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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글을 남겼으니 가보는게 예의지요!
열아홉살 쯤 되었나봅니다.
아직 자료는 많지 않지만...
도움이 될까 해서 하나 퍼 왔습니다.
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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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시인 안도현님의 강의
저한테 보내온 질문지 내용 네 가지를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준비를 해왔습니다. (웃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묶어서 이야기하지요. 강의보다는 자유로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詩세계에 대해서
앞서 한 이야기들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습작시절부터 언어주의자였습니다. 시속에서 메시지나 정서보다도 우선은 시적인 언어를 골라서 그 언어로 집을 짓는다는 그 고민을 해왔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그것밖에 안 했다고 볼 수 있어요. 영악할 정도로. 내가 왜 시를 쓰는가를 생각해 본 적 없고, 시속에 뭘 담아야 될지를 한번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조탁이라는 말도 있지만, 언어를 갈고 다듬고 하는 일들이 저는 시 쓰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은, 제가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교직생활을 하면서였습니다. 처음 교편을 잡게 되었을 때에도 저는 언어주의자였고, 문학주의자였습니다. 교직에 대해서도 어떤 사명감보다는 취직을 했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체기합, 책상에 무릎꿇고 올라가기 등 군대식 방법을 많이 썼습니다. 그때 가르친 애들은 연락이 별로 없어요. (웃음) 지식판매업자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런 태도가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은 아마도 제가 글을 썼기 때문인 거 같아요.
에피소드. '이리중학교'라는 시를 [모닥불]에 실었는데, 제가 시 쓰고 처음 월평에 났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좋아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에 갔더니 교장실에서 부르더라구요. 그 당시 문교부에서 전북교육청으로 교육청에서 학교로 전화가 왔었답니다. 그 시를 쓰게 된 경위서 한 통하고, 그 잡지에다가 시를 싣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겁니다. (웃음) 나는 잘못한 일이 없어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학교에서 몇 십 년 동안 근무했던 분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노인네들이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는 겁니다. 시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제 시를 읽고 울어 준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근데 문교부에서 하는 말은 뭐냐면, 학교 현장을 너무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거지요. 그때부터 거의 매일 교장실에 불려 다녔고, 교감선생님은 이리에서 전주로 매번 왔다갔다했지요. 아마 고생이셨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감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이제까지 있었던 일은 없던 걸로 하세. 하시는 겁니다. 그 날이 언제였나 하면, 87년 6월 29일이었습니다. (웃음) 노태우가 6.29선언을 발표했던 겁니다.
그런 몇 가지 일들이 이어서 일어나면서, 학교라는 곳이 내가 봉급만 받고 출퇴근만 할 곳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내가 글을 쓰기 때문에, 학교 이야기를 써야되겠구나, 좀 아이들 편에 서서 학교에 있어야 되겠구나 하는 거죠.
시에다 삶을 밀착시킨다는 것은 삶의 구체성에 집착하는 거죠. 시인은 행복의 편이 아니고, 불행의 편에 서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삶에다 시를 밀착시킨다는 것은 '문학적 삶',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들 편에서는 삶이었습니다. 문학을 했기 때문에 고분고분하게 현실에 적응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간뎅이가 부어서 해직이라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였었고, 해직기간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의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80년대라는 불같은 시대에, 해직이 된 것은 나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후반부의 시들을 쓰던 시기는 문학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서 현실을 바꿀 수 있다, (김남주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박노해나 김남주의 경우 문학의 현실변혁적 기능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한 시인으로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내게 어떻냐고 묻는다면 별로 자신이 없습니다.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4년 반 동안 해직생활을 하다가 복직한 이후에는 더 그랬습니다. 굉장히 가고싶었던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당혹스러움이 많았습니다. 돌아와서 본 학교는 하나도 변화된 것이 없었습니다. 옛날 하던 방식 그대로 진행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복직하면 아이들을 이러이러한 식으로 가르쳐봐야지, 이러이러한 것을 심어주려고 노력해야지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많았는데, 거기서 현실이라는 벽에 탁 하고 부딪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보충수업, 야간자율학습. 이 두 가지만 없다면 학교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간자율학습을 없애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들이 '뜻은 아는데, 현실이 그게 아니지 않느냐' 뭐 이런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얼마간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안 들어가고 버틴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까 외톨이가 되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지가 뭔데, 해직교사 출신이라고, 남들 고생하는데 자기 혼자 일찍 퇴근하고…. 그런 소리들이 들리는 것만 같고…. 결국 저도 남들처럼 다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했던 것은 복직해간 학교가 시골 학교였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시골 맛을 볼 기회가 있었다는 겁니다. 제가 농촌체험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대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농촌공동체가 붕괴되면서 다들 농촌을 떠나는 어중간한 무렵에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시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골의 길가에 있는 나무나 들꽃이나 벌레나 이런 것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름을 알고 있을 때와 모르고 있을 때에는 그 꽃을 대하는 자세가 무척 달라지게 되는 걸 여러 번 느꼈습니다. 몇 년 동안 작은 것들의 이름을 아는 기쁨이 굉장히 컸습니다. 하나씩 알아가니까, 마치 구구단 몰랐던 아이가 알게 된 것처럼, 뭔가 많이 알게 된 것 같은 착각도 들고 그러더라구요.
