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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문답(顔面問答)
본래 사람 얼굴위에 자리 잡고 있는 눈썹, 눈, 코, 입은 제 할
구실이 따로 있게 마련으로 그것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도와
서 얼굴의 구성이 이루어지고 사람의 활동이 유지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입이 코를 보고 말했다.
“이 세상에 질서로 따지면 공이 많은 자가 윗자리에 앉고,
무능한 자가 낮은 자리에 앉게 마련이다. 코, 너는 무엇을
한 게 있다고 나보다 높은 자리에 떡 버티고 앉아 있는 거냐?”
“입, 너는 모르는 소리 그만해라. 내가 먼저 향기로운 것과
구린 것 등을 냄새로 맡아 분간한 연후에 너에게 먹도록 넘겨
주는 게 아니냐. 그러니 네 윗자리에 앉은 것은 마땅하고도 남
음이 있다. 그것보다도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나 한 번 들어
들어보자꾸나.”
“그래, 내가 하는 일을 일러 줄 테니 들어 보아라. 우선 누구
나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을 거치지 않고는 뜻을
전달하지 못한다. 그 것 뿐이랴, 책을 읽고 음식을 먹는 일도
입이 맡아 하고, 신에게 기원하는 말씀을 드리는 것도 입이 아니
면 못 하는 일이 아니야?”
“그렇다고 하고, 너는 그러면 콧구멍이 할 일 없이 생겨 있는
줄 아느냐? 냄새를 맡아 좋고 나쁜 것을 가려내는 일이 코가 하
는 일이고, 사람의 얼굴 가운데 우뚝 솟아 전체의 균형을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위엄도 세운다. 또 콧구멍이 막혀 바람이 통하지
않으면 이야기고 글 읽기고 간에 하나도 될 것이 없다.”
코는 또 눈을 보고 물었다.
“눈, 너는 무엇 때문에 나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느냐?”
“나는 좋고 나쁜 것을 가려 보며, 이쪽 저쪽을 살필 수 있어
그 공이 적지 않으므로 네 위에 있는 것이다.”
입은 또 코와 눈을 보고 물었다.
“너희들의 이야기는 그렇다 하고 눈썹은 또 무엇이 잘났다고
귀 만큼 꼭대기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이냐?”
“우리들이 눈썹을 두고 시비를 따질 게 아니라 셋이 함께 가서
한 번 물어보자꾸나.”
입, 코, 눈 셋이 눈썹을 찾아가 따지고 물었다. 눈썹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두 눈썹이 할 일없이 맨 꼭대기에 붙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
하면 잘못이다. 옛날부터 나는 윗자리에 앉아 있도록 되어
있거니와, 만일 두 눈썹을 아래쪽으로 옮겨 놓고 보아라. 그 꼴이
어떻겠는가?”
“꽁무니를 빼는 듯한 소리는 그만 두어라. 우리가 너를 찾아 온
것은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를 따지러 온 것이지, 모양이
어쩌고 저쩌고를 따지러 온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입, 코, 눈, 눈썹은 서로 자기가 제일이라고
어울려 싸우기 시작하였다. 이 때 귀가 그들의 다투는 광경을 보고
싸움을 말리면서. “군자는 다투지 않는 법이다. 너희들은
그래도 앞쪽에나 붙어있지 않느냐? 내 신세를 보아라. 날 때부터
머리 양쪽에 붙어 별로 대접도 못 받는다. 위고 아래고 나도
앞으로나 붙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때가 있는데, 다같이 앞에
모여 있으면서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거냐?” 하고 제법 타이른 것이다.
*중국 청나라 말엽의 학자 유곡원(兪曲袁)이 쓴 안면문답(顔面問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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