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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06. 29. 토 - 06. 30. 일
사는 동안 이틀(1편부터 10편까지)
1. 떠나기.
2. 붉은 악마.
3. 내가 산에 가야지.
4. 귀향.
1.
떠나기
결국 나는 산으로밖에 갈 곳이 없었다
산을 한동안 도외시하고 마치 어디에 빠진 사람처럼 얼빠져서 산 것 같았다.
그래 다시 산을 가자.
산이야말로 나를 보듬어 안아주고, 지친 심신을 치료해 주고, 아픔 마음을 달려주고, 거친 내 숨소리를 잠 재워 주고, 흔들리는 가슴을 붙잡아 줄 곳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결국 장마가 남해안에 상륙하여 오후부터 비를 내릴 것 같은 흐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산행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산행준비물..
참으로 중요한 사항이다마는 이미 숙달된 조교모양으로 내 차량 트렁크에는 배낭과 등산화 그리고 등산복들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일박이상을 산에서 잔다면 먹어야 할 식량만은 그 때마다 준비를 해야했다.
점심을 간단히 식당에서 먹을까하다 산행을 하면 기력이 소진할 진데 싶어 보신탕이나 한 그릇 먹고 가자싶어 갔더니 한여름 제철 만난 탕 집에는 손님이 가득하다. 허나 나처럼 혼자 와서 보신탕 한 그릇만 먹고 일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산에는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보신탕 먹느라고 앉아서 땀을 흘리었다. 시원하게 한 그릇을 맛나게 먹고는 대형슈퍼에서 라면과 햇반(끓는 물에 넣으면 흰쌀밥이 되는 간편한 밥) 그리고 양파 감자 참치캔과 소주를 사서 배낭에 넣으니 배낭 배도 내 배 마냥 한가득해져 기분이 좋았다만 하늘은 어찌 우중충충 비라고 한차례 내릴 기세로 장마 기운이 번져왔다.
일기예보도 남부지방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산에는 비가 오긴 올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흔들리는 마음이 생길 때에는 오직 우직한 마음과 초지일관 초발심으로 밀고 나가야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에, 이런 여름비는 산길을 걸으면서 맞는 것도 그렇게 잘못되는 일도 아니기에 나는 시외 버스 간이정류소가 있는 진주 개양으로 차를 몰고 갔었다.
개양 골목길 어디에 주차를 하고 하동 가는 버스를 기다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혼자 가는 여행이란 게 바로 이렇게 순간 생각에 거슬리는 것이 없기에 좋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간다는 결정은 내가 했지만 모든 주위의 상황이 나를 이끌고 갈 것이다. 차시간이 결국은 내가 도착하는 시간을 결정해 줄 것이고 내가 오늘 어디에서 잘 것인가도 결국은 시간과 여건이 인도할 것이니 나는 별로 계획을 세울 것도 없고 머리를 굴릴 일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미래는 흘러가는 작은 운명의 끈에 이끌리고 말 것이다.
하동 가는 버스에 올라서니 토요일 오후인지라 빈자리가 몇 없을 정도로 가득하였다. 식후 식곤증이 밀려오는지 사르르 낮잠이 밀려와서 눈을 감고 잠이 들라고 했는데 통로건너 아이가 심하게 울어대는데 젊은 새댁은 아이 울음보다 크게 아이를 채근하며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웬만하면 그냥 참고 갈려고 잠을 청하고 있는데 아이의 울음이 너무도 애절하여 곁눈으로 힐껀 보니 아이를 안고 흔들고 하는 품이 아이를 그냥 괴롭히는 모양이다. 새댁 옆에도 혼자 가는 젊은 아주머니가 앉아서 쳐다만 보고 있는데 부채를 들고 있었다. 나는 참으로 딱하여 곁에 앉은 아주머니보고 부채로 아이를 좀 시원하게 해 주어라도 청을 하자 설마 아이가 더워서 울게냐 싶은 심정이면서 부채는 열심히 부쳐주었다.
아이 울음소리를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았다. 나도 젊은 날 우리 아이들 집에서 키우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울면 난 참으로 난감했었다. 말을 못하는 아이는 결국 울음으로 자기를 표현하는데 키우는 부모는 왜 우는지 울 때마다 긴장하여 그 원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터득한 몇 가지 지혜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가 우는 이유는 대개 세 가지 정도의 이유를 갖고 있었다. 하나는 배가 고프면 운다. 이건 아주 달래기 쉽다. 우유를 먹이거나 젖을 물리면 된다. 헌데 젖을 물려도 계속 울면 젖이 부족하거나 양껏 젖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은 아프면 운다. 아이가 아파서 울면 참으로 딱하다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하고 어떻게 낫게 할지도 신출내기 아이 엄마로써는 황당한 일이다.하여간 경험 많은 할머니가 계시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는 잠이 오면 운다. 잠이 들기 전에 잠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잠이란 게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잘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자는 것이다. 잠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시원하고 편하고 조용하고 건드리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다.
이런 간단한 사유가 모두인데도 부모는 아이가 울 때마다 아이가 우는 이유를 모른 체 아이만 채근을 해 댄다. 울지 말라고 말이다. 울지 않을 조건을 만들어 주는 데는 인색하며.