여러분 자작나무 아세요? 여기 오는 길에 보니까, 제법 굵은 것이 한 그루 있어요. 강원도 아니고는 그렇게 굵은 것은 보기 힘들거든요. 여러분 꼭 한번 찾아서 확인해보세요. 그 나무 이름을 알고, 이름을 불러주게 되면, 혹시 여러분이 졸업할 때쯤에는 그 나무가 말을 걸어 올른지도 모를 일이지요.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다르게 보이는 법입니다. 물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아세요? 물소리는 강폭이 넓은 곳에서는 나지 않습니다. 물이 흐르다가 폭이 좁아지는 여울 같은 곳에서 나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물소리라는 게 작은 물방울들이 깨지는 소리랍니다. 그 소리가 우우 모여서 나는 소리입니다. 단풍도 마찬가집니다. 비가 충분히 오지 않으면 단풍이 예쁘게 들지 않는 법이거든요.
얼마 전에 신문에서 보니까, 내 시를 평하기를 '환경에 대한 관심'이라든지,' 생태학적 상상력'이라든지 하는 말들을 하고 있던데, 글쎄요 저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고요, 서정시를 쓰고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쓰는 방식은, 목소리를 높이거나 분노하거나 하지 않고, 목소리를 낮춘 채 자잘한 것들을 노래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
'내가 만약 시를 쓰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어요. 아마 시를 쓰지 않았다면, 없는 돈을 모아서 주식투자를 했을 겁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자동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겠지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이 나이쯤 되어서는 서서히 술도 줄이고 담배도 줄이고 배를 집어넣기 위해서 수영이나 할까 하는 고민을 했겠지요. 문학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 수 있었고. (물론 이게 제대로 된 삶인지는 모르는 겁니다.) 문학을 하는 동안 세상을 많이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을 고쳐가는 노력을 하는 거지요.
'새롭고 빠르고 큰 것보다는 낡고 느리고 작은 것을 사랑하자'
라는 구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90년대 시 / 상업주의 경향에 대해
확실히 90년대 들어와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전에는 책을 내면 책이 어떻더라, 어떤 시가 좋더라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은 얼마나 찍었어? (웃음) 잘 나간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상업주의, 문학판에서는 출판상업주의라고 부르는 건데, 저는 이 상업주의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 상업주의라고 이야기할 때는 그 앞에 '저질'이라는 말이 꼭 붙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업주의의 긍정적인 면이 무엇이냐 하면, 작가들에게 '글을 써도 먹고 살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약간의 작은 희망을 주는 겁니다.
앞으로 외국자본이 우리나라 출판계에 엄청나게 밀려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출판계가 90년대 들어와서 상업주의라는 경향을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출판사마다 작가들 구하려고 하고, 평론가들이 지원사격을 해주고, 그런 일들이 생기고 있지만, 그게 저질이 아니라면, 그것은 너무 씹어댈 필요는 없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90년대 젊은 시인들에 대해
80년대에 사람들이 제 시를 두고 민중시라 부르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습니다. 민중문학권에 있다. 이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저를 민중시인으로 부르는 것은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80년대 민중시가 사회문제들을 앞서서 제기하고 토로하는 여러 가지 성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저는 약간은 언어주의자고 문학주의자이기 때문에) 상상력이 상투적으로 흘러갈 때는 읽기가 싫은 경우가 아주 많았고, 그래서 그 속에 제가 포함되는 것이 싫었던 것이지요.
사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요즘 신경숙이나 공지영 같은 젊은 여성 작가들은 주목을 받는데, 왜 80년대 날리던 그 많던 시인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느냐. 우리가 80년대 집회현장에서 성명서를 쓰고 있을 때, 그 여성작가들은 비록 그 현장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골방에서 글을 썼을 것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약간은 자조가 섞인 농담이었지요. 수긍할 만한 면이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신경숙이라는 작가의 뛰어난 점은 장인정신이 아주 투철한 작가라는 점입니다. 80년대 민중문학/민중시를 썼던 상당수의 시인들은 그 시가 일정한 문학적 수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사회적 문제들을 앞서서 제기한 양심, 작가적 양심, 선비의식 이런 것들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평가를 해준 경향이 있었습니다. 90년대는 그거 가지고는 이제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좀더 작품에 공을 들이고, 상상력을 더욱 개발해내야 한다는. 90년대 젊은 시인들 중에서도 저는 언어에 탄력성을 잃지 않고, 삶의 구체성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시인들은 좋게 생각합니다. 나희덕, 이윤학, 이정록, 문태준 이런 사람들.
