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芙蓉里에서 五友歌를 읋으며 孤山 흉내를(2)

2. 둘째날: 甫吉島探訪
2-1 芙蓉里에서 五友歌를 읋으며 孤山 흉내를(2)

처음 가고 한번 가서 보고들은 것이 그 얼마나 되겠냐마는 본대로 들은 데로 아는 데로 적어보리다.
세연정에는 세연지와 회수담이라는 두 개의 연못이 붙어있다. 세연지로 흘러 들어온 물이 못 둑의 다섯 구멍을 통하여 회수담으로 흐른다. 그러나 이 구멍은 입구는 다섯 구멍이 보이나 출구에는 하나의 구멍도 보이지 않고 돌담으로 막혀있어 세연지의 물이 정수되어 회수담으로 들어오도록 설치되었다고 한다. 회수담에서 외부로 흘러나가는 수구도 다만 셋을 만들어 그 수위를 높이고 물이 파도치듯이 흔들리도록 고안되었다. 주위에는 노송과 고목이 연못과 어울러지고 특히 홍송과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세연정에서 오우가 어부사시사등 주옥같은 우리 시가를 집필하셨던 곳으로 세연정은 정자처럼 지어진 사방이 터진 단칸 집이다. 가운데 방에는 온돌로 불을 넣은 화구가 있으며 사방으로 툇마루를 달아 방문으로 연결되었으며 방문은 모두 열어 젖어 올리어 천장으로 붙이는 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정자 사방으로도 다 문을 달아 문을 다 열어 위로 열어붙이면 사방이 다 트인 정자가 되고 문을 다 내려 닫으면 벽이 되어 닫친 집이 되는 것이다.
세연정 앞으로 동대와 서대를 올리어 동대에서는 군무를 즐기고 서대에서는 여자들이 춤을 추었다고 한다. 연못가에는 여럿의 자연석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모두들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돌들도 옮겨와서 조화와 못을 갖추어 배치를 하였던 것이다.
그중 판석보라는 다리가 있어 물이 많이 내려오면 넘쳐흘러 폭포가 되고 평시에는 댐이 되었다는 일명 꿀뚝다리 혹은 걸을 때 딸각 딸각 소리가 난다하여 딸깍다리라고도 한다.
활바위에서 바라본 옥소대는 숲에 가려 바위만 보이고 옥소대로 활을 쏘았다는 그 자리에 서서 세연지를 내려다보니 알맞게 차 오른 물위로 빨간 동백꽃잎이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건너 못 가로 널어선 나무들이 모두 동백의 푸른 잎 사이로 하얀 동백나무 등걸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세연정을 다섯 바퀴 돌고 연못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남쪽의 봉화대와 고산마총을 돌아 동대 서대에 올라서 하늘을 덮은 수림을 우러러 그 옛날의 흥과 정취를 살려보려도, 사방이 소란하고 분위기가 어수선하여 옥소대로 올라갔다. 세연정 좌측 판석보를 건너 고산마총 옆 숲 속 사이길로 오르니 오솔길은 그런 대로 한적하고 정취가 있었다.
이름 모르는 상록활엽수가 사방에서 옥죄는 숲길을 오르는 길섶에는 섬마을 춘란이 푸른 잎사귀를 드리우고 앉아있었다. 바위가 길을 막은 바위 문을 열고 올라야 옥소대로 갈 수가 있었다. 한 10여분만에 옥소대 너럭바위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부황리 부용리 골짜기는 한마디로 요새 같기도 하고 선경 같기도 했다. 하늘은 서서히 구름장을 몰고 산 빛은 그 푸름을 그대로 비치고 저 아래 세연정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듯 한 폭의 그림으로 보였다. 그 시원한 눈 맛에 한동안 넋을 잃고 사색에 잠겨 그만 찾아온 보람과 나그네의 심사로 북바쳐 오르는 울음을 삼키느라고 겨우겨우 들고 온 책장만 들치며 들어오지 않는 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이 정경을 보러 수 백리 물길을 허위허위 물어물어 찾아왔었다. 저 산 위에 걸린 구름이 비가 내리더라도 저 하늘에 솟은 해가 바다로 다시 떨어지더라도 이 옥소대 바위에서 부용동과 이 섬의 상봉인 적자봉을 바라보며 시름과 풍류에 잠겼을 고산을 기억하고 있었다. 병자호란으로 임금은 청나라의 굴복하여 삼전도에서 굴욕을 당하였고 선배는 말을 잃어 낙향하여 시류를 탓할 때 인생지사 有한 듯 無하니 오로지 자연과 벗하여 세상을 살아갔을 선배의 뜻이 마음에 와 닿은 듯 옥소대는 일파만파의 아린 가슴을 씻어내기에 충분한 조망대였다. 세연정에서 활을 쏘면 이 곳 옥소대에 과녁을 걸어 깃발로 신호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장사도 아래 바닷길이 보이고 사이로 큰 바다가 엿보이는 산과 바다 골짜기가 한눈에 다 보이는 절경 중에 하나가 바로 옥소대였다.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이곳에 그 시간에 아무도 오지 않은 조용한 곳이었기에 더더욱 좋은 느낌을 받았다.