조금 전까지 만도 잘 먹고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울어댄다는 아이 어머니의 투정을 듣고 보니 아이는 잠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부채를 부쳐주고 등을 두드려주니 아이는 금새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 졌다. 내가 이런 생각을 깨우치기까지는 아이 울음에 대한 나의 난감함과 그 애태움이 있었던 과거의 경험이 나에게는 가슴아픔이 되었기에 아직도 그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고 아이 울음에는 마치 내 아이가 울어대는 듯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 하는 내 작은 가슴 때문이기도 하다.
진교, 하동에서 진주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많은 모양이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태반이었는데 진교라는 작은 지방에 도착하니 승객은 반이나 내리고 버스는 바로 하동으로 떠났다. 하동, 섬진강과 송림과 재첩국이 유명한 고장. 섬진강을 따라 은어처럼 올라가니 하동 버스 정류장에 닿았다. 나는 구례가는 버스 시간을 챙겨보니 버스는 10분전에 떠났고 다음 버스는 4시 20분이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한시간 10분을 기다려야 했었다. 구례서 성삼재 가는 막 버스는 5시라고 정류장 벽에다 종이에 매직 글씨로 적혀 있었다. 4시 20분 버스를 타야하고 또 구례서 5시 성삼재 버스를 갈아타자면 구례까지 남은 시간은 40분이었다. 터미널 장의자에 널부르지게 다리를 뻗고 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선잠을 잔 탓인지 목이 말랐다. 이온 캔 음료를 하나 뽑아서 마시며 또 존다. 오직 졸거나 머리를 비우거나가 나의 전부인양. 그래 승용차를 두고 나서니 이처럼 머리를 비울 수가 있구나 그리고 눈도 이처럼 마음껏 쉬게 할 수가 있구나. 차를 버리는 일도 삶을 살 찌개 하는 방안이구나. 가능한 차를 버리고 살아보자! 버스가 한 대 밀려들어오는 것이 정류장 창가로 비쳐 보였다. 악양, 쌍계사. 그럼 저 차는 화개를 지나갈 것이다. 혹시 화개 가서 구례가는 버스를 먼저 탈수도 있을 것이고 혹시 구례까지 가는 승용차가 태워줄지도 일단 가는 길목인 화개까지 먼저 가서 기다리자!
나는 매표소에서 화개표를 끊었다. 악양은 예나 지금이나 이름난 고을이었다. 섬진강 허리를 더듬어 오르다 배 밭이랑 한자락 한자락씩 오지랖에 싸안고는 보랏빛 자운영이 봄날 한철에 피고진 자리에는 철늦은 개망초가 흩어지게 피었다. 이제는 그 섬진강도 버리고 머리를 지리산자락으로 돌려 큰 들머리를 골짜기에다 박고는 밀고 들어서면 하동땅 악양 평사리 최참판댁 주인공인 서희 아씨가 살았다는 고을로 간다. 골짜기가 얼마나 너르고 큰지 한번 들어가면 한철은 먹고살아야 나올 듯, 나는 지난 여름 언젠가 악양 어디 명당이 있나 싶어 골짜기 마지막 마을인 중기, 덕기까지 차로 올라서도 마음이 안차서 마침내 차를 골짜기 마지막 비포장 도로에 세워두고 산길을 타고 회남재까지 걸어서 올라간 적이 있었다. 회남재까지 한시간 남지 걸어 올라가니 산너머로 산들이 첩첩이 싸이고 그 산 속에 아름다운 산 마을이 보였다. 이토록 산을 넘어 재에 올랐으면 고을이나 들이 나와야지 또 산이 나오고 산 가운데 마을이 있다니 하도 신기하고 기특하여 이 방향에서 잡아보고 저 방향에서 훌트봐도 아는 마을 같지 않고 내가 그 동안 그렇게도 열심히 아니 가본 곳이 없는 지리산 골골 산산에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하여 지형을 살펴보니 아, 여기가 바로 저 유명한 청학동 산자락이 아니던가 그 청학동중에서도 가장 마을 생김이 뛰어난 곳이 바로 묵계중에 원묵계라 그러면 저 곳이 저 산줄기가 내가 지난번에 낙남정맥 종주를 하던 그 봄날 걸어갔던 길이구만 싶어 반갑기도 하고 반하기도 하였던 악양땅 회남재인지라, 버스 차창으로 내려다보니 또 다른 한 시절 악양 들판 이 신작로에 가을날 코스모스가 한도 끝도 없이 피었던 자리인지라 눈이 자꾸 가고 맘이 그만 차에서 내릴라하니 어찌 내가 악양 땅에 다음에 살 것도 같은 기분이 그날은 들더라 말이다.
