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炭 은행나무 잎이 파르르 떤다 비 젖은 공원엔 비둘기 한 쌍이 낱알처럼 내어놓은 토시 같은 시자락을 콕콕 쪼아먹는 비둘기 머리 위로 바람이 가끔 불고 잎새 속에 향을 담은 열매가 빙그레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푸른 물방울 같다 가을이 오면 껍질 속에 담은 여름의 질긴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 게다. 땡빛에 질기도록 울어댔던 매미들의 이야기도 알알이 맺혀 있을 게다 은행나무 아래엔 버려둔 양심도 젖어 있다 누군가 버려둔 비닐 봉지가 깔깔대고 바람에 뒹군다 누군가 버려둔 신문이 점철된 이야기 속에서 떠들다가 제풀에 젖어 버린 듯이 비에 젖은 담배꽁초 옆에 이별 뒤에 짓이겨 있다 젖은 것만 보이는 공원의 나무들과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이 지친 몸살에 의자에 누워 있고, 잔디밭에도 누워 있다 빈자리가 많은 공원에서 어제의 이야기가 속살거린다 쉬어 갈 자리 빈자리에서 공원의 흔적들이 영상처럼 스칠 때 한 쌍의 비둘기가 시알의 모이로 채운 뒤 날아갔다. 은행나무 잎이 떨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