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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솟아지며 울던 계곡 물소리는 소나기 함석 지붕 때리듯 나뭇잎새 때리며 떨어지는 물소리에 새벽잠이 깨었다.
이건 분명 내 어린 날 외갓집 방안에서 아침녘에 들었던 낙수 물 지는 소리였다.
이런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깬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눈은 감은 채 누워서 소나기를 맞는 나뭇잎 노래 소리를 듣다니. 이건 분명 신이 주신 행운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전에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저 비를 맞고 갈 수는 없다니 계속 누워서 비비는 것이 상책이다.
골짜기에 어둠이 가시는 아침이 왔다.
그렇게 솟아지던 새벽의 비는 그치고 있었다.
시래기 국에 조찬을 먹고 우산 하나씩 들고 산길을 나섰다.
갯땅쇠님은 복장이 아주 훌륭하시다. 등산조끼까지 준비하였으니 그러나 등산에 가장 중요한 등산화를 두고 왔으니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문제도 아니다. 가보는 것이지! 가다 못 가면 돌아오는 것이지!
무릇 등산이란 떠날 때만 비가 솟아지지 않는다면 떠날 수 있는 일이 등산이다.
가다가 비를 만나면 피하거나 맞으며 가기 마련이다. 비가 그치자 안개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소나기가 내린다. 우산을 좀 바쳐다 그냥 접고 오른다.
모두들 비에 젖음을 온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측백나무 조림이 양호한 공제 선으로 산 안개가 밀려나오는 광경을 보고 탄성을 지른다. 산길에는 아무도 없다.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란 광고 카피 라이트가 나올만한 조용하고 신비감이 깃 든다. 길과 나무와 떨어지는 비와 길을 따라 흘러가는 도랑물뿐이다.
마치 선경으로 들어가는 길목 같았다. 길섶에는 까치수염이 피고 한 떨기 하늘 말나리가 감홍빛 얼굴을 수줍게 고개 숙여 풀 속에 숨는다.
꼬막재를 넘어서니 목장지였던 초원이 나왔다. 산에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산딸기가 덤불 덤불 피어나고 산수국이 노란빛으로 물을 들이는 무등산 자락에는 물소리와 새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12시가 되어서야 우린 圭峰庵에 도착했다.
서석대까지 간다는 목표를 줄여 규봉암에서 쉬고 하산하기로 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1300년 역사를 간직한 신라시대의 고찰인 암자에는 正因이란 법명을 가진 스님이 혼자 기거하고 계셨다.
절의 내력과 스님의 설법을 이야기로 친절하게 듣고 茶 대접까지 받았다.
다음에 시간에 나면 하룻밤 자고 가라고 약조를 주신다.
그러하겠노라고 나의 약속을 드렸다. 달이 좋은 날 바위산 사이로 달이 걸리는 삼경에 나와서 저 너럭바위에 앉아 바둑을 두면 차를 다려 마시자고 하신다.
과히 그 기상과 생각이 산처럼 우뚝하여 맘 변하기 전에 약조의 서약을 글로써 받아왔다.
비 개인 산사
흰나비 나폴 나폴
스님도 따라서
적삼 깃을 말린다.
창건이래 단 한번도 펀 적이 없다는 해우소 탐방을 혼자하고 나왔다.
바닥에는 오물하나 보이지 않았다.
물도 고이지 않고 보기에 편편한 바위 위처럼 보였다.
땅으로 다 스며서 사라진다는 기묘함을 알 수가 없었다.
하여간 병풍으로 둘러친 바위들의 형상이 금강산을 연상케 한다고 하니 과히 선경의 하나였다.
김덕영 장군의 누이가 던진 돌멩이 하나 걸린 문 바위를 바라보며 이 자리가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알았다. 스님 두 분이 앉아서 바둑을 두셨다는 전설의 마당바위에는 이런 고사가 있었다.
마당바위에 두 스님이 한참을 마주 보고 계시더니
한 스님이 "반 집 졌네"하셨다.
들여다보니 바둑판도 없었다.
두 스님은 마음으로 바둑을 두시고 계셨다.
구경하던 속세의 나무꾼인지 처사인지 모르나 집에 돌아가 보니 50년이 지나갔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면 하나 끊여먹고 나니
뒷산 뫼 뿌리 오뚝 오뚝
앞산 산봉우리 둥 둥
그 사이에 지었다.
대웅전 부처님을 배알하고 몇 닢 시주를 하고 나오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날 것이니 미련 없이 내려왔다.
대웅전 기둥에 걸린 글 한자 마음에 담았다.
一葉紅蓮在海中 일엽홍련재해중이라...
사천의 두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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