버스는 중기 덕기 마을까지는 안가고 악양 면소재지에서 돌아서 이제는 형제봉 아래 들길을 지나서 내려오는데 곁에 앉은 젊은이들 하는 말이 참으로 때는 때이더구만. 그네들 친구끼리 하는 말이데 저녁에 하동 가서 월드컵 3, 4위전을 거리 응원을 하면서 보자는 것이다. 토요일 오후이고 평일 날은 도회지 학교에 다니는 지라 시골집에 와서 올만에 친구랑 어울려서 구들막 지고 자지 말고 화끈한 도회지 뭐 하동도 도회지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 골짜기에서는 도회지라 붉은 악마들 입는 붉은 옷 입고 운동장 마당에 모이면 어릴 적 초등학교 중등학교 시절에 이웃마을 숙자 미자 분이 정이라도 만난다면 대한민국이 이기든 형제나라 터키가 이기든 무슨 상관인가 한마당 어울려 놀면 그만이지. 그네들은 휴대폰으로 친구들을 불러내더니만 저녁 약속을 아직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정해 버렸다. 참 젊은이는 좋다. 처자식 부모형제 안 먹여 살려도 되는 저 나이가 좋다.
악양 형제봉을 바라보니 산세가 여간 아니다. 독수리머리 형상의 바위도 여전히 건재하고 저 산길을 달려 내려온 남부능선 80리길의 마지막인 소상공원도 그 겨울날의 차가운 강바람은 오간 데 없고 논배미 벼가 살랑살랑 휘날리는 6월의 마지막 날의 모습이었다.
이야기가 이리도 삼천포로 빠진다면 산에서 논 이야기 할 때쯤에는 기력이 다 빠져서 쓰지도 못하고 주저앉지 싶어 이제부터는 마 중간에 있었던 이야기는 쭉 빼고 차는 시간이 되니 쌍계사가는 입구인 화개장터 주차장에 도착을 했고 나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지 않고 구례 가는 차가 혹시 날 알고 태워줄려나 하면 길거리의 여인처럼 지나가는 승합차나 승용차에게 손길도 보내고 눈길도 보냈지만 호객행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절실하면 난 10분 이내에 차를 세워 탈 수 있는 나름대로 능력은 있지만 그날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 느긋하게 태워주면 타고 안 되면 하동서 출발한 구례 가는 4시 20분 버스가 올 터이니 하며 몇 분을 기다리다가 그냥 매표소에 돌아왔다.
화개 매표소에는 창문만 열려있었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매표소 여닫이 작은 창문으로 들어다보면 기웃기웃해도 표 파는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도 그다지 조급하지 않아서 그만 주위를 살피며 딴전을 피워보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불러보지도 못하면서 서성이니 휴게소 장의자에 앉았던 대여살쯤 되어 보이는 치마를 이쁘게 차려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뒤로 묶은 서희를 닮은 여식이 쪼르르 매표소 안으로 들어서더니 나를 맞는다. 하도 반가워서 이렇게 얼굴을 들여대어 안을 들여다보니 창가에 낮은 선반 위에 행선지별로 표를 묶은 다발이 줄을 지어 있었다. 구례까지 차비를 보니 1,600원인데도 잔돈이 없어 만원을 꺼내주자 일단 거스름돈을 세어서 작은 창을 통해 내어주고는 종이 다발 중에 구례라고 청색 도장이 찍힌 빛바랜 누릿끼리한 표 한 장을 찢어서 말없이 내어놓았다. 하도 귀엽고 정갈하고 행실이 단정하여 자꾸만 최참판댁 서희의 모습이 눈에 잡히어 왔다.
하동서 온 구례가는 버스는 2시간 반전에 부산을 출발한 버스였다. 버스 안에는 나처럼 월드컵이고 장마비고 상관없이 산을 탄다고 노고단으로 가는 등산객들이었다. 버스 기사에게 성삼재(노고단가는 버스 길목의 재 이름)가는 버스를 타야한다고 말을 하자 그는 염려 말라고 하며 하동 화개 구례이야기를 들려준다. 차가 떠나기 전에 화개 매표소 직원인 듯한 여자가 승객의 수를 확인하였다. 그녀는 노고단 가는 버스 시간과 이 차가 구례 도착하는 시간을 알려주는데 내 눈썰미에 잡히는 모습이 있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십 년도 지난 일이다. 그 때도 지리산에 철쭉이 피고 진 이맘때의 초여름이지 싶다. 산청으로 해서 덕산을 지나 거림골을 타고 지리산 세석에 아침에 올라 당일로 의신마을이 있는 대성골로 내려와서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고 내려오니 하루해가 빠지는 지금 시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여기 화개에서 하동을 거쳐 진주로 나가야만 했었다. 그 긴 여름날 하루동안 걸었으니 배는 또 오직 고팠을까! 허나 버스 시간에 쫓겨 뭘 챙겨 먹지도 못하고 거의 빨치산 구보하듯이 뛰다시피 내려온 산길이었다. 화개 정류소 매표소 안에는 간이 식당이 같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시절에는 매표를 하면서 밥도 팔고 그렇고 그런 시절이었다. 지금도 시골 동네 앞 매표소는 가게 집에서 같이 운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여간 그 날 우리는 그 매표를 하는 아가씨와 우리 산행길 이야기도 하면서 막국수 한 그릇을 말아달라고 해서 아주 맛있는 국수를 먹은 기억이 난다. 애호박을 총총 썰고 멸치 다시 맛을 잘 우려낸 따끈한 국물을 양껏 마시면서 내 평생 국수하면 화개가 생각날 정도로 맛있는 여름 국수를 먹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그 아가씨 모습이 다운 로딩이 되는 것이었다. 허나 너무도 오래되고 한번 지나가며 본 모습인지라 그리고 오늘 본 사람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너무 나이가 든 것도 같아 혹 하며 기사에게 물어보니 아닐까 다를까 바로 십여년 전부터 저 자리에서 버스 표를 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그렇다면 인사나 하고 올껄...........