고산윤선도의 문화체험 공원에는 옛스런 맛은 없으나 잘 정리하여 오솔길이며 시비를 걸어둔 어부사시사 40수가 산책로 따랄 한 수씩 한 수씩 마흔 편을 적어 세워두었다. 송죽과 수석이 어울리도록 조경을 한 흔적이 보였고 파 놓은 연못엔 물이 말라 인공의 한계를 보는 듯하였다.
1637년 41세의 나이로 고산은 부용동에 들어와 산세의 가경에 매혹되어 낙서재를 짓고 세연정을 세워서 1651년(65세)에 어부사시사 춘하추동 40수를 창작하였다.
한 10여분 차를 타고 골짜기로 오르니 낙서재터 가는 길이 오른편으로 이정표와 함께 나왔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타고 한 5분만 오르면 바로 산 아래가 낙서재터 입구이다. 차를 붙이고 50여 미터 숲 속으로 들어가면 산과 나무만 울창한 곳이 바로 낙서재가 있었던 곳이다. 낙서재는 북향으로 집을 짓고 여기서 살았다. 뒷산 쪽으로 무민당을 지어 잠을 잤으며 옆에 연못도 파고 연꽃을 심었으며 집 뒤에 올라서니 소은병이라는 바위가 나왔다. 바위에 앉아 흩어지게 피어있는 동백꽃을 보니 푸른 잎사귀에 붉은 꽃잎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 우리 집에는 다른 꽃나무는 다 심어도 푸른 잎에 붉은 꽃 피는 동백은 아니 심으리라고 했으나 이렇게 야생으로 자라는 동백은 또 다른 맛을 보게 하는구나. 낙서재도 무민당도 다 허물어지고 남은 것은 바위덩이 하나 소은병 바위 위에 앉으니 숲 속에 잠긴 듯하다.
밀림 같은 숲의 바위에는 낙엽이 쌓였다. 나는 낙엽을 조금 치우고 바위에 퍼지고 앉았다. 쓰러진 고목의 뿌리에는 와편이 붙어 나왔다. 와편을 살살 털고 새겨진 글을 보아도 알 수는 없고 그 시절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세월은 4백년 전으로 돌아가서 윤선생님과 한 자리에 앉아서 숨쉬는 기분이었다.
다만 수백년 세월을 건너온 저 푸른 나무들만 살아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려하나 미천하고 미물 같은 우리 인간이 어찌 자연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있단 밀인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들 또 적혀있다고 다 그 뜻을 아는 것도 아니고 숲 속에 한동안 배회하다 적자봉 오르는 등산로에서 적자봉만 바라보고 발길을 돌렸다. 이제 우리는 저 건너 산 위에 앉아있는 동천석실로 올라갈 참이었다. 여기서 이 낙서재터를 다시 한번 이야기하면 이곳이 바로 저 적자봉에서 흘러온 기운이 다 모이는 혈맥이 앉은 곳이란다.