문학지망생들에게
김용택 시인이 책 뒤에다 '안도현은 타고난 서정시인이다'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냥 덕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문학적 재능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선천적인 자질이나 재능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문학에 투자하는 시간과 열정에 비례해서 성과를 얻을 것이다.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안 되는 사람은 저한테 전화 걸어도 좋습니다. (웃음) 술 많이 마시고, 책 많이 보고, 연애 많이 하면 그럼 뭐, 좋은 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문과에서 사실 글 쓰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너무 많이 배웁니다. 장정일 같은 친구는 국문과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는다면 이론보다 창작에 무게중심을 더 두어야 합니다. 80년대 후반에 문학에 대해 이것저것 논쟁하던 친구들 중에 지금 글 쓰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저는 글 쓰면서 가능하면 머리 아픈 것은 슬쩍슬쩍 넘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시를 쓸 때에 이분법적 사고를 너무 명확하게 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아주 피해야될 일입니다. 지금은 케케묵은 이야기가 되었지만 순수니 참여니 하는 논쟁은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순수를 택할 것이냐 참여를 택할 것이냐는 고민을 하는 순간 그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입니다. 모더니즘 리얼리즘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저는 가장 모더니즘 적이고 가장 리얼리즘적인 시를 저는 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물어볼 지 몰라서 준비한 건데, 저는 백석이라는 시인을 좋아합니다. 젊었을 때보다는 지금에 와서 많이 읽는 편인데, 좀 심하게 말하면 백석을 모르고 한국시를 이야기하기 어렵다. 왜 그런가 하면, 백석의 시를 읽어보면, 3-40년대가 백석의 주 활동 시기였는데, 그 당시의 현실, 그러니까 일제 치하라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청록파의 초기처럼 현실을 외면하고 자연 속으로 숨어드는 그런 시도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민족'이란 말을 굳이 쓰지 않았으면서도 민족적 외침이라고 할 것이 들어있는, 중용 내지는 중도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학사를 쓸 때 백석이라는 시인이 주류가 되는 그런 시도가 있었다면 그 후에 순수/참여 모더니즘/리얼리즘의 논쟁은 필요 없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만큼 제가 좋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백석시전집이 먼저 나왔었고, 최근에 실천문학에서 백석전집이 나왔는데 술값 좀 아끼시고 읽어보세요. 저는 시가 안 써질 때마다 백석 시를 읽곤 하는데 볼 때마다, 정말 좋습니다. 흠 잡을 때가 거의 없어요. 자신이 목을 매달 수 있는 시인을 가슴에 두고 있는 것도 시를 쓰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유질의]
'청진여자'나 첫 시집의 '신혼일기' 같은 시에서 가끔씩 관능적인 구절을 볼 수가 있습니다. 90년대 소설이나 시에서 에로티즘이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볼 수가 있는데요, 문학에서 다루어지는 에로티즘을 어떻게 생각하고, 시인의 시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어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90년대 시인 특히, 여성 시인들에게서 그런 경향을 볼 수 있는데, 저는 그 경향들을 장정일이나 마광수의 경우와는 별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김선우라고 창비에서 시집이 나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쓴 몇 편의 시들이, 읽으면 진짜 몸이 뜨거워지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던 젊은 여자 신인 친구는, 화장실에서 생리혈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꽃에 비유하는, 아주 실감나는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 시들을 읽고 아주 기분이 좋았는데, 그런 요소는 삶의 활력을 위해서는 꼭 좀 필요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장정일 이야기를 잠깐 했습니다만, 80년대 중반쯤에 그 친구가 '우리 포르노 시를 한번 써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나는군요.
뭐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많지만, 우선 저는 시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검찰 편은 아닙니다. 도덕으로 규제할 무엇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아들딸들이 읽으면 어떻게 할래'라고 물으면 '할 수 없다. 그것은 읽고 나서 자신이 판단할 문제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요사이에 문학잡지에 발표하고 계신 시들이 두 줄, 세 줄쯤 되는 아주 짧은 것들인데, 그것이 하나의 시적 전략의 일환일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시가 말하고 있는 내용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불만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고 하시겠지만, 그런 스타일의 시가 주는 미학이 선시 정도의, 수양이나 정신적인 깊이에 중심을 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이 보여주고 계신 일련 시도가 '촌철살인의 재미'라고나 할 만 한 것에 경도되어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가지게 됩니다.