참으로 정이 많은 아가씨였는데. 기사 아저씨말로는 아직 미혼이란다. 혼기를 놓치고 그냥 오는 버스 가는 버스 맞이하고 바래다주고 하며 한평생 살 모양이란다. 고향도 바로 그 동네 화개장터이라지.
내 버스는 어화둥실 두둥실 푸른 산기슭을 따라 강물을 거슬러 올라 북으로 올라갔다. 굽이굽이 강물은 산 무덤을 짓누르고 올라서 간다. 건너 산은 광양 백운산자락이다. 강물에 비치는 섬진강 다합마을에 매화꽃이 피고진 자리에는 푸른 청매실이 알알이 영글고 있을 터이고, 호남정맥의 마지막 자락인 백운산도 지금쯤은 한쪽 다리는 섬진강에 담그고 한쪽은 광양만에 잠기어 한시름 놓고 쉬는 철이리라. 운조루 입구가 보였고 그 골짜기로 올라서면 좌우에 산줄기가 높게 성곽을 이룬 곳이 나온다. 바로 문수리 골짜기이다. 여수 순천 빨치산들이 모여 든 문수골이며 토벌대와 격전의 현장이 바로 이 골이다. 노고단에서 양 갈래로 갈래져 내린 이 골짜기에는 아직은 태초의 비경이 잠들어 있는 지리산에 몇 안 남은 원시 비경인 곳이다.
구례, 전남 구례는 경남 하동과 비교되는 고장이다. 섬진강을 낀 지리산 산자락의 고장이고 아직은 도회지 때가 덜 묻은 고장이기도 하다. 하동이 갯가 마을이라면 구례는 산간 마을이다. 갯가의 물산이 하동에서 올라오고 산지의 물산이 구례에서 내려와 화개에서 만나는 날이 화개 장이 서는 날이다. 섬진강이 물산의 물류를 담당하는 교통로였다.
구례 군내버스를 갈아타고 돌담으로 집을 단장한 구례 옛 마을을 지나니 깊은 골짜기 입구가 나와서 창 밖을 내다보니 바로 화엄사 골짜기이다. 버스에는 몇도 아닌 승객이지만 천은사를 지나서 노고단가는 길목인 성삼재로 우린 태우고 올라갔다. 붉은 소나무가 그 허리들 한껏 뽐내는 산자락을 이리 돌고 저리 돌아 산을 기어 올라서니 해발 1100미터라고 쓴 표지판을 지나고 또 산마루를 언 듯 올라서니 1200고지도 지나버린다. 저 눈 아래 구례마을 들판이 내려다보이고 암자 하나가 숲 속에 오두막이 앉았다. 하늘은 구름을 모아 비를 한차례 내릴 모양인지 구름이 바삐 산마루를 휭잉 넘어가 버린다. 깊은 산에는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지 못하는데도 이곳은 소나무 수해가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지리산 종주능선인 성삼재 남쪽 마루에 서서 구름이 흘러내리는 산 아래를 쳐다보며 마음의 끈을 놓아본다. 세상에 맺힌 연을 잠시나마 끊어보았다. 바람이 눈앞을 스치며 내 영혼을 감싼다. 나는 그냥 놓아둔다. 아니 버려 둔다. 오직 내 버리는 것이 나에게 최상이요 목적인지라 버리고, 놓고, 허물어지고 싶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2키로 남짓 포장도로이다. 비비추도 꽃대를 올려 학 모양으로 머리를 솟구쳐 올린다. 수림이 청정한 여름의 숲은 답답하지 않고 서늘하다. 하얀 꽃을 머리에 올린 산딸나무가 흰 잎사귀모양으로 피었다. 넷 조각의 꽃잎을 바람개비 모양으로 깃을 세우고 계절을 노래하듯 피었다. 여기저기 짙은 잎새사이로 잎사귀보다 작은 꽃을 피우는 함박꽃나무 흰 꽃은 과히 군계일학이다. 이 계절에 최고의 산 꽃은 저 함박꽃나무 흰 꽃이다. 나는 꽃의 모습이 좋아 꽃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지, 허나 산에 오면 산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운걸..........나는.
