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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경남 김해시의 이지숙 씨
*과거로 간 내어머니*
"오~빠 오~빠 어디갔노!오~빠" ...... 한적하기만 하던 시골동네엔 누군가
애타게 부르짖는 소리로 집집마다 한 사람씩은 대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논두렁 길가네는 신발도 신지 않은체 흙이 잔뜩 묻어 있는 버선발로
치맛자락은 속고쟁이가 보일만큼 흘러내려 있고, 손아귀에는 누가 뺏어
갈세라 곶감하나를 꼬옥 쥐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두리번 거리면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했습니다.동네 사람들은 이 할머니가 낯설지가 않습니다.
얼핏 보아도 정신이 온전한 분이 아님을 알지만 애써 경계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할머니 뒤로 한 중년 남자가 달려왔습니다.
"어무이요!집에 들어가시더!" 남자를 본 할머니는 그제서야 안심하겠다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지르며 말했습니다. "오빠 어디 갔었노!" 그러며 손아귀에
눌려 짖눌린 곶감을 건넵니다. "오빠 이거 묵으라!" 할머니가 건넨 곶감을
말없이 받으며 중년남자는 등을 내밀었습니다. "어무이 업히이소".............
그 날 그렇게 내어머니는 오빠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잠이 든 주름가득한 어머니 얼굴위로 겹겹히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 당신께선 지금이 비로소 편안하신 듯
보이기도 했습니다.연세 74세의 내어머니는 치매로 인해 기억한자락이 아주 오래전 열두어살 어린시절로 되돌아가 있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것처럼 어머니는 당신이 머물고 싶었던 시간속에서 영영 나오지 않겠다는 심사인지 아예 우리 자식들의 존재마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빠를 당신의 아들이 아닌 "오라비"로 인식하도 나를 비롯한 3딸은 당신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되기도 합니다......
그 시절이 그러했듯 어머니 또한 18세의 어린나이레 가난한 농삿꾼
내아버지에게 시집와 우리 5남매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자식 키우는 어미의 역할외엔 그 어떤 부부의 정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자식에겐 더없이 자상하신 아버지였으나 정작 아내에겐 따듯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집에 잘 들어오시지도 않던 아버지가 어쩌다 한번씩
다녀가는 날이면 어머닌 부엌에서 아궁이를 피우며 애궂은 양은 그릇을
닦고 또 닦고 치마고름으로 눈물을 몰래 훔치시곤 하셨습니다.
어린 날 알수 없는 어머니의 그 눈물은 아궁이의 매운 연기 탓일거라고
단정짓곤 했습니다. 그러던 햇볕 따스한 어느 날 우리집 마당에 핑크빛
꽃무늬 양산을 쓴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의 여자..
그녀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방을 차지한체....아버지가 간암으로 쓰러지시기 까지는.......결국 그해 아버지는 어머니에겐 손 한번 잡아주시지 않은체 "이녁 미안하데이" 라는 말 한마디 만을 남기고 당신의 여자만은 찾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꽃상여가 나가던 날
아버지의 여자는 어머니의 문갑속에 들어있던 '논문서와 집문서',그리고
어머니가 시집올 때 유일하게 아버지가 해주신 '금가락지' 까지 빼어들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야말로 아버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신체 우리곁을
떠나신 것입니다. 그렇게 내어머니는 홀어미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며칠 뒤 어머닌 간단한 세간살이와 이부자리만을 보자기에 싼체 그 날
우리를 데리고 정든 동네를 떠나왔습니다......가난한 동네 언덕바지에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단칸방하나를 얻은 어머닌 허리 한 번 필새
없이 어슴프레한 새뱍이면 밤새 끓인 제첩국을 담아 머리에 이고 이집저집
다니며 "제첩국 사이소,제첩국 사이소" 목청이 아프게 외치고,
낮이면 식당으로 밤이면 인근공장에서 부업거리로 동네 아낙들에게
나눠주던 구슬같은 것을 꿰곤 하셨습니다.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 항상
우리보다 늦게 주무시고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셨던 어머니.......
아니 어쩌면 아예 잠따위는 잊고 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들었지만
우리 5남매 한 이불속에서 나란히 곤하게 잠든 모습 보면 그보다 든든한일도없으셨다고 훗날 어머닌 간혹 지난 날을 회상하시돈 하셨습니다.
