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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알고 지냈던 시인이 한 명 있다.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그런 유명한 시인이진 않지만, 먼지가 폴폴 쌓였을망정 서점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그런 시집의 주인이진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시인이 있다.
시인은 항상 나에게 말하곤 했다.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은 영원한 시인이라고, 그리고 시인은 말하곤 했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고 자신은 단지 시를 노래할 뿐이라고... 시인은 항상 나에게 말하곤 했다. 노래하라고 시를 읽지 말고, 시를 쓰지 말고 노래하라고,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시를 노래하라고, 시인의 그 거룩한 손에서 절대 펜을 놓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시를 쓰지 않는 걸요"란 나의 말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기 이전에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시인이란 이름을 받기를 꺼렸고 그에 그는 나를 그저 사람이라고 불렀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하단 의미의 사람이라 불렀다.
시인은 항상 작은 노트와 펜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시인은 모든 하늘을 사랑했다. 우울한 하늘을 사랑했고 밝은 하늘을 사랑했고 울고있는 하늘을 사랑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시를 노래해 주길 부탁하곤 했고 카페의 한 켠에 따뜻한 음악과 따뜻한 커피의 선율이 흐를 때면 그의 시는 나의 입에서 그의 가슴으로 퍼져 나갔고 그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시인은 말하곤 했다. 자신의 시는 형편없는 시라고, 하지만 적어도 그 시는 자신의 가슴을 한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한다고, 다른 여타의 유명한 시인들의 시처럼 어떤 심오한 뜻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유명한 시인들이 시처럼 멋진 기교가 숨어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할 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의 가슴만은 한없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해준다고... 시인은 그게 진정한 시라고 말했다. 시 안에 자신이 아닌 이야기를 쉽게 알 수 없는 심오한 뜻과 하려한 기교로 포장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먼저 스스로에게 인정받지 못한 시는 그 누가 격찬을 하더라도 진정한 시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스스로가 틀렸던 점이라고도 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는 삶의 여유를 가진, 삶을 즐기는 여유를 가진 시인이라고, 세상에 찌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는 다시는 시인을 만나 볼 수가 없었다. 언젠가 그가 예언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시인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았다. 시인도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었기에 나와 같은 레디메이드의 하나였기에 시인은 바쁘게 돌아가는 쳇바퀴 안에서 쉴새 없이 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쓰는 그 거룩한 손에서 펜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인은 죽어버렸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린 시인과의 만남에서 우리는 시나 문학에 대한 이야기 대신 최근의 일어난 핫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와 스스로의 사소한 이야기들만을 그 옛날처럼 노래하고 있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낡은 기억 속 사람들은 모두가 시인이었다. 기타하나만을 매고 떠나는 기차여행도 즐거웠고, 기타와 음악만 있다면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기타를 메고 홀로 떠나는 여행 속에서 그들은 모두가 고독한 시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독한 시인의 시를 한 아름 안아올 수도 있었다. 가난했던 그 때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누군가가 책 한 권을 사면 그 책은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갔다. 유명한 소설의 명언이나 아름다운 시의 시구를 가슴에 품어두기도 하였고 아름다운 시는 어느새 노트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때 그 사람들은 시를 노래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분석하고 뜯어보는 시의 머리가 있지만 적어도 그때는 여린 감성으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가 있었고 시를 노래할 가슴이 있었다. 이제는 그때보다 살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순수했던 그때에 대한 추억의 연민일까?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아직도 살아있는데 왜 나의 기억 속 어린 왕자들은 하나둘 죽어 가는지...
To. 이젠 추억이 된 나의 시인들
from the 4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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