나는 혼자이다. 여기 올라가는 사람들 내려오는 사람들 모두가 쌍쌍으로 다닌다만 나는 언제나 혼자이다. 혼자이기에 나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 생각이 모여서 이런 글을 만든다. 지나고 보니 언제나 혼자서 다닌 후에는 글이 나왔다. 그러나 동행을 한 후에 쓴 글은 그냥 여행기이거나 산행기이거나 산길의 답사여정을 적은 단순한 글일 뿐이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여행은 다소 외롭지만은 그 보상은 충분함을 나는 안다. 나는 혼자이지만 사실은 혼자가 아니다. 저 산에 피고 지는 꽃들과 푸른 잎새와 이름 모를 나무들 바위며 들꽃이며 노래하며 흐르는 개울물이며 저 혼자 바위사잇길을 쪼르르 움직이는 다람쥐들이 다 내 친구요 벗이다. 항상 누구와도 벗을 할 자세가 되어있는, 나는 삼라만상의 자연물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가 있기에 나는 혼자 여행을 산행을 하는 것이다.
산 안개가 커피 잔 넘치듯이 아래로 흘러내린다. 운해가 아름답다고 이름이 난 곳이지만 아마도 안개가 걷히면 비가 올 것이다. 산길 도로를 따라 물이 내려오다 길을 건너 능선을 소문도 없이 넘어버린다. 아니 이러면 아니 되는데. 이 능선이 무슨 능선인줄 알고 말도 없이 숨 한번 안 쉬고 넘어 버린다냐?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이란 말이야! 헌데 아무리 봇물 같은 도랑물이지만 산줄기의 북쪽으로 내려갈 물을 남으로 돌려 화엄사 골짜기로 보내 버렸다. 내 짧은 생각으로는 들이 큰 구례에는 물이 부족하고 달궁으로 해서 임천강으로 흘러가면 결국은 낙동강까지 갈 것이니 물도 고생이고 사람도 고생이니 일찍이 맘 잡고 바른 길로 돌려놓았지 싶으나, 어찌 하늘이 하는 일을, 자연이 하는 일을 사람이 해 치울 수가 있단 말인가?
산새도 따라 오면서 재잘재잘 장단을 맞추어 날아 주었다. 길은 가끔씩 숲으로 지름길이 있으나 이제는 목책으로 길을 막아버렸다. 아예 도로로만 갈 수 있도록 정리를 한 것이다. 서늘한 기운이 평원을 감도는 노고단 산장에는 색색으로 차려입은 등산객들이 식기를 들고 들랑날랑 거리고 간의 의자에 앉은 남녀들은 얼굴 가득 웃음이 넘쳐나는 산장의 저녁 풍경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가고 풍경만 남은 것일까. 산 안개는 저쪽 노고단 산정에서 솜 타래 풀려오듯 밀려 내려왔다. 손전등도 없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시간정도 더 걸어가면 되는 뱀사골 산장까지의 여정을 접고 산장지기를 만나 산장자리를 예약했다. 칼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좁은 침상 한 칸을 배정을 받아놓고 모포 4장을 빌렸다. 침낭을 지고 오는 사람도 있고 여름에는 모포 2장정도 빌려 자면 되는데 나는 춘하추동 4장이 기본이다. 설명은 생략하고 내가 한번씩 챙겨서 하는 일들이 있다고만 알기 바란다.
침상에 모포를 펴서 자리를 정해 놓고 취사장으로 가서 밥을 짓기 시작했다. 모두들 남녀 집합하여 밥을 짓고 있었다. 둘 아니면 셋 그리고 넷, 나만 혼자다. 밥을 지어 혼자 먹어? 그럼 나 먹으려고 밥을 짓는 거지? 에잇 굶고 말어? 좀은 처량해서 울컥하는 심정이 밀려오나 어디 이게 한두번이었드냐 싶어 쌀을 씻고 양파를 벗기고 총각김치를 덤성 덤성 썰어놓고 참치 한 캔을 따서 솟아 놓았다. 코펠에 짓는 밥이지만 내 산 밥하는 실력은 과히 수준급이다. 허기사 그 만큼 실습을 했으면 그 정도야 하지만 나는 물 조절, 불 조절, 양 조절 다 일품이다. 앞서 온 일행은 벌써 찌개를 끓여놓고 소주를 양은 식기에 부여 마시고 있었다. 나도 술 욕심이 생겨 무김치 하나를 듬성 베어 물고는 세라스 컵에 산 소주 한잔을 가득 부었다.
이렇게 산장의 저녁파티는 열리고 있었다. 내가 혼자 찬술을 부어 마시자. 내 뒤에서 밥을 짓던 사내가 날 불렀다. 같이 먹자는 거였다. 그도 혼자 온 모양이다. 취사장 중간 식단에 우리 둘을 중심으로 혼자 온 사내들이 한둘씩 모여서 집단을 이루었다. 이리서 온 사람, 군산서 온 사람, 구미서 온 사람, 경기도 시흥서 온 사람 그리고 사천에서 온 나. 이제부터 이 사나이들이 펼치는 기구 만장한 세상사는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것이니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은 이유를 들어보시라.
