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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소란을 피우던 여름이 자리 걷이를하고 떠날 채비를 한다.
그리고 가을은 성큼 냉정하게 닥아선다.
하늘은 차가운 푸른색으로 점점 더 높아 가지만 상록수의 고장인 와싱톤주의 그 짙은 초록색 으로 인해 가을의 낌새를 쉽게 채릴수가 없다.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인 초록은 계절의 바뀜에 상관없이 침잠(沈潛)해 있다.
푸른 하늘이 짙어 갈수록 노랑색 국화꽃이 눈에 돋보이는 이유도 사시사철 우리의 시야에 머물러 있는 초록색 때문인것 같다.
노란색은 따사로운 햇살의 촉감을 주고 평온한 사색의 분위기를 자아 낸다.
그래서 많은 가을꽃들 중에도 노랑색 국화는 가을의 향기를 물씬하게 풍기는 꽃이다.
일주일 중에 가장 좋은 날은 토요일 이다.
일요일이 있어 느긋한 여유를 주는 토요일은 참 좋은 날이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친구를 찿아가도 좋고 친구가 찿아와도 좋다.
더우기 어떤 친구가 노랑색 국화를 한다발 안고 찿아온다면 정말 기쁜날이 된다.
그리고 그 국화꽃을 안은 친구가 윤기가 잘잘 흐르는 깜장머리를 길게 느리고 아주 눈처럼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수즙음 없이 웃는 훤칠한 여인이면 황홀한 토요일이 된다.
노랑 국화를 화분째 가슴에 안고 찿아온 여인은 와싱톤주에 가을이 왔음을 최초로 알려준 젊은 친구다.
말을 입으로만 하지 않고 노랑색 언어로 가을을 말해주는 그 친구는 썰렁해 지려는 토요일 오후를 따사한 햇살로 덥혀 주었다.
새침떼기가 아닌 그녀는 대화의 창문을 활짝 열어 재킨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진실을 그리려고 애썼던 그녀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뒷머리를 굴리는 일을 싫어 한다고 했다.
미국생활이 5 년도 체 않된다는데 교포사회의 이모저모를 퍽이나 많이 알고 판단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에 한 조그마한 시골 같은 교포사회가 서울의 어느뒷골목 처럼 소란스러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곳 한인 사회에는 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찿기 어려우냐고 했다.
신문이나 사람들의 모임에 미담(美談)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안타까워 한다.
그녀가 안고온 국화는 백송이도 훨씬 넘는다.
그중 반쯤은 이미 활짝 피었고 반쯤은 아직 꽃망울인 체다.
우리들의 삶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없는것이 아니리라.
그 이야기들은 국화의 꽃망울처럼 더 깊은 가을을 기다릴 뿐이리라.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땅속에 지하수 처럼 묵묵히 흐르다가 목마른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에 찬샘물 처럼 솟아날 것이리라.
진정 아름다운 우리들의 이야기는 떠들석한 세상을 싫어 하기 때문에 신문이나 사람들의 입줄에 오르 내리는것을 원치 않을 뿐이다.
불법(佛法)에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는 가르침이 있는데 남에게 베풀때 삼륜(三輪) 즉 베푸는사람, 받는사람, 베푸는물건에 집착함이 없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우리들의 삶속에서 삼륜청정으로 이루어 지는 많은 아름다운 일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라고 일러주고 싶다.
그러면서도 국화의 꽃망울들이 활짝 피는날 우리 한인교포사회에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함께 피어나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올 가을은 그녀가 갖고온 노랑색 으로 온통 물 들이련다.
그리고 내년봄 쯤에 아니 늦어도 가을쯤에는 그녀가 좋은 신랑감을 만나 화촉을 밝힐때 꽃을 한아름 안켜 주고 싶다.
노랑색 언어로 가을을 말하는 매력있는 여인에게 결혼 할수있는 애인이 꼭 생기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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