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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치에 대한 기억들
지금 제주에는 여름 갈치가 제철을 만나 휴가 온 사람의 입을 한창 즐겁게 하는 모양이다.
여름 휴가를 제주로 다녀온 사람이 산 갈치로 갈치구이를 직접 해 먹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어 이 참에 한참을 잊어버린 내 소년의 뜰에 갇힌 갈치에 대한 명상을 해 볼까 한다.
내가 소년을 살았던 집은 도회지이지만 그 시절에는 변두리라 들 가운데 기와집 두 채가 전부인 곳이었다. 사방으로 논밭이라 봄에는 개구리 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지만 여름에는 들판 햇살을 온통 받고 살아야 하는 들 가운데 집이었다.
그 기와집 한 채는 우리 집이었고 나머지 한 채는 이웃집이었지만 두 집의 어른 내외는 형님 아우하며 지나는 우애가 깊은 이웃이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선창에서 노점 생선 장사를 하시는 분이었다.
새벽 어시장에 나가 경매하는 고깃배의 생선을 받아 하루종일 어시장 난전에서 찬물 손에 담그야 일곱 식구를 부양하시는 억척 아지매이었다.
내가 지금 그 집 내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생선장사란 철 따라 잡히는 생선을 어시장을 가지 않아도 구경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 시절에는 냉장시절이 부족하여 바다에서 지난밤에 잡은 생선은 그날로 대개 서울로 얼음 채워서 보내고 나머지는 그 지방에서 그 날로 소비를 했다.
남해안에 여름철 생선으로 가장 흔히 잡히는 생선이 바로 생갈치다.
갈치가 많이 잡히는 날 아침에는 이웃집 우물가에는 이웃집 아저씨가 리어카에 싣고 오는 갈치상자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갈치 상자 하나를 뒤집어 못 끝이 하늘로 나오도록 박고, 상자를 엎어 도마로 하여 갈치 한 마리씩 목 부분을 잡아서는 못 끝에다 사정없이 때리면 정확하게 갈치 눈 부분에 꽂히게 된다.
아주머니 아저씨는 우물가에 앉아 한 손에 든 식칼로 갈치 배를 단칼에 가르면 갈치는 내장을 내 놓게 되었다. 큰 플라스틱 통에 한 두 번 흔들어 헹구어서는 손질한 갈치를 마당주위 철조망에 갈치 머리를 때리면 갈치가 울타리를 따라 세로로 도열을 하게 되었다.
나무 상자에서 우물가로 내려지는 갈치의 은빛 피부는 여름 햇살에 눈이 부신다.
금빛보다 더욱 환하고 빛나는 것이 은빛이다. 어디 거울이 저처럼 찬란하랴! 어디 보석인들 저리 반짝이랴!
그 찬란한 빛을 고스란히 지닌 채 따가운 한여름의 햇살에 갈치는 생살을 말리고 있었다.
찬란하면 할수록 빛을 흡수하는지 한나절도 못되어 갈치는 말라서 걷어들여야 했다.
생 갈치를 말리는 이유는 냉동보관시설이 부족하니 말려서 다시 시장에서 반찬으로 파는 것이었다. 이런 갈치라도 우린 회로 먹지는 않았다. 일단 산 갈치가 아니었고, 갈치는 반짝이는 비늘에 독성이 있어 생으로 먹지 않았다. 지금은 어디에서 정말 생 갈치가 아니라 산 갈치를 구하는지 몰라도 갈치 회를 판다는 선전문구를 본 것도 같다만 어찌 신선도가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인다.
이런 여름철, 생 갈치가 지천으로 잡혔던 그 시절에는 생 갈치 한 마리 서너 토막 내어 갈치조림을 하면 그 맛이 그만이다. 고추, 마늘에 양파, 애호박 넣고 국물이 약간 나오도록 끓이면 여름반찬으로, 참 갈치 매운탕 집이 성업중인 것도 같구나.
마른 갈치도 조림을 하거나 연탄불에 구워서 술안주로 내 놓으면 정말 좋은데.
갈치에 대한 다른 기억 하나는 내가 먹어본 생 갈치 회이다.
거제도 구조라 해변에서 아침나절에 마을 할아버지께서 낚시로 잡은 산 갈치를 얻어다 마을 가게에서 회 무침으로 먹은 여름의 빛나는 식도락의 추억이다.
지금은 갈치가 귀하여 남해안에서는 서민 입에는 들어올 여량이 없고 다만 제주산 갈치가 득세를 한다만, 그 시절에는 여름에는 내내 갈치를 입에 달고 살았다. 비린내가 유독 심한 갈치이지만 은빛 비늘이 황홀한 천상의 빛으로 빛나던 생 갈치.
헌데 이 갈치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이웃집 아저씨가 해 주셨다.
갈치를 그물 망으로 잡는 줄 알았는데 낚시로 잡아 올린다는 것이다
그 갈치낚시의 미끼가 정말이지 웃지 못할 아이러니였다.
그토록 빛나는 비늘을 가진 갈치의 미끼는 바로 갈치 제 꼬리라는 것이다.
갈치 살을 잘라서 사용해도 되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갈치 꼬리지느러미 부분의 가운데를 삼각형으로 잘라서 사용한다고 한다.
잡아 올리면 그 자리에서 꼬리 잘리고, 그 잘린 꼬리는 다음 잡히는 갈치의 미끼로 사용되는 제 살을 먹는 고기가 바로 갈치이다.
그래서 더욱 비릿한 냄새가 나는 생선이 또한 갈치이기도 한가 보다.
햇살이 따가운 팔월의 뙤약볕에서 긴 꼬리 내리고 줄지어 바람 타고 말리던 갈치의 기억이여!
2003. 08. 08.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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