시가 짧아진 것은 제가 시집 후기에도 썼습니다만, 제 나름대로의 전략도 있습니다. 80년대가 시인에게 사회과학적 의식으로 무장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했었고, 그러다 보니까 시속에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서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여백의 미보다는 주장하고 서술하는 형태의 시가 많이 쓰여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집에서는 가능하다면 짧게 써보자고 애초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80년대의 시 대부분이 1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하나의 연으로 처리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이전 우리 시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니었거든요. 행과 연이라는 것이 시 나름의 맛을 가지고 있었는데, 80년대에 그런 것이 무시받았어요. 그래서 짧게 써보게 된 겁니다.
'그리운 여우 '에 있는 짧은, 10줄 이내의 시들은 사실 따로따로 쓴 게 아니었습니다. 산서라는 제목에 1번부터 번호를 붙여서 100편 정도까지 썼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발표할 때마다 10편 정도씩 보내던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연작형태로 썼던 것인데, 그것을 다시 갈라놓은 것은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자주 만나는 김용택 시인이 '하나로 묶어 놓으면 아까운 것들이 몇 개 있다'고 해서, 시집 묶으면서 떼어놓은 겁니다. 그러니까 시집에 실리지 않은 그런 풍의 작품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죠.
그런데 그런 시들을 쓰다보니까, 무슨 도사인척 하자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폼을 잡는 것처럼, 무엇을 깨우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해서 다음 시집은 적어도 도사 흉내는 잘 안낼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시집부터 일관적으로 이루어진 시적인 방법론이라는 게 저 개인적으로는 의인화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이 가져다주는 시적인 재미나 감동은 선생님 나름의 것인 것 같습니다. 이번 그리운 여우에서도 그 시집 자체가 모든 것을 의인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선생님이 시를 쓸 때 시가 먼저인가 사람이 먼저인가에 대한 태도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표현을 '의인화'라고 했습니다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에서 어린이의 시선을 (동시는 아니지만) 화자로 끌어온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전략이었습니다. 어린이의 눈이 유리한 점이 뭐냐하면, 천진난만한 세계를 그릴 수 있다는 거지요. 그리고 대상에 대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에는 없었지만, 그렇게 시를 써가다 보니까 시가 비슷비슷한 모양과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해서 제가 생각을 해본 결과, 시가 너무 매끄러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시를 쓸 때 많이 고치고 하는 편이지만, 어떨 때는 거칠거칠한 것도 미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시의 화자를 너무 어린이에 기대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석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외롭고 높고 쓸쓸하고'에서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리운 여우'에서는 그러한 백석의 세계를 넘어서 불교적인 세계로까지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백석과 관련해서 실제로 선생님이 작업하고 계신 전략이 어떠한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것보다는 절에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정도입니다. 특별히 불교에 심취해 있다거나 하지는 않고, 공부해 본 적도 별로 없습니다. 단지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내 몸에 맞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요. 그리고 몇몇 거론된 시에서도, 절을 꼭 찾아가려고 했던 것이라기보다는, 여러 군데 여행을 다니다 보니까 그 중에 절도 있었던 경우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불교적 성찰에로 몰입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몇 몇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질문을 던졌었는데, 오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선생님이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저에게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립니다. 아까 문화상업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문학이 더 이상 생계의 수단이 되지 않을 때, 정말 생계와 문학의 양자 택일을 해야만 할 때에 선생님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답을 어떻게 해야됩니까? (웃음) 글을 쓰면서, '내가 글을 안 쓴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를 쓰긴 하지만 시가 밥을 먹여주는 건 아니거든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집에서는 그러잖아요, 교직이 그래도 안정된 직장인데, 가장이 직장을 때려치우려고 하니까. 한 2년 동안 공작을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글 써도 먹고 살 수 있다'. 그것은 시를 염두에 두고 그런 것은 아니고, (이건 바람피웠다고 그래야 될 텐데)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것을 썼었습니다. 앞으로도 몇 편 써볼 생각인데, 밥은 그걸로 먹고 시는 또, 쓰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시가 나한테 밥을 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습니다. 요즘은 왠지 시를 써도 밥을 먹을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예감도 들기도 하고. (웃음) 교직을 그만두면서는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교직을 그만 두더라도 누군가가 훌륭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러나 문학판은 내가 없으면 안 되겠다. 뭐, 그런 오만방자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자신감 없습니까? 시를 써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 고려대학교에서 있었던 안도현님의 강의를
옮겨다 싣습니다. 많은 도움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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