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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저금 통장
엄마에겐 엄마 이름으로 되어 있는 세 개의 저금통장이 있다. 하나는 이백반원이 들어 있는 보통 예금 통장이고 .
또 다른 하나는 팔백만원이 들어 있는 정기적금 통장이고 나머지 하나는 정부에서 버스표 대신 주는 교통비(3개월에 36.000원)가 나오는 통장이 바로 그것이다.
교통비가 나오는 통장이야 오빠네 집 주소로 주민등록이 되어 있으니 올케도 알고 있겠으나 나머지 두 개의 통장은 아마 아무도 모를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며칠 전부터 엄마는 그 두 개의 통장을 내게 주시고 싶어하셨지만 그 말씀이 나오려고 하면 내가 말을 가로 막는 바람에 아직 엄마의 가방속 깊숙히 들어 있다.
사실 자식들이 다섯이나 되지만 정기적으로 엄마에게 용돈을 드린 것이 아니라서 엄마에게 그리 큰 돈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못 할 것이다.
요즘 엄마의 건강 상태가 많이 안좋아지셔서 그런지 엄마는 부쩍 마음을 안정치 못하시고 많이 조급해 하신다. 물론 연세가 많으시기도 하지만 기력도 그만큼 쇠약해지셨기 때문이기에 이세상에 계실 날이 얼마 안남았으리라 생각하시나보다.
오늘은 엄마가 지난 주에 검사해 놓으신 결과를 보기 위해 병원을 다녀왔다.늘 감기가 들곤 하시는 엄마가 좀 이상해서 이것저것 기본적인 검사를 해보았는데 해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는데...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폐가 많이 안좋으시단다. 엑스레이 사진을 전문가가 아닌 내가 육안으로 봐도 허연 부분이 많은 게 심상치가 않았다. 가정 의학과 전문의인 담당의사는 노인성 폐렴으로 폐에 염증이 무척 심하다고 하며 가급적이면 입원치료를 권했다. 그냥 감기 정도로 생각했기에 진행이 많이 되었나보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는 입원이 되지않아 큰 병원으로 가야하므로 일단 며칠간 통원치료를 하기로 했다.
엄마를 모시고 가지 않아서 일단 항생제가 들어 있는 약을 받아서 집으로 황급히 돌아오니 엄마가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계셨다.
자세한 말씀을 듣고는 또 버릇처럼 어서 죽어야지를 연발하셨지만 아마 속마음이야 어디 그러고 싶으시랴.
약을 드시고 입가심으로 드린 사탕을 하나 입에 넣어드렸더니 엄마가 비닐봉지에 몇번이나 싸고 동여 맨 꾸러미를 내게 건네셨다.
비닐봉지 안에는 저금통장 두 개가 들어있었다.
"이거 네가 갖고 있다가 나 죽거든 찾아서 쓰거라..."
"아이고 엄마는 그 돈이 없어서 장례 못치를까봐 그러세요?"
"아니다, 나중에 혹시 내가 정신이 없어서 어디 넣어 둔지도 모를지도 모르니 미리 네게 주는거란다. 행여 언니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말고..."
몇번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결국 엄마는 이백만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내게 주시며 그것만이라도 들어있는 돈을 모두 찾아오라고 하셨다. 당장 찾아 오라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찾아다 드리니 엄마는 그 돈을 내게 모두 주시며 사위에게 오십만원을 주라고 하신다. 아마 사위에게 용돈을 주고 싶으신가보다.
가끔씩 지나다 들르는 사촌이나 손주손녀가 드리는 이삼만원의 용돈도 아끼고 모으신 엄마의 돈은 어느 부잣집 마나님의 용돈보다 더 크고 귀한 돈이다.
이백만원..엄마가 그 돈을 어떻게 모으신 줄 알고도 남음이 있기에 나는 장보러 나가는 척 슬그머니 농협으로 나가서 다시 엄마통장으로 예금을 했다
65년 전 결혼 하실때 새기신 대추나무로 만든 목도장이랑 엄마가 행여 잊으실까봐 통장 맨앞페이지에 적어 놓으신 전화번호로된 비밀번호가 선명한 엄마의 통장을 성경책을 넣고 다니시는 엄마의 낡은 가방 속에 슬그머니 넣어두었다.
바람은 여전히 봄바람인데 왜 어쩌자고 엄마는... 젊은 나의 엄마가 아닐까...?
-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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