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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신동집
목숨은 때 묻었나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 광년의 현암(玄暗)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砲煙)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에 젖어든 이름들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하라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 많은 시공(時空)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는 살아서 돌아오라.
신 동 집
(1924 - ) 경북 대구 출생. 1951년 서울대 정치과 졸업. 1959년 미국 인디애나대 수학. 1948년 습작시집 『대낮』을 간행하면서부터 작품활동을 시작. 영남대 교수(1955-1969), 계명대 교수(1970-1986)·동대학교 외국어대학장(1982-1985) 역임. 아시아 자유문학상(1960), 한국현대시인상(1980),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81) 등을 수상. 그가 추구하는 것은 주로 인간·존재·자연·자유였다. 특히 1970년대 초반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초기에 보인 형이상적 시에서 흄·파운드를 거쳐 엘리어트에 이른 모더니즘적 경향을 보이면서 서정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사물의 내용적 의미의 탐구에도 경주했다. 근자에는 동양적 관조의 철학시를 시도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제2의 서시(序詩)』(한국출판사, 1958), 『모순의 물』(영웅출판사, 1960), 『들끓는 모음(母音)』(신구문화사, 1965), 『빈 콜라병』(형설출판사, 1970), 『새벽녘의 사랑』(형설출판사, 1970), 『송신(送信)』(학문사, 1973), 『암호』(학문사, 1977), 『장기판』(문학예술사, 1980), 『진혼(鎭魂)·반격(反擊)』(일지사, 1981), 『신동집시전집』(영학출판사, 1984), 『송별』(문학세계사, 1986), 『누가 묻거든』(종로서적, 1989) 등이 있다.
[해설: 조남현]
전쟁은 어떤 명분의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하나이다. 그것은 인간에게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함부로 앗아가기도 하고 또한 그 생명을 왜곡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전쟁은 고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또한 인간으로 하여금 생에의 강렬한 애착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선 생명에 대한 애착은 2연의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에서 강렬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한 애착은 `너와 함께 살고 싶다'는 공동체 의식과 `죽음보다는 그래도 살아서 그리운 것'이 되고 싶다는 심리와 맞물려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단지 존재하고 있었던 그대로의 목숨이 아니라 하나의 별빛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소중한 생명인 것이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4연에서는 죽은 자에 대한 그리움도 짙게 배어 나타나는 데 포연의 추억 속에서 사라진 이름들을, 따뜻이 체온에 젖어든 이름들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들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그러한 그리움들은 마지막 연에서처럼 부활 의식을 통해서, 즉 살아서 돌아오라는 기원 속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전쟁의 직접적인 현장에서, 혹은 추억 속에서 전쟁이 가져다 준 비극성 생명에 대한 애착과 죽은 자에 대한 향수를 통해서 설득력 있게 고발하고 있다. `산 자'라고 하지 않고 `살은 자'라고 한 것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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