생채기가 난 아름드리 나무들을 살펴보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셨다.
이고장에서 50평생을 살면서 주변의 임도 만드는 작업에 숱하게
참여했지만 정작 산에는 오늘 처음 올라 와 보셨다는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읍내쪽과 이웃한 산의 무너져내린
임도등을 말없이 한참을 바라본후 건네준 물한잔을 마시고선
작업중인 기사에게 일의 진척도를 챙기고는 올라오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내려가시겠다면서 하산길을 물어왔다.
저쪽길로 리본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고 일려 드렸더니 그제서야
리본의 용도를 깨우치고 저 리본들이 왜 달려있나 싶었다면서
빠른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 가셨다.
산 주변을 맴돌면서 생활하는 날이 많음에도 비오는 날 이외의
거의 모든날은 현장에서 작업을 하시기에 한번도 산을 오르지
못하여 나무에 매달린 색색의 리본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오신 그를 유난히 맑은 가을 하늘과 상큼한 한줌의 바람이
산으로 데려왔겠지만, 오늘따라 시야가 무척 좋아 평소 보기
어려운 지리산의 천황봉과 그 주변의 능선길, 그리고
인근이긴하나 제법 멀리 떨어진 조선소도 아주 가까운 듯이
선명하게 보임이 무척 다행으로 여겨졌다.
처음으로 색다른 유희를 즐기신 그 분을 위해서.
지금도 저렇게 일정한 휴일도 없이 그것이 전부인양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면서 지난 20여일간 연장근무
등으로 들쑥날쑥했던 퇴근시간만으로도 힘들어했던 나 자신을
돌아봤다.
그 아저씨와 비록 짧은 대화만 나누었지만 그도 이제는
생업아닌 다른 유희도 가져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유스러움도
느낄수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절이 바뀌고 있는
산길을 내려왔다.
2003.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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