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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먹는 밥
이국헌
오늘도 새벽 공기를 마시며 종일 공사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 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정적이 오늘 따라 유별나다.
큰 아이가 식탁 위에 메모지를 남겼다.
“아버지! 생신 축하 해유~”
밥 대신 케이크라도 굶주린 배를 체울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 먹어서가 아니라 오늘은 가족과 함께 촛불이라도 켜 보고 싶었다.
케이크를 식탁 한편으로 놓았다.
오늘은 밥이 그리운 게다. 왠지 귀가 빠진 터라 더욱 적적도 하고 아무나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랄 뿐이었다.
내 일상이 그렇듯 아침 일찍 일어나 새벽밥은 대충 지나간 다지만은 저녁밥은 꼭 챙겨 먹어야 되겠기에 밥상을 챙겨 봤다.
문득 보온밥통을 본다. 밥통 주변에 상처가 몇 군데 나있다. 마치 한대 맞은 듯 쥐방울만하게 들어 간게 보이고 또는 발길로 체인 흔적들도 보인다. 사실은 내가 범인이다. 이유가 밥 사랑이기 때문이다. 밥통에 밥이 없을 때 쌀통에 쌀이 없을 때나 냉장고에 음식류가 없을 때는 누구든 그 물리적 힘으로 문짝이나 뚜껑이나 미안하지만 냅다 닺는 사실 아시려나 모르겠다. 인도의 무폭력 저항 주의 간디도 그랬을 것 같다. 부처님도 그래서 그럴까 목탁을 날리시는 거 보면 세상이 요요하다.
해서는, 온전한 밥통이 오늘 따라 생뚱맞게 바라 본 것 같다. 그 눈빛은 아내의 눈빛이 분명하다. 아침에 그냥 갔다는 걸가? 언제는 밥통을 열어 보면 밥이 들어 있지 않았는데 평시 그러려니 했지 일부러 그냥 지나치진 않았다. 늘 굶고 나가는 일터인데 하룬들 대수랴. 어쩠든 밥통 속에 밥이 조금은 말라 보였다. 아침에 해놓은 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전날 밤에 밥을 해 놓은 것인데 그래도 좋았다. 아무렴 어떠리. 밥통의 멀리 쓰다듬고 성질 머리 죽이듯 두어 주걱 앙팡지게 폈다.
밥솥 주위에 눌러 붙은 밥알이 오늘은 모두 임자 만난 듯하다.
밥주걱으로 닦달을 해 가며 그것마저 훑었다.
밥은 폈으나, 식탁이 훵하다.
언 듯 냉장고를 둘러본다, 아 이런 냉장고 안은 언제나 가득이다. 재고 정리가 안 된 듯 언제나 빵빵하다.
그러나 수색을 감행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먹을 것은 어디엔들 보이지 않는다.
상단 하단 찾아 봐도 먹다 남은 김치 쪼가리들 마른 멸치 그리고 쪼그라진 양파 몇 조각 싱싱해 보였던 풋 고추도 폭 골았다.
내안의 뱃속 같은 것과 다름없는 이것들을 오늘은 고추장에 비벼서 그리고 소주 한잔에 속을 덥히는 수밖에 별 도리는 없다.
언 듯 라면 봉지 속을 들여다보니 스프 하나 덜렁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냄비에 물 두어 컵 그리고 자글자글 끓여 본다.
멸치도 넣고 양파 몇 조각 넣고 골은 풋고추 가장 자리 때어 내고 격식은 내장 끓여 보듯이 몇 분 만에 얼큰한 소주 안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수저통에 사람 수대로 누워있는 놈 하나 일으키고 그리고 나란히 나란히 종알거린 놈 대려다 밥상 위에 앉힌다.
허나 격식은 있어야 한다기에 다시금 냉장고를 열어 본다.
내가 찾는 것은 당연히 소주다.
아, 있다. 그러나 언젠가 마셨던 김빠진 소주
어차피 오늘은 김빠진 만찬이잖은가 그것도 최후의 만찬이 되리니
녀석 차갑긴 하다. 소주잔 건네고 독배로 쭈욱 목을 타고 넘어 간다.
아, 내 혈흔처럼 식어간 소주…….가 아니다. 이건 식초였나 보다. 아니 식초였다. 하필 식초가 왜?
그렇잖아도 눈물 글썽거리는데 잘 되었다. 시큰둥 거리는 눈시울 누가 머라 했나 난감했다.
마침 이명처럼 들리는 그 무엇과 어린 시절 어머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해질 무렵까지 동네 아이들과 저녁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놀 때는 어머님 목소리는 동네 어귀까지 들렸다.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들렸던 밥 먹자라는 소리가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논두렁에 메어 놓은 염소 새끼들도 그 때만은 알아차린 듯이 음메에에에~ 음메에에 집으로 총총 찾아 가고 해질 무렵 마을 어귀에서 들려오는 자식새끼들 찾는 소리들도 귓가에 젖어 오는 데 지금 나는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다. 아니다.
밥 같은 구수한 소리가 또렷이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들리는 것은 신세타령만이 아니다.
막동아~ 밥 먹어라이~ 언능 오거라~ 그 소리들이 산동네를 휘감는 것이 가을 전령 소리처럼 그리운 것은 진정 나뿐만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도 염소 쌔기 같고 우리 새끼들도 염소 새끼 같은 데 제마다 꼬랑지 흔들고 집 찾아 가는 것 보면 신통방통한 즐거운 밥이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시대의 핵 가족의 염소 새끼나 망아지 새끼들은 여운조차 기침조차 없는 제각기 밥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거 참으로 어울릴 수 없는 가족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신통은 방통도 못되는 모가 네모난 식탁 위 흉한 그림자 위로 유년 시절이 떠오르는 것이다.
밥 때만 되면 눈앞이 삼삼하게 떠오른 것은 소탈하게 모인 식구들의 환한 모습이란 것이다.
두레 밥상이 좁아 여섯 식구들이 모여 앉으면 팔금치가 서로 부딪친다. 형제들은 서로 불편을 주지 않으려 조금씩 좁혀 앉아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때 만 해도 조금은 성장 했다는 것인데 고만고만했던 시절엔 힐끗 힐끗 쳐다보며 티걱티걱 했지 않는가.
하루 일을 마치고 온 가족이 모여 않았던 두레밥상에는 밉상도 아니고 울상도 아니고 모두를 받아 주신 밥상은 고향 맛이고 어머님의 자식 사랑하시는 고운 마음인 게다.
아직도 생전의 모습이 떠오르는 어머니의 자식새끼 아우르시는 모습은 식초로 넘어간 탓은 아니다. 혹은 부딪힘 속에서 따듯한 정이 더욱 그립다는 것이다
그래그래, 자자~~ 하면서 어머님께서 밥상에 조금 떨어져서 밥을 드시는 그런 사랑이 지금 내 앞의 식탁에서 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추억도 추억이지만은 매우 시큰둥하다.
식초 한잔에 어머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메아리치기 때문이다.
혼자 먹는 밥상을 치우고 빈 그릇을 닦았다. 내 안의 거품들이 물로 씻겨지고 그릇과 그릇 사이에 미세한 부딪힘이 삶의 소리처럼 들린다.
숟가락도 닦고 행주도 말끔히 씻어서 건조대에 널었다.
식탁 위 덩그러니 놓인 케이크를 뒤로 하고 오늘은 가족을 위해 취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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