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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농일기 13
오늘부터 한 주일간 여름 휴가를 받았다.
남들은 바다로 산으로 가족 데리고 휴가를 떠난다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온다.
내가 산천경개 좋은 곳은 그네들보다 많이 다녔다고 한적하고 시원한 곳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
혹자는 내 놓고 이번 여름에는 따라 나서겠노라고 사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허나 어렵소! 올 여름은 일없소!"
진작부터 여름 휴가가 오길 잔뜩 기다리고 있는 참이다.
산막을 얻어놓고는 어디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했고 산막 주위 단장도 못한 지경이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산막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우리 토속 농주인 막걸리, 동동주 담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고, 혹시 여유가 되면 옷감 감물들이기도 해 보고 싶었다.
위 두 가지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토요일이 반공일이라 점심도 먹기 전에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무실 여직원이 신문지에 둘둘 말은 막대기를 들고 들어와서는 내 곁에 내려놓았다.
어제 오후에 전화를 주문한 풀 메는 농기구인 '딸깍이'라는 물건이었다. 길이가 내 키보다 길어서 신문지 포장을 풀면 사무실 사람들이 구경한다고 몰려 올 것이고 나는 동료들이 물어와도 그냥 지나가는 대답만 하고는 차에 옮겨 싣고 아침 운동 길에 얻어 논 토란 모종을 싣고는 내 산막으로 갈 참이었다. 헌데 혹시나 연화 꽃집에 가면 꽃모종 몇 개나 얻어 올까하는 욕심이 생겨 와룡화원으로 갔다. 연화 신랑하고 신랑 친구가 '딸깍이'를 보드니 얼마 주었느냐고 묻는다. 나는 딸깍이 2종에 4만 귀천을 주었다고 했더니,
"아이고 마 농부 사정에 그리도 비싼 농기구를 사면서 어찌 농사 지을 라요?"
그러면서 화원 마당의 잡초를 딸깍이로 메어 보인다.
"손잡이가 이리 가늘고 휘청거려서 일 해 먹겠소?"
이러면서 자기 집에 있는 풀을 제거하는 날이 제법 넓은 딸깍이 비슷한 농기구를 들고 나왔다.
정말이지 내가 직접 해보니 오히려 손에 힘이 들어가서 일이 잘 되는 것이었다.
"이건 얼마요?"
"마 오천원이면 골라가며 사는데, 날은 한번씩 그라인더에 갈아 쓰면 그저 그만이지요."
아무래도 잘 못 산 것 같았다. 그렇다고 되 물릴 수도 없고, 시원찮은 농부가 이것저것 편리하다면 덜컹 덜컹 장비는 잘도 사는 셈이 되고 말았다.
십 만원도 넘게 하는 '풀밀어'라는 장비를 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어 '딸깍이'를 다시 차에 넣고는 날 따라서 산막에 가보겠다며 따라 나선다. 나야 혼자 가는 길이니 잘 되었다 싶어 내 뒤에 무소 스포츠를 대동하고 산막 뒷산 선유동 폭포 골로 안내를 하였다.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계곡에서 우리 삼인은 훌훌 벗고 목욕을 했다.
내가 휴가 첫날부터 한가하게 물놀이나 하면서 보낼 여가가 아니지 싶어 후닥닥 손님들 차 한잔 대접하여 보내고 일단 감나무 밭에서 떨어진 풋감을 주어 놓았다.
토란 모종을 심자니 지난번에 콩을 심었던 자리에는 벌써 풀밭이 되어 있었다. 저 풀을 말끔히 메고는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야 토란을 심을 터인데, 심는 일이야 풀 메는 일에 비하면 쉽고도 쉬운 일이다. 삽으로 밭의 흙을 차례로 떠서 뒤집어 놓고 호미로 차근차근 풀을 가려내어야 한다. 뿌리에 흙덩이를 손으로 일일이 떼어내고는 풀만 가려서 한곳으로 모은다. 별로 길지도 넓지도 않은 밭고랑 하나를 일구는 데도 나는 아침에 운동장 열 바퀴 도는 일보다 땀이 더 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분명 힘이야 뛰는 일이 힘들 것인데도 말이다. 나는 농사 체질이 아닐까? 뜀박질 체질일까? 안경 밑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흙 묻은 면장갑 낀 손으로 훔칠 제간이 없다. 땀이 흘러 입으로 들어오니 짭쪼롬한 맛이 마치 콧물 먹었던 기억처럼 아릿하다.
붓글씨 쓴다는 권선생님 부인이 나들이 차림으로 찾아와서는 토란 모종을 하나 하나 흙에 묻어 준다. 일을 하는 동안 계속 말씀을 하여 심심하지는 않았다. 아들 딸 손자 이야기부터 권선생님 이야기까지 이야기가 좋으신 분이었다. 자기 집에 꼭 한번 와 달라고 몇 번이고 당부를 하신다. 토란을 심기는 해도 나는 이 토란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 채소인지 잘 모른다. 마치 잎사귀 좋은 연잎처럼 멋진 포즈로 자라는 것이 보기 좋아 심었다. 먹어도 그만 못 먹어도 그만이다. 지난번에 심은 배추와 무는 제대로 자라지도 못 했지만 수확도 못하고 저절로 망하고 말았다. 배추밭은 이미 풀밭이 다 되어가고 무밭도 무꽃이 피어 무를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심고 자라면 수확하여 먹어야 하는데 수확하는 시기를 놓치고 만 것이다. 시기를 놓쳤다는 말뜻은 용도가 없어 그냥 밭에 두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저녁도 혼자서 밥을 먹는 밤이다.
혼자 밥상에 앉으면 나는 알 수 없는 기도가 습관처럼 흘러나온다.
내가 지은 밥을 나 혼자 먹으면서 하는 기도는 무슨 기도일까?
미안하게도 하나님께도 아니고 부처님께도 아니고 자연에게도 아닌 나 혼자 나에게 감사하는 기도이다. 나는 이처럼 비정하고 매정한 에고이스트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나를 제일로 사랑한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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