그렇게 새벽 낮과 밤을 등이 굽도록.
일하신 댓가로 5남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고 별보자람 없이 성장했건만, 어느 해 4월 아버지를 가장 닮은 모습으로 변해 있던 큰오빠가 결국
아버지와 같은 병명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닌 물 한모금 입에 대지도 못하신체 당신의 죄라며 한없이 우셨습니다 "내 죄다!내 죄다!내 업보여!....." 자식된 도리로 부모보다 먼저 저하늘로 간 오빠는 아버지처럼 또 한번 어머니의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깊은 상실감으로몸과 마음이 황폐해져가던 어머닌 기어코 병원에서 자궁암 선고를 받고
대수술을 하였습니다. 수술 후 병원에선 최종의 처방으로 어머니의 생명을 더 이상 기약할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맛있는건 많이 드시게 하고 보내드릴 준비를 하라고....그러나 우리 남매들은그 암담함과 절망스러움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고 결코 어머니를 그렇게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시작된 어머니의 투병생활....우리는 어디서든 좋다는 약초와 약재를 모두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 당신 또한 생명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며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던 까닭인지 약효는 기적처럼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길게는 1년밖에 살수 없다던
어머니의 생명은 2년이 가고 3년 째 접어들면서 다시 병원을 찾아 받아본
어머니의 진단은 거의 완쾌였습니다.
우리 모두 그때처럼 기뻤던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당을 가로질러 화단을 배회하시며 철따라 피어나던 꽃줄기에 물을
뿜어주시기도 하고 잡초를 뽑아주시기도 하고 손수건으로 잎을
닦아주시기도 하며 어머닌 당신께서 살아오신 그 고단한 삶의 한 모퉁이에서비로소 편안한날을 보내고 계신 듯 했습니다.
적어도 큰언니가 커다란 짐가방을 한 손에 들고 나머지 한 손엔 어린 조카의 손을 잡고 대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형부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언닌 형부와 이혼을 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어머닌 당신의 파란같은 삶을 언니가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의 지난 세월이 그러했듯 언니 또한 어린 자식을 등에 업고
어미없이 홀어미의 삶을 살아야 함이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알고 계신 탓이었습니다. 그 엣날 큰오빠가 떠날 때 처럼 어머닌 큰언니를 부둥켜않고
가슴 속 응어리진 눈물을 쏟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죄다!내 죄여!니가 무슨 죄가 있노!딸 년은 에미살을 닮는다고 하는데.." 라며.우리 모두 근거없는 옛말일뿐이라고 어머니를 위로 했지만 차츰 말씀이 줄어드시고 넋놓고 앉아 계시던 날이 잦아들면서 기어코 어느 날 정신을 놓고 마셨습니다. 여자로서 살기를 오래 전 져버린체 오직 어미로써
살아오신 내어머니...그 어미의 삶에서 당신의 험난한 생을 위안받는게
삶의 유일한 치유 방법이었던 어머니에게 한 자식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상으로 보내고 한 자식은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게 끔찍이도
싫었던 내어머니...우리는 이야기 합니다. 어머니 당신께선 유일하게
편안했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셨던게 틀림없다고...홀어머니 밑에서
오빠와 단둘이었지만 늘 어린 여동생을 위해주는 오라비가 있어 행복했다며 먼 하늘에 계신 외삼촌 이야기를 가끔 하시던 어머니!...
비록 치매라는 병명으로 평소 당신 자신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시던
우리마저 알아보시지도 못하지만 우리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지금 어머닌 가장 편안했던 시절,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계실 뿐... 그 어떤 병도 아니라고 우리는 말할 뿐입니다. 여자로서의 삶에는 가슴 한 켠에 시퍼러 멍울만 잔뜩 얹고 사신 어머니... 이젠 아내의
자리도 어미의 자리도 아닌 어머니 당신께서 좋았던 그 시절에서 아무런
염려도 하지 않으신체 당신께서 좋아하시는 꽃보고 나비보면서 저희 자식들 옆에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계셨으면 합니다... 이 다음 후생이 있다면
예쁜 꽃나무로 환생하고 싶다고 그러셨던 내어머니.. 저희집 마당 한 켠에
어머니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작은 동백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며 칠 뒤 단단하게 뿌리내리면 어머니 당신께 가져다 드리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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