여기서 잠깐 노고단 산장의 취사장 모습을 먼저 설명을 하고 가야겠다. 산장 취사장이란 대개 산장 건물과는 별도로 별채로 지어 화재 위험도 막고 취사장에서 불 피우고 냄새 피우는 것을 취침하는 공간과 분리시켜 놓았다. 산장 취사장에는 출입구에 문이 없다는 것이 공통이다 그리고 돌로 지었으며 건물내 사방으로 조리대를 허리 높이 정도로 올려 벽을 바라보고 바나를 올려서 취사를 하게 되어있다. 예전에 이곳은 노천에 식수가 솟아나는 자리에 자연스럽게 취사장이 되었던 곳을 이제는 수도시설도 하고 전기도 넣고 실내 가운데는 통나무 의자를 놓아 가운데 놓인 식탁을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식사를 하면 이야기를 할 정도로 용도 있게 만들었다. 내가 들어설 때 즈음에는 서너 명 정도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쌀을 씻고 바나 불을 붙이고 양파 하나를 깎아 작은 코펠에 담아놓고 참치 캔을 따서 밥이 지어지면 올릴 준비를 하는 사이에 사방 벽을 바라보고 취사준비를 한다고 서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가 되었다.
얇은 코펠 밥을 지을 때는 물 조절과 불 조절에 달인이 되어야지 밥이 설익지도 않고 눌어붙지도 않는다. 일단 산에서 밥을 끓이자면 밥물이 좀 넘치는 걸 감안하여 물을 여유 있게 잡아야하고, 물에 불은 쌀이 아닌 점도 감안해야 하니 물은 넉넉하다 싶을 정도로 채운다. 그리고 일단 센 불로 밥솥뚜껑이 들썩거리다 마지못해 떨어질 정도로 불을 올린 후에 다시 불을 낮추고는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적당한 무게의 물건을 올려놓아 밥 김이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리고는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우리 쌀밥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이 되어야 밥이 되지 불만 올린다고 기구가 좋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물에 불은 쌀이라면 또는 압력밥솥이라면 다소 빨리 되긴 하다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난 산에서 지어 먹는 밥맛은 아주 아주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밥을 짓다 자주 밥솥을 열어보면 안 된다. 쌀이 설익을 뿐더러 밥의 기운이 빠져서 아주 못쓰는 밥이 되기 때문이다. 한두 번 정도로 그쳐야 한다. 그렇다고 안 열어보면 정말로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름이 안 되는 노릇이다 왜냐면 밥물이 먼저 넘쳐 나왔기 때문에 남은 물 양이 얼마인지 열어봐야 정확하기 때문이다. 이때 물이 대개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 만약 모자란다 싶으면 물을 밥솥에다 보충을 해주고는 불을 다시 세게 올려준다. 뜸을 드린다고 하지, 쌀이 퍼지도록 시간을 주어서 밥 알갱이에 심이 빠지도록 하는 작업을, 그러나 정말로 밥이 엉망인 상태는 밥알에 힘이 하나도 없이 찰근찰근한 기운이 없는 밥일 것이다. 이는 뜸을 들이는 동안 밥솥을 열어두었거나 밥솥 두껑이 힘이 없어 김이 저절로 빠진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니 뚜껑을 자주 열어보거나 힘이 빠지지 않도록 돌멩이로 뚜껑을 잘 닫아두는 일도 사려 깊게 관찰해야 할 일이다. 정말로 잘 짓는 밥이란 정성과 시간과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세상의 일이란 어느 것 하나 그렇지 않는 일이 없지마는 조선사람 주식으로 먹는 밥이란 氣를 먹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밥에 뜸이 들기 시작하면 솥에서 나는 김의 냄새로 쌀알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 처음에는 쌀 내음이 나다가 나중에는 구수한 밥 내음이 나는 걸 알 수 있다. 코펠 솥은 바닥이 얇은지라 금방 눌어버리는 수가 많으니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불 조절은 과히 환상적으로 해야만 3층 밥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에 만약에 불 조절 물 조절에 실패하고 작은 솥에 밥의 양의 많았다면 밥하는 도중에 편법을 써야한다. 아래쪽의 쌀은 타고 중간의 밥은 퍼지고 위의 쌀은 아직 생쌀인 경우 이를 3층 밥이라고 하는데 이 때는 지체없이 물을 더 붙고 코펠을 뒤집어서 바나 위에 올려야 한다. 그러니 뚜껑이 불 위에 닿게 하고 솥바닥이 하늘을 올려서 덜 된 밥이 아래에서 불심을 많이 받도록 해서 아래 위 균등하게 불과 물의 조화를 받도록 해야하나 한번 버린 밥은 다시 잘 짓기란 깨어진 쌀독을 다시 세워 쌀을 담은 일처럼 간단하지 않다.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밥솥을 곁에 두고, 찬 소주 한잔을 막 컵에 부어놓고는 마른 입안에 군침이라도 돌린 후에 마실 요량으로 슈퍼에서 사온 시큼한 총각김치 비닐 포장을 열고, 길이방향으로 네 갈래로 나눈 한 갈래를 젓가락으로 학 주둥이 호리병에 집어넣듯이 미끄러지는 걸 어찌어찌 해가며 힘과 정신을 가다듬어 김치 국물이 뚝뚝 펼쳐놓은 하얀 밥그릇에 떨어지는 걸 아쉬워하며 한입 냉큼 베어 물었다. 새큼하고 알싸한 무우 맛이여!
