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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나와서 늘 깊고 넓은 창공으로 사라져 간다. 그 하늘에선 하얀 눈이 대지를 뒤 덮으면 그리움도 또 눈을 타고 땅으로 내려와 눈과같이 스러져 사라질 것이다. 가을꽃들도 마찬가지이다.
유난히 갈꽃은 꽃 색깔도 개성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봄꽃은 노랑꽃에 가깝고 여름은 힌색계통과 원색에 가깝고 단색이 많은데 비해 가을꽃은 아기자기한 자기색을 내고 있다. 구절초나 쑥부쟁이는 하얗거나 연한 자주빛을 그리고 황국등은 파스텔톤의 노랑색 계열이 있는가 하며, 상사화(석산)같이 현란한 붉은 정열을 농염하게 노출하는 분위기의 꽃도 있다. 코스모스는 또 어떤가? 같은곳에서도 여러 빛깔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대부분 현란하지는 않다. 수수하며 한국적이고 은은하게 내 뿜는 연한 향내도 기가 막히다. 동양 여인네 같은 분위기가 풍기지 않는가?
야생화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바라보는 그들은 바라보는데로 나에게 관심을 주었고 알은척을 해 주었다. 인디언 썸머같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 당당하게 서 있었는가 하면, 가을바람에도 눈웃음치며 흔들어주는데로 조금씩 간들거려 주기도 한다. 또 카메라를 들어대면 렌즈속에서 가벼운 속삭임까지....
난 이래서 가을꽃을 사랑한다.
-남촌생각-
-메밀꽃 무렵은 늘 설래이게 한다. 안개꽃같이 작은 꽃 알갱이가 앙증맞기까지 하는데-
-싸리꽃이 이렇게 영롱하게 빛깔 고운 새악시처럼 다가오고-
-이름은 모른다. 단지 꽃잎에 삐져나온 수술들이 내 연인의 속눈섭같이 생겼다는 것 밖에-
천관산 정상에서 억쇠와 눈쌈질하고 있는 너의 정체는??-
-이리도 곱고 화사하니 꽃과 잎이 만날 수 있겠어요? 온 산을 불태우며 그 정열을 토하고 있는 꽃무릇(석산-지역에 따라서 상사화라고도 함)-
상 사 화
-유영관-
1.
긴 눈썹 치켜 올리고
짧게 지나가는 가을바람에도
바르르 떨며 마음 아파했다.
음지에 감추어 둔다 해도
너의 화사한 얼굴이 가리워 지겠는가마는
오손도손 모여있는 꽃무더기는
영락없이 연지곤지 찍은 새악시 같더라.
2.
사모하는 마음이
붉디 붉은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고
외팔로 하늘을 쳐올려 외쳐보아도
이룰 수 없는 숨박꼭질 인연이여!
갈수록 깊어가는 정을 부여안고
내 사랑을 애원하건만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만
아리하게 살결을 뚫고, 폐부로 밀려온다.
-구절초 너의 이름만치 소박하고 깨끗하구나. 어느 뉘가 감히 소박한 너의 마음을 훔칠꼬?-
-천관산 음지 숲에 자주빛 푸른꿈을 꾸고 있는 당신은 뉘시요?-
-접사 필터에 잡힌 노오란 꽃술이 보이락 말락하니, 흔히 지나치기 쉬운 너의 자태를 한번이라도 만질기척을 보이면 우수수 그 정절 간직하며 스러져 가는구나-
-계절을 잊어버린 참취꽃에 노닐다 그 또한 가는 계절을 잃어버린 꿀벌이 보기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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