동천석실 오르는 입구는 낙서재터 앞개울을 건너 안산 아래에 있었다. 비포장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밭들이 산아래 골짜기로 펼쳐있고 밭둑이며 도로 가에는 오래된 고목의 동백나무가 가로수로 늘어서 있었다.
이 오월까지 동백은 꽃송이를 달고 있었다. 도로에서 내려 하천바닥을 건너 마치 물이 말라 건너기에 전혀 불편이 없었다.
산길을 20여분 오르면 동천석실에 도착할 수가 있다. 오르는 길은 약간 경사가 심하나 숲길이고 자연 계단이 있어 그다지 어려운 산행길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여름이라도 숲이 좋으니 여유롭게 올라간다면 좋은 산책로가 될 것이다.
이곳은 고산이 차를 끊여 마시면서 시심을 모으고 사색을 하는 혼자의 도장이기도 하다.
동천이란 산천이 두루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도 되고, 신선이 사는 곳도 되며, 하늘로 통한다는 뜻도 된다. 고산은 이곳을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했다. 그리고 해 저물녘에 차를 끊이는 연기가 선경처럼 보였다하여 석실모연이라고도 불렀다. 어찌되었거나 우리는 석담과 석폭을 지나 석문으로 들어서니 석실이라는 나무집 정자가 나왔다. 여기의 이 정자는 별것이 아니고 좋은 것은 여기서 내려다보는 건너 산 적자봉과 그 산세를 아울러 바라보는 것이요, 그 아래의 부용동 일대를 한눈에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석대에 올라 발아래 눈 아래의 연꽃의 꽃심이라는 造山과 부용동 그리고 낙서재터를 바라보며, 날이 어찌 비가 오려나하는 흐린 주점이 아니라 흐린 동천석실에 기러기 한 마리처럼 오뚝하게 앉아있었다.
이쪽 저쪽 산 속을 헤매어 들어가 보아도 별로 볼만한 그림을 발견하지 못하고 석축을 쌓고 석담을 쌓은 흔적만 눈여겨보았다. 산길을 되돌아 내려오니 시간은 어느덧 2시경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하니 하늘은 때맞추어 빗방울을 흘린다.
도로에 마치 다리가 있어 우린 다리 아래 굴다리로 들어가서 비도 피하면서 불을 피워 준비해온 돼지 삽겹살을 구웠다.

여행 중에 이런 식도락도 재미 중에 하나이다. 우리가 무슨 수도승도 아니고 자연주의자 채식주의자 동물 애호가도 아니니 그렇다고 길가에서 군중 속에서 벌려놓고 먹는 음식도 아니고 하니 조용히 터널 같은 큰 다리발 사이에서 할머니께서 싸주신 음심으로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다른 관광객들도 우리 옆 다리발 아래서 벌려놓고 점심을 먹었다. 비가 얼마나 올려나 그렇다고 우리가 여정을 변경하거나 일정을 조정하는 그런 조사모사도 아니고 비 맞고 산행 다닌 비와 여행과 산행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니 마음씀이 한가지라 고민이 없어 좋았다. 우린 희끗희끗 나리는 비를 맞고 부용동 골짜기로 올라서 남쪽 해안인 보옥리 뽀족산으로 가기로 했었다.
그러나 그 골짜기로 넘어서 가는 자동차 도로는 상수도용 저수지 아래서 끊어졌다. 그래서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가다 동천다려라는 전통찻집에 들렀다.

부용동 동천에 비가 내린다.
송죽도 푸른
푸른 산에도 푸른 비가 내린다.
동천다려 뜰에도 내리는 푸른 봄비
하늘도 고요하고 사람도 조용한데
할 일없는 길손은
진종일 내리는 비속에 머문다.
찻집 분위기는 그만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부용동 산자락에 초가로 지은 다려의 정원에는 봄꽃이 피었고 갯가에서 들어온 수석이 다려와 좋은 연출을 하고 있었다. 집 주위로 섬돌들이 마치 조경해 둔 모양으로 앉았는데 바위 아래로 고목이 된 동백이 가부좌를 틀고 기풍 좋게 앉아있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지천으로 늘린 게 동백나무였다. 다실에는 서너 개의 앉은뱅이 상에 여러 권의 문학서적과 여행서적 그리고 방문객이 글을 남기는 방문록이 한지에 책으로 묶여있었다. 박노해씨의 방문록과 그의 시 몇 편도 같이 놓여있었다. 나는 음악이 비에 젖어 흘러나오는 동천다려에서 흐른 하늘을 바라보며 시 한자 적어주고 세작 한잔 마시고 나왔다.

오 월

산도 푸르고
바다도 푸른
청별리 동천에서

산 안개 걸려 우는
부용리를 걸어본다.

붉은 동백 꽃잎 지는
봄비 맞은 나그네

천년 세월 살아온
고산의 넋이로다

동천다려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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