김이 풀풀 나는 따뜻한 새 밥을 한술 퍽 퍼서 입에 넣고 한입에 다 넣지 못하는 통무우 한 가닥을 베어 물면 따뜻한 밥과 찬 무우의 조화는 정녕 궁합이 아니고는 맞출 수가 없는 일이다.
이제 찌개거리가 든 작은 코펠에 얼큰하고 간이 든 음식으로는 이 무우 밖에는 없는 고로 나는 사정없이 무우 서너 개를 집어내어 두어 토막씩 칼집을 내어서 아직 불길이 화끈한 바나에 올려두고는 소주잔을 막 드는 순간.
2.
붉은 악마.
누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혼자 자십니까? 여기 고기 안주랑 소주 한잔 같이 하시지요."
가운데 노바다야끼 주점의 스텡 식탁을 두고 통나무 하나에 걸터앉아 버물러 온 양념 불 갈비를 알루미늄 호일 위에 올려놓고 나를 부르는 나보다는 젊고 잘 생긴 혼자 온 사내였다.
나는 남은 소주병과 술잔을 들고 술상이 좋은 사내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기가 채 굽히지도 않았는데 지은 밥은 퍼지지도 않았는데 반주로 시작한 술이 몇 순 배 돌았다. 그 사이에 식탁 맞은편 자리에도 라면을 끊이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내들이 앉았다. 양념 돼지고기가 굽히자 구미서 왔다는 김씨라는 그 사내는 라면꾼들에게 내어놓았다. 라면꾼을 말할 것 같으면 일행이 세 명이었다. 헌데 그들이 사는 고장은 각기 달랐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정말 산꾼에 돼지 수육을 삶아내던 머리에 하얀 수건을 올려놓고 날날리 손가방을 가는 줄에 걸어서 목에 걸었는데 가방은 허리에 붙어서 걸을 적마다 엉덩이 한 짝에서 액세서리처럼 덜렁거리던 사내는 이리에서 모 중학교 과학선생님이었다. 다른 두 명중 한사람은 전북 군산에서 직장을 다닌다는데 붉은 악마 응원단처럼 붉은 티에 붉은 스카프까지 매고는 마치 망둥어 맨 얼굴 모양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지마는 마음이 여려서 남의 앞에 말도 잘 못 붙이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안 일지만 그날 저녁에 마신 보배 소주 25도 막 소주 한 되를 지고 온 사람이었다. 그는 어제 회사에 돌아와서 내가 찍은 사진을 컴 메일로 보냈더니 답장을 두 번이나 보내면서 혹 군산에 오면 낚시터가 좋으니 꼭 연락하라고 인연을 중히 여긴다고 했다. 그를 보면 사람은 보기와 속은 사뭇 다름을 알 수가 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성은 고씨였는데 그도 붉은 티에 스카프를 머리에 감고 그 큰 몸짓이며 목소리며 장중을 장악하고도 남는 스케일 큰 사내였다. 됫병 소주를 술잔이 작다고 통조림 캔에다 부어 마시던 사람인데 그는 경기도 시흥에서 왔다. 그러니 이 작은 곳 남원과 구례 땅에 붙은 노고단 산장에는 멀리는 경기도 시흥부터 경북 구미 전북 군산 이리 또 나는 경남 사천에서 온 사람이니 팔도강산 유람안 가고도 팔도 사람 다 만나서 팔도 사투리를 다 앉아서 듣는 곳이다.
소주 됫병이 어느새 반이나 줄어가자 돼지 수육을 삶아내던 이리 과학 선생님이 술 좀 아끼라고 안달을 낸다. 그는 술이 아까운 이유가 바로 자기가 삶아낸 돼지 수육과 먹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배낭 속에서 비닐 포장이 된 돼지 삼겹살을 또 꺼내놓았다. 통 살코기로 진공 포장한 생고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먼저 익혀 낸 고기를 식탁인 스텡 식탁 바닥에 올려서 듬성듬성 썰어보니 마치 철판 요리 집에서 종업원이 손님 보는 데서 요리 칼 솜씨를 보이는 것 같았다. 고기에는 돼지 냄새가 전혀 안 나고 살은 쫄깃쫄깃하며 담백하여 소주 안주로는 참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생고기에 진공포장으로 통 고기를 지고 온 성의도 과히 일색이지만 고기 삶을 때 같이 넣은 부속물을 보고는 참으로 음식의 달인인줄 알았다.
깨끗하게 다듬은 통 생강, 통마늘 그리고 생 된장을 삶는 물에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물맛을 봐서 간이 될 정도로 풀어야 한다. 그리고 잊지 말고 대파 한쪽을 넣어 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고기 4킬로에 일회용 커피 하나를 챙긴다. 진공포장을 해야 여름날 산행 길에 네댓 시간은 소요될 터이니 필수 사항이고 냉동 돼지고기가 아니라 생고기를 사야한다는 것도 잊지 않는 그의 강의였다.
산행을 다니면서 여러 음식을 산에서 다 먹어보았다. 생선회도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먹어보았고 삼겹살도 불 판에 굽어먹었다. 물론 돼지 수육도 지고 가서 먹어보았다. 그러나 산에서 직접 바로 삶아서 먹어보긴 처음이다. 따끈하고 김이 술술 나는 수육을 산중에서 소주랑 같이 마시는 맛은 과히 일미였다. 살코기보다는 이런 삼겹이 비계가 붙어서 더욱 맛을 돋굼을 먹어본 사람만이 아는 체험의 산물이다.
무슨 복숭아 캔 통인지 꽁치 캔 통인지를 술잔으로 들고 마시던 시흥의 통큰 남자는 저녁 시간이 무르익자 축구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여기서 8시까지만 마시고 숙소로 가서 텔레비젼으로 터기와의 3, 4위전을 보자는 것이었다. 붉은 티까지 입고 산을 온 사람이니 과히 붉은 악마임이 틀림없으나 과연 술꾼이란 관전에 연연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전라도 쭈꾸미가 이야기 밥상에 올랐다. 실로 쭈꾸미의 대가도 다름 아닌 과학선생님이었다. 변산반도 아래 곰소라는 작은 어항이 있는데 쭈꾸미 계절인 3, 4월에 가면 쭈꾸미 한 마리에 200원씩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 만원이면 서너명 술안주 걱정은 없다는 것이다. 산 쭈꾸미를 굵은 생소금에 살 살 문지르면 빨판에 묻은 갯벌과 모래가 씻기어 나오면 팔팔 끊는 물에 잠깐 담구어 꺼내면 살이 빨갛게 익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머리속에 먹통과 알통이 살살 씹히는 것을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서 소주 한잔과 어울리면 과히 따를 맛이 없다는 그 식도락에 대가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쭈꾸미가 살이 오르는 6, 7월에는 약으로 먹는 사람들이 서해안 곰소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쭈꾸미 먹통이 어디에 좋다고는 하는데 잊어버려 말해 줄 수는 없고 다만 이제는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겨서 쭈꾸미 값도 옛말이 되었고 그 맛도 이제는 예전과 같지 않지만 그래도 서해안 갯벌에 나는 곰소 쭈꾸미는 별미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마치 주방장처럼 머리에 하얀 수건을 이고 돼지 수육을 설며 먹는 강의에 하는 저 모습에 요리의 달인 같아 한번 더 놀라서 내가 그의 직업을 물었다. 그러자 시흥에서 온 통큰 남자가 주방장 친구의 직업을 들고 평을 하기 시작했다. 조선천지에서 가장 편하고 쉬운 직업이 바로 학교 선생님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서 과학선생이란 것도 알고 보면 너무 편하고 쉽다는 것이다. 바로 과학선생님이 쭈꾸미 강의를 한 사람이라면서 마냥 먹고 노니 모르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생 중에 제일 쉬운 과목이 뭔 줄 아셔요?".
우리들은 고개를 가웃둥 거리자 바로 나오는 대답이 참으로 재담꾼이었다. 평생 한번 외우면 퇴직할 때까지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과목이 바로 세계사 과목이란다. 역사과목도 쉽지만 세계사는 거의 절대로 변치 않는 스토리라는 것이다. 그 다음이 수학과 과학이란다. 입시 전형은 해마다 바뀌곤 하지만 수학공식 과학공식 해마다 바뀌지 않는다 아니 절대로 바뀌질 않는다. 참으로 수학선생님들 그 요술 같은 마술 같은 트릭에 우리 학생들은 속았다는 것이다. 수학선생이 수학문제를 어렵게 풀면 그리고 천천히 생각하며 풀면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선생님도 매년 하다보니 푸는 과정을 생각하여 풀어서 써는 것이 아니라 하다보니 외우져서 잘 잘 저절로 적어간다는 것이다. 학생들 머리로 풀어서는 절대로 못 따라올 정도로 재빨리 풀어 칠판에 답을 딱 적어내야만 우리선생님 최고가 되는 길이다. 우리들은 선생님 아이큐에 탄복을 하여 입을 딱 딱 벌리곤 했지만 매년 되풀이하는 과정 저절로 익혀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2학년 과정의 선생님이 진도 잘 나간다고 3학년 과정 설명하고 자빠졌으면 그 학교 3학년 선생님은 뭘 먹고 사나 말이다.
그러자 한 사람이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과목이 무엇이요?"
그러자 단숨에 그 풍체 좋고 통큰 남자는 선생님도 아니면서 선생님 앞에 두고 하는 말이
"그야 도덕 과목하고 국어과목 선생님이지요."
난 도모지 이해가 안 되는 답이었다. 어찌 국어와 도덕이 어렵다는 걸까? 우리 나라 학생 치고 한국어 모르는 사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는 한국어 한국말로 가르치니 가르칠 것이 없고 가르쳐본들 아이들이 우아하고 탄성을 지를 일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알 듯 모를 듯 한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국어 도덕을 어찌 어렵게 말하면서 알 듯 모를 듯 가르칠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의 말은 명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론이 사실이고 아니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좌중에서 웃고 동조하고 즐거워하는 데는 최고의 안주거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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